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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n 02. 2016

갈등은 풀어야 한다.

사무엘하 21장

많은 성경학자들은 사무엘하 21장부터 24장 까지의 이야기는 그동안 미처 다 기록하지 못한 여러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생각한다.


다윗 시대에 3년 동안 기근이 왔다.

이스라엘에서 기근은 드문 현상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매우 건조하고 건건한 땅이다.

남동쪽의 사막으로부터 열풍이 불어올 때면 이스라엘은 숨막힐 정도로 덥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동안 기근이 왔다는 것은 명백히 하나님의 징벌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 내릴 형벌에 대하여 신명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신28:24)


조선 시대에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면 왕이 정치를 잘못한 것으로 생각하여 반찬의 가짓수도 줄이고, 더위를 피하여 모자 쓰는 것, 부채질 하는 것도 금하였다.

고대 왕국의 지도자는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책임지는 자로서 3년 기근이 들었다면 그 책임을 통감해야 했다.

엘리야 시대에 3년 기근이 들었을 때 아합왕은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야!” 하였다.

그러자 엘리야는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왕하18:17-18)

이스라엘의 기근은 아합 왕의 잘못 때문임을 엘리야는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다윗 시대에 3년 기근이 찾아왔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다윗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하였다.


그런데 답은 뜻밖이었다.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삼하21:1)

3년 기근의 책임이 다윗이 아니라 사울 집안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윗의 이런 말에 사울 집안 사람들은 동의했을까?

사실 사울은 잔인한 사람으로 자기 아들 요나단도 죽이려 하였고, 실제로 눕의 제사장과 가족들 85명을 살해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기브온 사람을 죽였다는 기록은 사무엘서 어디에도 없다.

사무엘서 저자는 사울에 대하여 결코 호의적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사울의 잘못은 아주 작은 것까지 다 기록하였는데 왜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은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사울이 정당한 법 절차에 의하여 죽였기에 기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사무엘서에 기브온 사람을 살해한 일이 그리 엄청난 일이 아니기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사실일 듯 하다.

물론 기브온 사람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사울이 자신들을 학살하였고 또 자신들을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이스라엘 특유의 과장법인듯 싶다.

왜냐하면 기브온 족속은 분명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고, 본문의 맥락 속에 그들은 결코 소수가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 물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 집안의 남자 7명을 넘겨 달라고 요청한다.

그들을 사울의 고향 동네인 기브아에서 목 매달아 죽이겠다고 하였다.

칠십인 역은 “태양에 말려 죽이겠다.”, 탈굼은 “십자가에 못박겠다.”, 시리아역은 “번제로 태우겠다.” 로 번역하였다.1)

그러나 현대 성경에서는 목매달겠다나 나무에 매달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울의 가족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들의 자녀들을 목매달아 죽이겠다는 것처럼 잔인한 형벌은 없다.

나무에 목 매달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상징하는 처형방법이다.

자기 자녀와 친척이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을 본 사울 집안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사울 집안 사람들이 다윗의 결정에 대하여 절대 좋게 해석할리가 없다.

이후 다윗이 사울 집안을 포용하려는 제스처를 여러차례 취하였지만 사울 집안은 다윗을 곱게 보지 않았다.

나중에 다윗이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칠 때 사울 집안의 사람 시므이가 나와서 이렇게 외친다.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삼하16:7,8)

사울의 아들들을 죽인 것은 다윗이 무어라 변명해도 그것은 다윗의 잘못이라는 뜻이다.


또 사실 신명기 법에 따르면 조상의 죄 때문에 자손에게 벌주는 것을 금하고 있다.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24:16)

성경학자들 중 상당수는 사울의 아들 7명을 죽인 것은 다윗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정적이 될만한 사람을 기브온 사람의 손을 빌어 처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Brueggemann)


사울은 첫번째 부인 아히노암(삼상14:50)에게서 네 명의 아들(요나단, 말기수아, 아비나답, 이스보셋)을 두었다. 세 아들은 길보아 산에서 사울과 함께 죽고 이스보셋만 살아남았으나 그도 역시 반역자 레갑과 바아나의 손에 죽었다. 사울의 두 번째 부인은 리스바로 두 명의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을 낳았다. 사울에게 두 딸이 있는데 큰딸 메랍은 다윗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였다가 아드리엘에게 시집보내었는데 아들을 다섯 명 낳았다. 둘째 딸 미갈은 다윗과 결혼하였다가 발디에게 다시 시집보냈는데 아들이 한 명도 없었다. 다윗이 넘겨준 7명의 아들은 살아 있는 사울의 자손 모두를 넘겨준 것이다.


그런데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을 처형하는 시기가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바로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였다.(삼하21:9)

보리 베기를 시작하는 때는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하는 때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에 비가 필요한 시기가 아니다.

농사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에 비가 오면 곡식이 여물지 못하기 때문에 비가 오면 안된다.

그뿐만 아니라 건기에는 과일들이 무르익어야 하는 시기이므로 비가 오면 오히려 당도가 떨어진다.

그러므로 사울의 자손들을 처형하려면 우기에 비가 오지 않을 때 해야 하는데 건기가 막 시작하는 때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핑계로 처형하는 것은 명백히 사울 집안을 멸하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울의 처 리스바는 생떼같은 아들 둘을 잃고 그 시신을 보호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도록, 들징승이 범하지 못하도록 밤낮없이 지켰다.

그녀는 비가 오기까지 그렇게 시체를 지켰다.

이스라엘의 비는 10월 달에 시작하는데 그렇다면 6,7개월 가량 시체를 지켰다는 뜻이 된다.

그녀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녀의 고통은 ‘한’이 되었을 것이다.


다윗이 분명 리스바가 시체를 지킨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가 오기까지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비가 오고 나서야 조치를 취하였다.

그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이 보관하고 있는 사울의 뼈와 요나단의 뼈를 가져다 처형당한 7명의 시신의 뼈와 함께 사울 집안의 묘에 묻어 주었다.

이 사건이 언제 있었을까?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된 후 바로 시작되었다 해도 최소한 3년 동안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가져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볼 때 이는 매우 유의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요나단은 다윗이 왕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삼상24:21)


구약에 죽어 장사한다는 말은 “열조와 함께 자다”로 표현한다.

이 표현은 죽어서 가족 묘실에 묻히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이 죽으면 가족 묘실에 있는 1m 정도 높이의 돌로 만든 벤치에 눕혀 두고 살이 다 썩으면 뼈를 모아서 벤치 아래 열조의 뼈가 저장된 뼈 저장소에 넣어 둔다.2)

이러한 장례 습관을 따라 "열조와 함께 자다."로 표현하였다.  

요나단의 말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요나단이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말라"는 말은 열조의 묘실에 자기의 뼈를 묻어달라는 뜻이다.

열조와 함께 하지 않은 자는 저주받은 자이므로 다윗에게 최소한 그것만은 지켜달라는 뜻이다.

다윗은 자신의 친 형과도 같은 요나단의 유언을 통일 왕국의 왕이 된 후에도 지키지 않다가 이제야 비로서 그 일을 하였다.

다윗과 사울 집안의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여기서 알 수 있다.

다윗 집안(남유다)과 사울 집안(북이스라엘)의 갈등은 사울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잘못도 어느 정도 있음을 지나쳐서는 안된다.

두 집안의 싸움은 결국 나라가 두 동강이 나는 것으로 결론짓는다.

그래도 다윗이 사울 집안의 모든 사람을 그 가족 묘실에 묻히도록 허락하였다는 사실은 불행 중 다행이다.

원한과 복수는 오래 끌면 끌수록 좋은 법이 아니다.

풀 것은 풀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베풀줄 알아야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다.


사무엘하 저자는 아주 특별한 말로 이 사건의 결론을 짓는다.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삼하21:14)

다윗이 사울 자손의 장례를 치룬 후에야, 둘 사이에 맺힌 원한과 갈등을 풀어낸 후에야, 비로서 하나님이 그 땅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주(註)

1) 엑스포지멘터리 사무엘하, 송병현 지음, 국제제자훈련원, 2012년, 319쪽

2) 사무엘하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두란노 아카데미, 2009년, 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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