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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pr 04. 2016

야웨냐? 바알이냐?

1928년 시리아 북쪽 해변의 항구 미넷 엘-베이다(Minet el-Beida)에서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큰 돌판을 발견했다. 그 돌은 고대 지하 무덤의 뚜껑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발굴 작업이 이루어진 결과, 그곳은 우가릿(Ugarit)으로 밝혀졌다. 이곳에서 고고학계를 뜨겁게 만든 토판들이 발굴되었는데 고대 우가릿어로 쓴 것이다. 고대 우가릿어는 고대 히브리어와 매우 유사하며, 특히 토판에는 구약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바알신화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바알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기록하지만, 우가릿 토판은 바알을 긍정적으로 기록하므로 바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성경에서 표현되는 바알은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서 사람들의 물욕과 성욕을 자극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우가릿 문서에 따르면, 바알은 마치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모습으로 등장할 때가 많다. '전능자 바알(The Mighty Baal)' '전능한 영웅(The Mightiest of heroer)' '우리들의 높으신 바알(Our king is Baal)' '우리의 지배자는 누구보다도 높으신 분(Our ruler there is none above him)' '우리의 왕은 전능한 바알(Our king is Aliyn Baal)’ 등의 이름은 바알의 속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바알은 구름을 타고 다니며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고, 천지 만물을 다스리고,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한다. 바알에 대한 묘사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비슷하게 닮았다. 

우가릿 토판

“정복자 바알 만세!

구름 타는 이에게 갈채를!

통치자 바다는 우리의 포로, 

심판자 강은 우리의 포로라네."(우가릿 토판에서)


바알이 구름을 탔다면, 여호와 하나님도 구름을 탔다.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신다.”(시104:3-4)


바알이 통치자 바다와 심판자 강을 물리쳤다면, 여호와 하나님도 그러하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이 방언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며.”(시114:1,3)

갈멜산 아래에는 비옥한 이스르엘 평야가 있다. 

광야 생활을 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자신들이 믿던 하나님과 너무나 흡사한 바알 신을 만나게 되었다. 더욱이 자신들은 광야생활을 하면서 어렵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온 반면, 가나안은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풍요롭게 살아가는 것을 보며 이스라엘은 자연스럽게 가나안의 신 바알에게 매력을 느꼈다. 바알의 형상이 금송아지였는데,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이라 부른 것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상황이다.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가나안의 신 바알을 혼합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나 바알이나 그 신이 그 신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도전장을 내민 엘리야

호세아는 야웨와 바알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삼각관계로 설정하여 설명한다. 야웨는 이스라엘과 광야에서 맺어진 부부관계인데,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 이스라엘이 광야의 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가나안의 신 바알을 따라갔으니 그것이 바로 음행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바알)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그가 그 사랑하는 자(바알)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여호와)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호세아 2:5-7) 

호세아의 표현에 의하면, 광야의 신 하나님 보다 가나안의 신 바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훨씬 더 좋은 인상을 주었다. 마치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좋아서 이수일을 버린 심순애 같은 모습이다. 

(사진 : 임한중 선교사) 

여기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민 사람이 바로 엘리야다. 야웨와 바알 중 누가 참 하나님인지 가려내자는 것이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왕상18:21)

바알 신이 오른손에 불을 내리는 번개를 들고 있으므로 너희 신의 장기인 불을 내리는 것으로 테스트하자고 도전하였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홈 어드벤티지를 준 것이다. 갈멜 산에서의 대결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다. 

갈멜산 수도원 입구(사진 : 임한중 선교사)

엘리야가 이렇게 담대하게 도전장을 내민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이런 영적 전쟁은 있다. 그런데 믿는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처럼 중간에 서서 머뭇거리는 모습인가? 아니면 엘리야처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모습인가? 엘리야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도 우리에게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여호수아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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