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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19. 2023

나아만의 어린 여종이 보여준 회복 탄력성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 집에 포로로 끌려와 노예로 사는 히브리 소녀가 있습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그 소녀는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줄 사람으로 엘리사를 소개합니다. 성경에 소개된 소녀의 말은 딱 한 줄입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왕하5:3).


일반적으로는 소녀의 믿음, 용기, 연민, 용서라는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전쟁 포로요 노예라는 신분에도 나아만의 치료에 관심을 보이므로 그녀의 공감능력은 뛰어납니다. 선지자를 언급하는 말은 그녀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도 훌륭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신앙적인 의미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등장하는 사람의 상태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슬쩍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소녀의 말을 해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소녀의 상황입니다. 소녀는 전쟁 포로요 노예입니다. 고대 전쟁은 칼과 창으로 사람을 찌르고 죽이며 싸웠습니다. 눈 앞에서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피를 철철 흘리며 고통하는 신음이 난무하였습니다. 전쟁사를 연구한 유발 하라리는  ‘극한의 경험’에서 죽음을 처음 목격한 로버트 블레이크니(Robert Blakeney)의 증언을 기록하였습니다. 

“병사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온몸이 떨리던 그 소름 끼치는 감정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병사는 부싯깃을 서툴게 고정하는 바람에 손을 다쳤다. 나는 방울방울 떨어지는 피를 보며 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Harari. E-book)


소녀도 전쟁 중에 다치거나 죽은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녀의 부모가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포로가 되어 다른 곳에 노예로 끌려갔는지, 아니면 전투 중에 죽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전쟁은 사람들의 육체에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큰 상처를 줍니다. 지금도 전쟁 중에 겪은 일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전쟁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포로로 끌려와 종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자기 나라를 공격하고, 가정을 박살낸 원흉인 나아만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말을 단순히 믿음이나 공감이나 용서라는 차원에서 해석할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 피해자로서 한 말이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구약학을 가르치는 안드라도(Paba Nidhani De Andrado) 교수는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포로 소녀의 회복력’(The Resilience of the Captive Girl Child in 2 Kings 5)이란 논문에서 이점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안드라도 교수는 전쟁 트라우마 속에서도 회복력을 보인 소녀의 말을 분석하였습니다(Andrado, p.461).


회복 탄력성이란 말은 라틴어 Resilire에서 파생된 말로 역경, 트라우마, 스트레스, 위협 등 어려운 상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회복 탄력성은 심리학이나 사회학에서는 널리 알려졌지만, 성경 해석학에선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습니다(Andrado, p.462). 회복탄력성은 심리적 안녕을 유지하면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능력입니다. 회복탄력성은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어려움에 직면해서 적응하는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나아만의 어린 계집 종은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전쟁의 경험과 부모와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녀가 나아만의 집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여성이기에 성적 착취를 포함한 학대에 취약한 것도 사실입니다(Brueggemann, p.53). 외국인 여성 노예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녀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를 비롯해서 국지전이 벌어지는 곳곳마다 이 어린 소녀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이 본문은 그녀들을 이해하고 또 위로하고 힘을 주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이 소녀는 불가피하게 이중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속에 믿음이 있지만, 그녀는 자기 상황을 고려하면서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매우 복잡한 감정 속에서도 자기중심을 지키며 말하였습니다(Brueggemann, p.57). 뼛속까지 군인인 나아만 가정에서 그녀가 행동이나 말에 조심 또 조심해야 했습니다. 그녀의 말은 단순한 믿음의 말이 아니라, 트라우마 피해자로서 한 말이란 사실을 생각할 때 본문의 의미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그러면 이 어린 소녀의 말을 분석하겠습니다. 

그녀는 나아만 가정과 아람의 신념과 가치관에 대해 암묵적인 도전을 합니다. 그녀가 단지 편안함을 추구했다면, 아람의 치료사를 찾아가라고 권했거나, 나아만의 상태를 모른척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나아만이 무시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찾아가 보라고 제안합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은 수년동안 전쟁을 치룬 적대국이란 사실을 생각할 때 이 말은 참으로 용감한 말입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보다 아람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왕하5:12)

소녀의 제안은 나아만의 생각과 정반대입니다. 소녀는 전쟁 범죄자인 나아만을 달래거나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대신 자신의 유산(믿음)이 훨씬 뛰어남을 은연중에 밝혔습니다(Andrado, p.466) .그러나 아람에서는 고칠 방도가 없기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찾게 됩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아람에 포로가 되어 노예가 되었다고 해서 그녀의 진정한 소속감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거나 약화되지 않았다. … 그녀는 자신을 노예 소녀가 아니라 사마리아에 뿌리를 두었다는 소속감은 사라지거나 작아지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Brueggemann, pp.53-54)


그녀는 ‘선지자’란 단어를 언급함으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강조합니다. 칠십인경은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번역함으로 소녀의 신앙심을 직접 표현합니다. 히브리 원문에서는 비록 하나님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선지자’란 호칭은 의미가 있습니다(Andrado, p.467). 그녀는 자신의 신앙을 반발의 위험 없이 여주인의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가장 온순한 표현을 하였습니다. 


그녀가 나아만의 치유를 권유하는 말은 자신에게 고통을 준 남자에게 공감하고 선한 소망을 품었음을 보여줍니다. 소녀는 자신을 포로로 끌고 와 종으로 삼은 최악의 상황에 잘 적응하기 위하여 아부하듯 주인에게 좋은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성공적인 지휘관이자 왕의 오른팔로 자부심이 강한 나아만이 ‘나병’ 환자임을 분명히 밝힘으로 나아만에게 치유가 필요함을 말합니다(Andrado, p.467). 사실 선지자가 ‘나병’을 고쳤다는 명백한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한 말이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그녀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람의 신과 달리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Brueggemann, p.54). 동시에 그녀는 아람의 폭력 문화에 대하여 하나님의 선함(악을 선으로 갚는)을 은연중에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적군의 지휘관까지도 기꺼이 치유하는 높은 가치를 가졌습니다. 엘리사는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여 이스라엘 왕에게 말합니다.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왕하5:8)


사실 그 소녀는 자기 생각을 숨기고 이스라엘의 문화와 신앙을 마음속으로만 소중히 여기면서 공적으로는 아람의 방식에 충성을 맹세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도 있었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절 많은 종교인이 현실과 타협하여 신사참배를 하였습니다.  그것이 훨씬 편하고 현실적인 태도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자기 정체성과 가치관과 신념을 숨기고 침묵하는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그 소녀는 자신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힌 것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고국에 뿌리를 두었습니다(Andrado, p.468). 월터 브루그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대담하고 저항 정신을 가진 소녀가 있었기에 나아만이 엘리사와의 만남을 통해 삶을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Brueggemann, p.55)


안드라도는 여기서 그녀의 회복 탄력성을 이야기합니다. 회복 탄력성 연구에서는 아동과 청소년이 삶의 주체로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긍정적이고 사회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소녀는 나아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자신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제안을 함으로 삶의 주체자로서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회복탄력성을 가져오는 두 번째 요인은 문화적 신념과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입니다. 그녀는 비록 뿌리가 뽑혀 노예로 살지만, 고국의 신념과 이스라엘 공동체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회복탄력성을 촉진하기 위한 세 번째 요인은 믿음입니다. 그녀는 선지자 엘리사를 언급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표현을 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회복탄력성의 네 번째 요소는 전쟁 피해자들이 불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삶에 대한 응집력과 의미를 제공하는 가치의 중요성입니다. 전쟁 포로로 종 생활하는 소녀는 가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비인간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자기 존재 가치를 찾아갔습니다(Andrado, pp.470-472).


마지막으로 안드라도는 회복의 과정이 진행되어 소녀가 어떻게 되었을까 추측합니다. 물론 성경에서 소녀에 대한 나중 언급이 없기에 소녀의 궁극적인 회복을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의 변화가 소녀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Andrado, p.472).


나아만은 치료 후 ‘이스라엘 외에는 신이 없다’는 유일신관을 주장하는 종교적 회심을 경험합니다(왕하5:14).그런데도 나아만은 아람 나라에선 자신의 새로운 신앙을 숨기고 공적으로는 아람의 림몬신을 숭배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왕하5:17-18). 나아만은 앞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흙을 가져갑니다. 평소 거만했던 나아만은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다섯 번이나 언급하며 선지자 앞에서 존경과 겸손을 보입니다(왕하5:15,17,18). 나아만이 선지자 앞에서 ‘종’이라고 고백하였는데 이러한 정체성은 소녀(종)와 일치합니다. 이러한 나아만의 변화는 소녀의 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소녀는 나아만과 함께 여호와 신앙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고국의 문화와 가치를 버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성경은 나아만의 육체를 어린 소년의 육체(נער קטן, 왕하 5.14)로 묘사하는 것과 어린 소녀(נערה קטנה왕하 5.2)로 언급하는 것 사이의 언어적 대응은 두 사람 사이의 연관성을 강하게 불러일으킵니다 (Andrado, p.473).


안드라도는 회복 탄력성에 대한 낙관주의에 현혹되어 전쟁 폭력에 노출된 아동의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염려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언급으로 논문을 마무리 짓습니다. 

제가 이 논문을 통하여 깨달은 점은, 성경을 읽을 때 신앙적인 의미에만 집중하고 너무나 쉽게 결론을 내리는 실수를 범함으로, 진정 보아야 하는 사람의 마음이나 영혼에 대하여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며 이를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고도서

Walter Brueggemann, ‘A Brief Moment for a One-Person Remnant (2 Kings 5:2-3)’, Biblical Theology Bulletin 31( 2001), 53-59 

Paba Nidhani De Andrado, 'The Resilience of the Captive Girl Child in 2 Kings 5',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Vol45. Issue 4. June 2021, 461-475 

Harari N. Yuval,  The Ultimate Experience(극한의 경험), 김희주 옮김, 옥당, E-book, 2019.

https://youtu.be/6DGNvhl0xQ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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