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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n 04. 2016

참된 기독교의 가장 큰 원수

로이드존스 설교 새롭게 읽기 7 

로이드존스는 목회자이다. 그는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논리적으로 신학적으로 풀어내는 차가운 신학자가 아니다. 그는 설교를 듣는 청중의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설교자이다. 그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데 관심이 없고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고자 하는 목회자였다. 

전도하기 가장 힘든 사람은 불신자가 아니라 형식적 종교인이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를 극렬하게 막았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던 종교인들이었다. 종교개혁 시기에 말씀 위에 바로 서려고 했던 개혁자들을 잡아 죽이고 핍박한 자들도 종교인들이었다. 로이드 존스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원수는 종교라고 선언한다. 생명이 없는 기독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듭나지 못한 종교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기독교 2천 년 역사를 살펴보면 대놓고 핍박하는 사탄의 무리는 위협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 신앙생활 한다 하면서 복음을 모르고, 생명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큰 골칫거리였다. 형식적 종교는 언제나 겉모습에만 관심을 가진다. 율법, 도덕, 예식, 행정, 시스템, 심지어 교회 건물의 세세한 구조 등 그들은 영혼의 내면을 보지 못한다.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도 존경받는 유대의 선생이었다. 율법으로 흠이 없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가는 아주 냉정했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눅11:39)


참된 그리스도인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다. 그는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에 다른 것에 눈을 팔지 않는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더 풍성해지고 싶어 하고,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지고 싶어 하는 열망으로 가득하다. 그들에게 계명은 더 이상 계명이 아니다. 계명을 단지 지켜야 할 하나의 법 조항으로 보는 종교인에게 계명은 무겁고 중한 것이겠지만, 영적 생명을 받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계명은 사랑스러운 가이드다.


성경에 보면 많은 율법이 나온다. 그러한 율법을 보면서 무겁고 중하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종교인일 가능성이 크다. 하나님의 율법 속에는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시고 이끄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하다. 참된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 이 생명은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는데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날마다 더 가까이 가려고 한다. 그냥 도를 닦고 수행하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율법이 무겁고 중하다기보다 고맙고 귀하고 사랑스러운 것이 된다.


참된 생명의 사람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열망한다. 그가 체질적으로나 기질적으로 법과 규칙을 좋아해서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가 너무 좋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 앞에서 즐거워하는 것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것은 인간이 원래 의로웠다는 뜻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면서 이 친밀함을 잃어버리고 의(관계)를 추구함도 잃어버렸다. 구원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다시 교제하고 교통하게 하려는데 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3:18)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율법적인 측면으로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종교인들의 사고방식이다. 새 생명을 받은 자는 의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초임을 안다. 그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고자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행복보다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지기를 더욱 소망한다. 마귀는 언제나 우리에게 속삭인다. “너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것은 행복이야!” 마귀는 우리 편인 것처럼 우리 옆에 서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 주겠다고 유혹한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행복과 기쁨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누리는 기쁨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세상 그 무엇을 다 준다 해도 그의 영적 갈망을 잠재울 수 없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다.


독실한 종교인은 인공적인 크리스마스트리와 같다. 가지마다 장식물을 덧붙이고 화려하게 색칠해서 진짜 나무보다 훨씬 아름답게 꾸며놓을 수 있다. 그러나 생명 없는 나무의 결정적 약점이 있다. 그것은 열매가 없다는 사실이다. 참된 기독교의 핵심은 영적 생명이다. 거기에는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 형식적 종교인들은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도 한다. 그러나 사랑의 열매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던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나님을 믿느냐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다.


형식적 종교인은 경건하고 엄숙하게 보일 수 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장엄한 종교형식뿐이지 참된 기쁨이 없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기쁨이 있다. 비록 예배가 지하 토굴 같은 곳에서 별다른 형식 없이 드려져도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 그는 심지어 환난 속에서도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형식적 종교인은 율법의 잣대로 사람들을 재단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기를 좋아한다. 말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내는 열매는 불화요 싸움이요 갈등이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의 열매는 화평이다. 전파되는 것이 그리스도라면 나는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고,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형식적인 사람이 즐겨 하는 말은 “법이요!”라는 말이다. 그의 칼에는 자비가 없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남을 대하는 태도에 자비와 사랑이 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의 열매는 오래 참음이다. 목회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결국 오래 참음과 온유함이 목회를 이끄는 힘인 것 같다. 칼을 꺼내려면 얼마든지 꺼낼 수 있지만, 내가 가진 인간적인 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최고의 무기임을 경험으로 날마다 배운다.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열매들을 맺는다. 그것은 훈련으로 맺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열매들이다. 신사가 되고자 열심히 노력하면 신사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품성과 본성이 신사인 사람처럼 될 수는 없다.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제 태생이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연스럽게 맺는 성령의 열매들이 그의 삶 곳곳에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조국 땅 조국의 교회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로이드존스 "요한복음 3장 강해"의 일곱번째 설교 '의'를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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