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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16. 2015

이기적으로 살아라!

주애가 3살 때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주애는 자아가 강하고 고집이 셌다.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날 저녁 주애는 엄마에게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다. 나는 이번 기회에 주애의 고집을 꺾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주애를 내 방에 불렀다. “잘못했어? 안 했어?" 주애는 아무 대답도 안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신문지를 막대기처럼 도르르 말아서 주애의 종아리를 툭 건드렸다. “잘못했어? 안 했어?" 주애는 조금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는 자세였다. 그날 밤 아빠와 딸은 단순한 싸움을 싸우기 시작하였다. 12시가 넘고 새벽이 다가오도록 둘은 기 싸움에 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마침내 새벽녘이 되어서야 주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울음을 터트리면서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하였다. 나는 주애를 안아주고 엄마에게 가서 사과하라고 하였다. 주애의 종아리는 그 힘없는 신문지에 맞았는데도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모른 척 지나갔다.  


그날 이후 주애는 조그만 잘못에도 “아빠 잘못했어요.” 빌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자존심을 세우고 고집부려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안 주애는 두 손을 싹싹 빌었다. 때로 그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기까지 하였다. 그 후로 나는 주애에게 매를 들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주애의 성격이 변하는 것 같았다. 자아가 강하던 주애는 스스로 알아서 양보하기 시작하였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보다 자신이 조금 피해 보는 쪽을 선택하였다. 필리핀에서 공부할 때 조금은 이기적인 언니를 위하여 주애는 기꺼이 양보했다. 등록금이 비싼 인터네셔날 스쿨에 두 딸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을 안 주애는 필리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니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언니가 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이 그때 국제학교에 들어가면 된다는 말이었다. 나도 그 말이 옳은듯하여 필리핀 학교에 보냈다.


한국에 있는 나로서는 주애의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학교 화장실에는 문도 없었고, 영어로 공부한다던 학교에서는 온통 따갈록을 사용했단다. 매제가 필리핀을 방문해서 주애를 살펴보니 매일 눈물로 지내는 모습이 너무 가련하여 자신이 지원해줄 테니 주애도 국제학교에 보내자고 하였다. 나는 그때야 주애의 형편과 마음을 알고 무리스럽지만 주애도 국제학교에 보냈다.


그런 주애가 이번에 독일의 뮌스터 대학원에 가게 되었다. 독일 북부 Kiel 대학원과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에 있는 Passau 대학원에도 합격하였는데 Münster 대학원을 선택하였다. 국제학을 전공하는 주애로서는 독일 유학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독일로 떠나는 날 나는 왠지 주애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주애야. 이제는 이기적으로 살아. 자기주장도 확실히 하고." 이제 독일로 떠나면, 주애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아빠의 마음을 그렇게 밖에 표현 못하였다.

'어린 너의 기를 죽인 아빠를 용서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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