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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n 16. 2016

나와 하나님

사무엘하 22장

다윗은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형들에게서 외면당한 체 광야에서 양을 치기도 하였고, 장인인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며 목숨을 구걸해야 할 때도 있었고,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 울며 맨발로 예루살렘을 떠나기도 했다.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 크고 작은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말년에 모든 원수의 손에서 벗어나 평안을 누리게 되었을 때 그는 자기 인생을 돌이켜 보며 시 한 수를 읊었다.

그의 시가 사무엘하 22장에 기록되었다. 


이 시는 “나”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삼하22:2-3)

사무엘하 22장 전체에 '나'라는 말이 무려 83번 나온다. 

‘나’라는 말은 그 사람의 자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방편이다. 

다윗이 사용하였던 '나'라는 말을 분석했더니 소유격으로 36번, 목적격으로 24번, 여격으로 11번, 주격으로 11번, 대조로 1번 사용하였다. 

다윗이 '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면서 제일 먼저 표현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길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체험했다는 고백이다. 

그의 시를 단 한마디로 압축하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다. 

누가 뭐라 해도, 천만인이 나를 둘러싸고 공격을 하여도 하나님 한 분만은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이다. 

그의 이 고백이 그 어렵고 힘든 시절을 견딜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보통 왕이 되고 나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왕이 아니라 할지라도 높은 자리에 오르고 나면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히스기야는 다윗만큼 훌륭한 왕이다. 

그가 나라를 다스릴 때 북쪽 앗수르가 공격하였다. 

초강대국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유다까지 쳐들어와 항복하라고 겁박하였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산헤립 왕에게 화해를 청하려고 성전과 왕궁에 있는 은과 금을 다 거두어 보냈다. 

자그마치 은 3백과 금 30달란트였다. 

그러나 산헤립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무조건 항복하라 하면서 18만5천의 군대를 동원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절대절명의 순간에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항복하라는 산헤립의 편지를 펼쳐놓고 통곡하며 기도하였다. 

그날 밤 기적이 일어났다.  

무슨 연유인지 산헤립은 포위를 풀고 떠나갔다. 

전설에 의하면 밤에 많은 들쥐의 떼들이 나타나서 활과 화살들을 다 씹어버리고 방패의 가죽 줄들을 다 쓸어 버렸다고 한다. 

니느웨로 돌아간 산헤립은 신하들의 반란으로 죽고 그의 아들 에살하돈이 왕이 되었다.


초강대국 앗수르의 공격을 버티고 승리를 하였다는 소식은 주변 나라들에 퍼져나갔다. 

앗수르 뒤에 새로운 강국 바빌론이 이제 막 발흥하기 시작했는데 바빌론의 왕이 그 소식을 듣고 사신을 파견했다. 

유다와 동맹을 맺고 앗수르를 공격하자는 것이었다. 

히스기야는 신이 나서 사신단들에게 자신의 무기고를 열여 무기를 보여주었고, 보물창고를 열어 보물들을 자랑하였다. 

유다가 얼마나 부강하며 힘이 센 나라인지를 과시하고 싶었다. 

사실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야기가 다른 나라에는 와전되어 전해졌을지라도, 히스기야는 그 전쟁의 승리가 자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 때문인 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히스기야가 전쟁의 승리가 마치 유다가 부강하고, 자신의 리더십이 탁월했기 때문인 듯 자랑하였다. 

그 결과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의 교만을 책망하며 엄중하게 선언하였다.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왕하20:17)


다윗은 히스기야와 달리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자신이 승리한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때문이었음을 고백하였다.

이스라엘의 구원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천명하였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높이 평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가 도덕적으로 바른 행동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요. 통일 왕국을 이루는 리더십을 보였기 때문이 아니요, 나라의 백성을 평안한 가운데 살 수 있도록 부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왕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왕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다윗을 삼으셨다. 

다윗의 길을 걸어간 왕은 좋은 왕이고 그렇지 못한 왕은 나쁜 왕으로 평가하였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셨다. 


시편 18에 다윗의 시가 그대로 다시 올라가 있다. 

다만 시 18편에는 표제로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새번역)라는 말이 추가되었다. 

다윗은 자기의 시가 단순히 개인적인 고백에서 머물기를 원치 않았다. 

온 백성이 함께 이 노래를 부르기를 소망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인듯하지만, 실질적인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모두 노래하라는 뜻이다. 


‘나'라는 말을 이토록 많이 사용하면서도 ‘나’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드러내고 높이는 다윗은 참으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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