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장에, 비슷한 연배의 노인이,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에 따라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들은 다윗, 요압, 아비아달, 나단, 사독 등입니다.
먼저 다윗입니다.
한때 세상을 주름잡았던 다윗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골리앗을 죽여서 일약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울 왕의 사위가 되었지만, 사울의 미움과 견제를 받아 블레셋에 망명까지 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이스라엘로 돌아온 그는 이스라엘을 통일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장단점을 골고루 갖춘 인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했던 면이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모습은 장점입니다.
반면에 많은 아내를 두지 말라고 한 신명기 법을 어기고 9명의 아내를 두었고 19명의 아들을 낳았던 것은 단점입니다.
배다른 왕자들은 권력 다툼을 했고, 그 과정에 첫째 아들 암논과 셋째 아들 압살롬이 죽었습니다.
그가 70이 되어 온몸의 기력이 떨어지자,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이 30대 중반,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입니다.
그는 평생 아버지에게 야단 한 번 맞은 적이 없는 모범적인 아들이었습니다.
서열상으로 자기가 왕이 되어야 하는 데 다윗은 10번째 아들 솔로몬에게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도니야는 40대이고, 솔로몬은 21살이니,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킬 이유는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왕의 재목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도니야는 사람들을 많이 불러서 잔치를 열면, 자기가 왕이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솔로몬 편이라고 확신하는 몇몇 신하들만 제외하고 모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스스로 왕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모인 사람은 모두 손뼉을 치며 지지했습니다.
그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였습니다.
반역을 하려면 신하들의 지지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력입니다.
그가 반란을 준비해서 끌어모은 병력은 모두 50명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내심 기대했던 것은 오랫동안 다윗의 군대장관을 하였던 요압이었습니다.
요압만 자기편이 되면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다윗의 조카였던 요압은 막강한 군사력을 휘두르던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오른팔이었습니다.
평화 회담을 하러 온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을 다윗의 의견을 무시하고 찔러 죽였고, 다윗이 요압의 사촌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삼자 그도 찔러 죽였습니다.
그는 권력욕이 엄청나서. 자기 사촌일지라도 정적이라 생각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전의 요압이 아닙니다.
그도 나이 70이 넘었고, 다윗과 다름없이 기력이 쇠하여 예전의 용맹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노욕을 버리지 못하고, 아도니야 편에 서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가 반란에 가담한 것은 어쩌면 경쟁자였던 브나야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자기가 모든 군사를 통솔하는 군대장관이었지만, 이제 그 힘은 호위대장 브나야에게 넘어간 지 오래입니다.
브냐야는 용맹한 장수로 애굽과 모압과 싸워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독점하려는 요압에게, 언제나 밀려났습니다.
그런데 흘러가는 세월 앞에 장사는 없습니다.
요압도 나이들고 힘이 빠졌습니다.
이미 예루살렘의 모든 군사는 브나야의 수하에 들어갔습니다.
요압은 그걸 역전시키고 싶었습니다.
요압은 군사적 판단을 하지 못했습니다.
달랑 오십명의 군사로 반역을 꿈꾸다니 이건 성공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숫적 열세를 생각하면, 기습이라도 해서 브나야를 처단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물쭈물하다, 공격다운 공격 한번 못하고 반란은 제압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요압은 브나야의 칼에 죽었습니다.
반역에 성공하려면 신하들의 지지와 군사력 그리고 종교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아도니야는 제사장 아비아달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아비아달은 눕의 제사장 아히멜렉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죄목으로 사울에게 집안 전체가 몰살당했습니다.
그때 아비아달 혼자 도망쳐서 살아남았습니다.
다윗이 그런 아비아달을 중용하여 쓰는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비아달에게 라이벌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는 사독입니다.
사독은 원래 사울 왕의 신하였으나 사울의 폭정에 반대하여 다윗 편에 가담하였습니다.
게다가 사독은 아론의 후손이라는 정통성을 가졌습니다.
다윗은 아비아달과 사독, 두 명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정통성이 있었던 사독은 점점 주도권을 잡아갔습니다.
사울 편에서 귀순한 사독이 중심 역할을 하자 아비아달은 반역을 결심했습니다.
마땅히 자기가 주도권을 가져야 하는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한다고 느꼈습니다.
반역에 가담한 아비아달은 결국 숙청되어서 고향인 아나돗에 유배되었습니다.
아도니야의 반란은 자칫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 모든 상황을 정리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나단 선지자였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아 장군을 죽였을 때, 다윗을 크게 책망하였습니다.
나단은 생명을 걸고 왕에게 직언하였습니다.
요즘도 이런 직언하는 충신이 필요합니다.
그 일로 밧세바가 낳은 아들은 저주를 받아 죽고, 둘째가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솔로몬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솔로몬의 이름을 여호와께서 사랑하신다는 뜻의 여디디야로 지어주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그에 대한 소유와 지배 관계가 세워졌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늘에 있는 별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는데,(시147:4) 그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모든 짐승의 이름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이들을 잘 다스리라는 뜻으로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지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부여잡고 이름을 새로 지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건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 하였고, 훗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 솔로몬의 이름을 짓도록 한 것은 매우 특별합니다.
솔로몬은 이제 하나님께 속하였고,하나님을 대신하여 나단이 솔로몬을 가르치고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어려서부터 지혜로웠던 솔로몬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르쳤던 나단 선지자는 아버지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나단과 솔로몬의 아름다운 조화는 나단이 죽을 때까지 유지되었습니다.
나단은 솔로몬의 실질적인 후견자였습니다.
아도니야의 반란 소식을 들었을 때, 나단은 과감하게 결단하고, 신속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는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찾아가 앞으로 해야 할 행동과 말을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찾아가 상황을 자세히 보고하고 반란을 잠재웠습니다.
그가 그렇게 결단하고 행동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다윗이 이미 오래전부터 솔로몬을 후계자로 정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왕상1:30).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솔로몬에게 있음을 알았습니다.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고 중심을 잡았던 나단 선지자는 진정 이스라엘의 원로였습니다.
나단은 다윗 왕국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장은 한 세대가 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래도 그 가운데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70대 노인 중에서 나단과 같은 원로가 있다는 게 다윗 왕국에 큰 복이었습니다.
진정한 원로, 말씀에 바로 서서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가는 원로가 사무치게 그리운 오늘 이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