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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n 07. 2016

우린 정말 한가족일까?

로이드존스 설교 새롭게 읽기 9

로이드 존스는 사회 정치적인 문제로 설교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의 이슈에 대해서 우물쭈물하면서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성경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분명하게 밝히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이 설교에서는 교회 연합 문제보다 형제 사랑 문제를 거론하였기에 슬쩍 넘어갔지만, 그의 다른 설교를 참고하여 교회 연합 문제를 잠시 거론해 보았다.

현재 기독교의 모든 교파와 교단에서 가장 중요한 논쟁 주제 중 하나는 교회의 하나됨(unity)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하나 되게 부르셨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갈등하고 싸우고 있다.
이것은 명백하게 비극적이다.
교회 분열은 기독교가 가슴을 치고 회개해야 할 문제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하심의 뜻은 무엇일까?
로마 가톨릭은 교회의 제도와 조직의 통일성만 염두에 두고 있다.
희랍 정교회나 러시아 정교회도 같은 입장인데 그들은 모두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뭉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여기서 중재안을 내어놓았다.
누구를 중심으로 하여 뭉치지 말고 그냥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교파나 교단을 초월하여 무조건 하나 되자고 외친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로 모여서 교제하고 함께 일을 하고 기독교의 적에 대해 공동전선을 펼친다면 얼마나 좋겠냐?’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다.

로이드 존스는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데는 아무런 의견을 달지 않는다.
다만 그는 기독교와 종교, 이름뿐이고 형식적인 종교인과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아주 예리하게 구분한다.
기독교의 가장 큰 원수는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종교와 종교인들이라고 그는 거침없이 지적한다.
거듭나지 않았으면서도 거듭난척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서도 하나님의 자녀인척하며 교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이끄는 무리가 기독교에 가장 위험한 원수들이다.
그들은 기독교를 그저 세상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이끌려고 한다.
세상 단체들처럼 기독교도 제도와 조직의 통일을 이루어 세상적 힘을 행사해보자는 것은 명백히 종교인의 시각이지 결코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시각은 아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제일 먼저 누가 참으로 거듭난 성도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바울과 니고데모도 거듭나기 전에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단지 종교인일 뿐이었다.
우리 주변에도 단지 종교인으로서 형식과 이름의 허울만 쓰고 있는 종교인들이 많이 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형제를 알아본다.
교파를 통해서 알아보는 것이 아니고, 어느 교회를 다니느냐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참으로 한 성령 안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아본다.
거기에는 어떤 편견도 자리하지 않는다.
얼굴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와 풍토가 달라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골3:11)

거듭난 사람은 거듭나지 않은 친인척보다 거듭난 형제를 더 사랑한다.
혈육으로 엮인 가족보다 영적으로 엮인 가족이 훨씬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최고의 만남은 바로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의 모임이요 만남이다.
그들은 함께 만나 말씀을 나누고 교제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기뻐한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들은 모이기에 힘을 쓴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

거듭난 사람은 거듭난 형제를 사랑한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육의 감정에 충실하다.
육의 감정은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사람을 대할 때 좋고 싫음을 따라 행동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좋게 해석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나쁘게 해석한다.
그런데 좋고 싫음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감정적인 부분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성경에서 ‘사랑하라’ 하는 말은 감정을 뛰어넘어 의지적인 명령을 뜻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형제를 좋아하라 하지 않고 형제를 사랑하라 하였다.
물론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때로 감정적으로 싫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은 싫은 사람이라고 달리 대하지 않는다.
그도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성도이기에 좋은 사람을 대하듯 대하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서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영광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 복락을 누릴 것을 소망한다.
그러므로 영원히 같이 살 사람인데 미움과 갈등을 뛰어넘어야 한다.

때로 거듭난 사람끼리도 갈등하고 싸울 수 있다.
아직 완전히 거룩한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고 인간적인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에 때로 욕하고 비방하고 다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싸움은 가족끼리의 싸움일 뿐이다.
가족끼리는 나름 불문율처럼 지키는 것이 있다.
진짜 한가족이라면 가족의 치부를 바깥 사람들에게 절대 까발리지 않는다.
그것은 누워서 침 뱉는 격이다.
하나님의 한 가족 역시 마찬가지이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전6:1,7)

참된 기독교는 하나 되어야 한다.
이 당연한 명제 앞에서 로이드 존스는 두 가지를 경계한다.
하나는 그저 형식과 제도와 조직의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종교 연합체를 이루는 것을 명백히 반대한다.
두 번째는 참된 복음을 말하면서 싸움닭처럼 자기와 교파가 다르고, 형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듭난 형제자매를 비난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극단적 근본주의를 반대한다.


거듭남의 표시는 분명히 형제 사랑이고, 이것은 교파와 언어와 인종을 초월하여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함을 로이드 존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로이드 존스 "요한복음 3장 강해"의 여덟 번째 설교 '형제 사랑'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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