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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n 04. 2016

희망없는 세상에 유일한 희망

로이드존스 설교 새롭게 읽기 8

로이드 존스는 비관자이면서 동시에 믿음의 사람이었다.
세상을 바라볼 때 그는 아무런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해결책 곧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참된 기독교만이 유일한 희망이요 복음이라고 확신하였다.
그가 설교자가 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희망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기독교란 무엇인가?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면서 기독교에 대한 그 사람의 생각을 살펴볼 수 있는 질문이다.

오늘날 이 시대는 사사 시대처럼 각기 제 소견에 옳은데로 행동하고 고집부리는 시대이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를 정치적으로 이해하고, 어떤 사람은 도덕으로 이해하고, 어떤 사람은 자선단체나 사회단체처럼 이해한다.

그런데 누가 그들에게 자기 마음대로 기독교에 대해, 교회에 대해 정의하라고 하였는가?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은 결코 사람들 마음대로 교회를 규정하고, 기독교를 정의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우리에게는 결코 그러한 권한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뭐라고 말하는지 성경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사도행전의 독자인 데오빌로는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는 이 사람에게 기독교를 설명하기 위하여 두 권의 책을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누가 개인의 사상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누가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계시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이 규정하신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기독교는 역사적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되었다.

누가는 사도행전 첫 부분에서 아주 짧게 설명하였지만, 그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고, 가르치셨고, 이적을 행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고, 죽으셨으며 다시 살아나시고 승천하셨다.

아마도 교회를 조금이라도 다닌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당신은 과연 진짜 예수님을 알고 있는가?

인터넷을 뒤져보면 예수님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무한하다.

그러한 지식과 정보를 안다고 해서 예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당신은 예수님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인가?

당신은 예수님과 마음이 통하는 사이인가?

정말 당신은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예수님의 처음 제자들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내세울 만한 것도 전혀 없었고 유명하지도 않았다.

지위도, 돈도, 명예도, 효과적인 선전 수단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큰 핍박을 받았다.

가족과 친척들에게서 외면당하였고, 동족들에게 핍박을 받았으며 어디를 가도 환영받은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 그들이 불과 300년 사이에 로마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고, 로마의 황제마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답은 오직 한 가지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

그저 지식적으로 안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인격젹으로 만났고 교제했고 예수님을 신뢰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

자신만 바뀐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었고, 주변 사람들을 바꾸었다.

그들은 강력한 영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도행전 17장의 표현을 빌리면 초대교회 교인들은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행17:6, KJV These that have turned the world upside down are come hither also)

오늘날 기독교는 영향력은커녕 불신자들에게 온갖 오명을 뒤집어쓰는 보잘것없는 조직이 되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살펴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초대교회 복음 전파의 중심 주제는 자신들이 믿는 예수, 자신들이 경험하고 아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었다.

그들이 믿는 예수는 어떠한 분인가?

그분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보통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분은 영원에서 나와 시간 세계 속으로 들어오셨다.

그분은 천국에서 이 땅으로 오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유의 주이시다.

그런 그분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덧없는 세상에서 의미 없이 살다가 죽어가는 죄인 된 우리(나)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의 온몸을 다 희생하셨다.

그분은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권위를 백 퍼센트 인정하고 그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였다.

그들은 주님이 가르쳐 지키라고 분부한 말씀대로 살기로 다짐하며 그대로 살았다.

초대 교회 제자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주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었다.

그들은 세상을 향한 주님의 구원 계획에 자신들을 불러 주신 것에 대하여 깊은 신뢰와 감사가 있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조금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서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공들여 세웠던 하나님의 교회가 무너지는 모습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교회(건물)를 믿은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믿었다.

마지막 날 백마를 타고 오실 주님은 모든 것을 공평과 정의로 심판하실 것이라 확신하였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나라에 인도하여 줄 것을 믿었기에 자신의 생명도, 물질도, 시간도 다 드렸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그리스도인으로 죽었다.


기독교의 역사는 바로 이런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만들어갔다.

주님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삶과 인생이 변화된 그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켰다.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그 분의 말씀에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고 절대적 순종과 복종의 삶을 살았다.

기독교의 진정한 모습이 사도행전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는 엄청난 영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기독교가 오늘날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

예수님은 단 한 마디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눅10:2)  

초대교회는 이름 없는 성도들도 주님의 사역에 동역자로 나섰다.

그런데 요즘은 이름 있는 성도들도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두 자기 생각만 앞세우고, 사사 시대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데로 마구잡이로 말하고 행동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비전이 무엇인지 성경을 열어 살펴보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앞세운다.

‘기독교는 이래야 한다.

교회는 이래야 한다.

기독교는 이럴 것이다.’

누가 당신들에게 기독교에 대해 교회에 대해 정의하는 권한을 주었는가?


성경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떠벌리며 주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주님은 가슴이 미어진다.

기독교가 진정한 기독교의 정신을 되찾으려면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말씀의 권위 앞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주님의 권위 앞에 생명을 내 놓아야 한다.

인간의 말은 이제 더 듣고 싶지도 않다.

당신들의 생각이 뭔지 알고 싶지도 않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던 초대 교회 성도의 자세를 되찾을 때 기독교의 본질적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을 함께 할 동역자를 찾고 계신다.

말만 앞서는 자가 아닌 생명을 내 걸고 함께 걸어갈 동역자를 찾고 계신다.

희망 없는 이 세상에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참되게 살아가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로이드존스 "진정한 기독교"의 첫번째 설교 '기독교 유일한 희망'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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