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빈센트 반 고흐가 체험한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신비와 역설로 가득한 예술가의 내면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깊은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받은 비전을 발전시켰고, 예술로 표현하였습니다. [1]
빈센트의 삶과 작품에 대한 내러티브적 해석은 신학적, 심리적, 가족적, 문화적 측면을 다양하게 탐구하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처럼 성직자가 되고자 했던 고흐는 점차 영적 질문을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예술가로 성장하고, 개인적인 갈등과 투쟁을 통해 진정한 자아와 소명을 발견하였습니다. 해석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빈센트가 직접 쓴 편지(자기 관찰력이 뛰어나며, 표현력이 풍부하였던 그가, 그림과 함께 쓴 편지)에 의존합니다.
영적 여정을 진실하게 걷는 사람 뒤에는 언제나 인격 형성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사람이 한 명 이상 있기 마련입니다.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때로 일관되고 때로 모순되며, 때로 이기적이고 때로 자기 초월적입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작품을 형성하는 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독자의 관심사
이 책에서 진행하는 이야기에 다양한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고흐에 대해 그저 단순한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어떤 독자는 고흐의 삶과 예술에 매료되어 그의 예술에 열광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 돌보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 이를테면 목회자, 사제, 평신도들은 사람들이 겪는 내적 혼란과 갈등에 집중하며 고흐를 읽을 수 있습니다. 목회 상담가, 심리 치료사, 심리학자, 정신 분석가, 의사, 간호사 등 정신 건강을 돌보는 의료 전문가들은 웰빙이라는 측면에서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심리학과 영성 사이의 연관성을 잘 아는 사람들이나 교사들은 빈센트를 강의실이나 진료실에 초대하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고흐를 통해 자기 일이 영적 소명인지 아닌지 궁금해하는 시각 예술가들도 적지 않게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의 생각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빈센트의 성격과 삶, 작품을 조명하겠습니다. 빈센트가 태어난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난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키르케고어는 빈센트와 마찬가지로 교회와 문화를 수용하는 학생이자, 비평가였습니다. 20세기 신학자 중 심리학과 예술 분야에 정통한 거장 폴 틸리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키르케고어와 틸리히 모두 19세기 이후 서구 문명의 고질적 문제인 불안과 절망을 통찰하였습니다. 현대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켄 윌버는 초개인적 심리학과 '통합 이론'을 통해 빈센트의 영적 삶, 나아가 우리 자신의 영적 삶에 대해 폭넓은 관점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빈센트의 심리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정신분석학자 하인츠 코훗(Heinz Kohut) 등이 고안하고 발전시킨 자아 심리학[2]의 관점을 사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고흐의 삶과 작품에서 영성, 심리학, 예술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틀이 되기도 합니다.
심리적 해석의 한계와 긍정적 요소는 분명 있습니다. 이냐시오(Ignatius of Loyola)와 빈센트 반 고흐의 전기작가인 정신분석학자 윌리엄 마이스너(William Meissner)는 말했습니다.
“정신분석에서 사용하는 렌즈는 …필연적으로 어떤 특정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계가 있습니다. … 그러므로 이렇게 역동적이고 복잡한 인물에 대해 정신 분석은 어느 정도 통찰력을 제공하지만, 그건 부분적인 초상일 뿐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정신분석을 통해 그의 인간성을 좀 더 명확히 그릴 수만 있다면, 그의 영성과 거룩성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3] 해석자의 목적은 “ [대상자의] 삶을 객관적 사실로 묘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너머, 그의 마음과 정신을 들여다보는 것”이지만, 그러한 작업에는 항상 “ 은폐 요소가 있습니다…. 그건 그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동기와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마이스너는 반복해서 강조합니다.[4] 이러한 이유로 저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인물을 존경심과 겸손함을 가지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성격의 해석적 글쓰기에서 주관적 편견은 필연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5]
먼저 밝히고 싶은 것은, 저는 스코틀랜드, 영국, 프랑스계이며 북미 동부 해안 도시에서 자랐고, 개혁파 장로교 소속이지만, 빈센트는 저보다 한 세기 전 북유럽 저지대, 네덜란드 개혁파 개신교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주로 작품생활을 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빈센트의 삶과 종교적 경험의 신학적 차원을 중요하게 다루었지만, 심리적 분석은 부차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수년동안 고흐를 연구하고 글을 쓰는 동안, 목회자로서 신학과 철학, 목회상담 교사로 섬겼던 것과 평생 시와 재즈를 사랑한 저의 배경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빈센트의 말을 사실적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느낀 현실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시적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오랜 세월동안 그의 편지와 예술에 몰두하면서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빈센트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기엔 시적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를 더 잘 알기 위하여 시적 표현을 사용했지만, 반대로 진실에서 벗어날 위험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빈센트가 자살로 삶을 끝내려는 순간에 어떤 마음이었을지 해석하는 경우가 그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시적 표현’의 근거는 자기 심리학의 “대리 성찰(vicarious introspection)”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주관적 경험을 잘 이해하기 위해, ‘공감적 조율(empathic attunement)’을 통해, 그의 경험과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간단히 정의하자면, ‘공감적 조율’을 한다는 것은 ‘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인데, 솔직히 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이런 시도를 하였습니다. 물론 저만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떤 식으로든 저는 다른 고흐 연구자들의 학문적 성과를 사용하여 이 작업을 했습니다. 빈센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고흐 연구자들은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인간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마음과 감정과 상상력을 사용합니다.
절차적 고려 사항
빈센트가 쓴 800여 통의 편지와, 그가 그린 900여 점의 그림과 1,000여 점의 드로잉을 상세히 분석하는 것이
[6] 복잡하고 때로 벅차기도 했지만, 그를 가까이할 수 있었던 시간은 매우 짜릿했고, 영감으로 가득했습니다. 특히 여러 곳에 전시된 그의 그림과 초상화 앞에서 조용히 감상할 때, 나는 그가 이 장엄한 예술 작품을 제작하는 순간, 붓을 잡은 그의 손에서 흘러넘친 고뇌와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은 마치 신비한 종교적 경험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빈센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1,700여 장의 인쇄된 편지 속에 담긴 수많은 ‘보물’을 채굴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그건 빈센트의 편지 전체를 특정 주제별로 분류하고 기호와 색상을 할당하면서 구성한 상세하고 체계화된 시스템입니다. 이를 통해 빈센트의 개인적인 관계, 가족 관계, 다른 사람들의 진술, 고흐와 그의 작품, 교회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흐의 생각과 이미지 등 다양한 주제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주제별로 분류하고 그룹화하는 것은 대부분 기독교 신학과, 자아 심리학의 특정 개념과 원리를 사용했습니다. 빈센트의 생애 특정 날자, 사건, 전환점을 포함한 연대표는 이 책의 마지막에 있습니다.
노먼 덴진(Norman Denzin)이 “예술과 정치의 해석”이라는 에세이에서 “이 작가 외에는 누구도 이…세상의 한구석을 독자들에게 이렇게 생생하게 전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결론 내린 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입니다.[7] 그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겠지만, 저의 노력 역시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깨달음, 그리고 긍정정인 성장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빈센트의 작품이 미술계와 미술 비평계에 잘 알려졌지만, 놀랍게도 그의 그림을 보거나 그의 편지를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많은 사람은 고흐가 귀를 잘랐다는 사실과 그 사건을 선정적으로 묘사한 가짜 뉴스에 집중한 나머지, 그 뒤에 숨어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모르며, 그것을 더 큰 맥락에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년 동안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하고 글을 쓰는 동안, 갑자기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건 마치 목사와 신자, 상담자와 내담자의 대화 중에 답답했던 것이 번뜩 깨달음을 얻어 길이 보이는 경험과 같습니다. 빈센트의 생애에서 지루할 정도로 사소한 일들과 모두에게 알려진 사건들을 살펴보는 중에, 이런 깨달음의 순간이 갑자기 찾아와 감동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빈센트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펴보면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삶과 작품과 감정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연결되며, 강력하게 영향을 끼칩니다.
앞서 말했듯이,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그들 중 일부는 빈센트의 내면세계에 자리하였고, 일부는 외부에 있지만, 각자가 고유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빈센트가 자아를 초월한 순간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인생에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유진 오닐의 드라마 “위대한 신 브라운” (The Great God Brown)에서 브라운지 죽기 직전 고백한 ‘신’을 개념화한 정신분석학자 하인츠 코훗(Heinz Kohut)처럼, 저는 바로 그 ‘신’이 인생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브라운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인간은 상처투성이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평생 여기저기 고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인생을 치료하는 약입니다.”[8]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빈센트의 삶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의 삶이 지닌 거룩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삶에 대한 해석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이해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은 것은 마음과 생각과 뜻을 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최종적으로 해석될 것입니다.
1. 빈센트 반 고흐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수많은 고통과 투쟁과 비전과 영성을 예술 작품에 옮겨 담은 예술가입니다. (역주)
2. Heinz Kohut은 개인의 정체성, 자존감, 자기 조절에 영향을 미치는 성격의 핵심을 자아라고 정의합니다. 그의 자아 심리학은 자아와 어린 시절 건강한 자아감과 공감 능력의 토대를 제공하거나 빼앗은 자기 대상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역주)
3.Meissner, Ignatius of Loyola, xxvi-xxvii.
4.Ibid., xxi-xxii.
5. 분석적 글쓰기는 고흐의 영성과 인간성에 대한 균형잡힌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의 영적 또는 예술적 유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의 인간적 경험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하기 위해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합니다.(역주)
6. 이러한 형태의 질적 해석을 공식적으로 “근거 이론”(grounded theory)이라고 하는데, “데이터에 근거하여 (귀납적으로 발전시킨) 주제들을 서로 연결하여 관계를 구성하는 이론”이라고 한다(Heppner et al., Research Design, 264). 이는 “사람들의 행동 이면에 있는 동기와 신념”을 찾기 위해 객관적인 자료들을 살펴보는 현상학적 논문이다(Taylor et al., Introduction to Qualitative Research, 4). 이것은 여러 측면에서 에릭 에릭슨이 쓴 ‘청년 루터’의 작업과 유사하다. 마이어(Donald B. Meyer)는 이렇게 말한다. “에릭슨은 루터의 [특정기간]에 집중했습니다…. 루터는 인생의 결정적인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그건 그의 ‘정체성’의 위기였습니다. 그것은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시작하였습니다. 루터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는 그러한 위기를 경험하면서 자기 정체성의 근거에 대한 더 완전한 인식, 즉 더 높은 단계의 자기 통합으로 나아가는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Meyer, “A Review of Young Man Luther: 174).
7. Denzin, ‘Art and Politics,” 323. 반 고흐의 삶을 해석하는 사회과학적 모델은 덴진이 제시한 포스트모더니스트 모델이다(ibid., 313-44).
8. Kohut, Self Psychology,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