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념 기념 시리즈 2
초대교회 성도의 특징은 담대함이었다. 그들은 세속의 권세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공의회에 끌려가 재판을 받을 때, 담대히 소리쳤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너희가 판단하라!”(행4:19)
바울은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 할 때, 많은 성도가 말렸다. 그때 바울은 환송 나온 에베소 장로들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자세로 사역했는지를 말하였다.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쳤습니다.”(행20:20)
그는 거리낌이 없었다. 공공장소든지, 사사로운 장소든지 사람의 눈치를 보며 할 말을 못 하지 않았다.
15세기 말 두려움 없이 담대히 사역을 감당했던 사람이 있었다. 종교개혁의 선구자로 불리는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다. 그는 마틴 루터보다 30년 일찍 이탈리아 페라라(Ferrara)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명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았다. 부모는 그가 의사가 되기를 원하였다. 독서를 좋아한 사보나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을 읽었다. 그가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죄 많은 세상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편지하였다.
“이 시대 사람들은 불의와 타락, 간음과 도적질, 우상숭배와 신성모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를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온 세상이 어지러우며 덕과 선이 혼란합니다. 반짝이는 빛줄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며 자기 죄악을 부끄러워하는 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보나롤라는 속세를 떠나기로 하였다. 세상은 사악하고 인생은 허무하다고 느낀 사보나롤라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기도하며 영성을 추구하였다. 수도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더라도 죄악 세상에서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한 영성은 아무런 힘이 없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리고 요동친다 하여도, 속세를 떠나 고고히 영성만 추구하는 삶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다. 변화 산의 영광을 본 베드로가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 머뭅시다.’ 할 때 예수님은 단호히 거절하였다. 사명자는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사보나롤라도 죄악 된 세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불의한 세상을 볼 때,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비록 그 앞에 죽음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않겠노라 결심하였다. 후일 그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설교하였다.
“나는 이제껏 한 사람의 수도자로 안전한 항구에 정박한 돛단배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 인생, 마치 일엽편주 같은 생명을 광활한 바다로 떠밀어 보내셨다.
내 앞에 펼쳐진 드넓은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나는 이미 바다 저편에서 다가오기 시작하는 무서운 태풍의 소용돌이치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뒤돌아보아도 전에 내가 머물렀던 포근한 항구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
나는 바람에 밀려 점점 흉용한 바다 한가운데로 항해해 간다.
주님께서 부디 은총을 베푸사 나로 하여금 그 항구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옵소서.”
1486년 사보나롤라는 이탈리아 북쪽의 작은 마을 브레스치아(Brescia)에서 설교하기 시작했다. 비록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설교였지만, 그의 설교에는 남이 가지지 못하는 힘이 있었다. 그의 메시지는 불붙는 방망이 같았다.
당시 로마 교황은 알렉산더 6세로서 역사상 최악의 교황이었다. 알렉산더 6세는 1431년 스페인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를 따라 보르자 가문에 입적하면서 승승가도의 길을 걸었다. 그는 수많은 정부를 두고 16명의 사생아를 낳았다. 심지어 친딸 루크레치아와 근친상간하여 아들까지 낳았다. 1492년 보르자 가문의 힘과 엄청난 뇌물을 사용하여 62세 나이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이 되어서도 음란한 짓을 그치지 않았다. 교황청에 매춘부들을 불러와 발가벗고 춤추게 했으며 가장 많은 창녀를 상대한 남자에게 상을 주었다. 1503년 정적인 다 코르네토 추기경을 독살하려고 독배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미련하게도 상대방이 마셔야 할 독배를 자신이 마시는 바람에 죽고 말았다.
알렉산더 6세의 호색과 탐욕과 족벌주의는 끝이 없었다. 1490년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 부원장이 된 사보나롤라는 알렉산더 6세를 정면으로 공격하였다.
“로마 교황 알렉산더 6세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직을 매매하는 자이며, 온갖 파렴치한 죄악을 저지른 자요, 거듭나지 못한 자이다.”
그는 부정하고 부패한 권세자들을 향하여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4:1)
“요즘 고위 계급의 성직자들과 설교가들은 세속적인 일과 사랑에 묶여 있다. 영혼을 돌보는 것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세금을 높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설교가들은 왕족을 즐겁게 하고 그들에게 칭찬받는 설교만 한다. 주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일어나십시오. 교회를 악한 세력의 손에서, 독재자의 손에서, 사악한 성직자의 손에서 건져주십시오.”
“오 주님! 주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어찌하여 주님은 졸고 계십니까?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오셔서 귀신들의 손에서 교회를 구하십시요!
매와 꾸짖음을 서두르셔서 저희가 주님 품 안에 빨리 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오 나의 형제들이 중상모략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단 하나의 희망은 하나님의 검이 어서 이 땅을 치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사보나롤라를 권력자들을 회유하였다. 피렌체의 실력자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i Piero de' Medici, 1449~1492)는 막대한 돈을 수도원에 헌금하였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설교하였다.
“고결한 목자란 좋은 감시견과 같아서 도적이 뼈를 가지고 와서 던질 때, 그것을 옆으로 차 넣고 멍멍 짖으며 공격한다.”
교황 알렉산더 6세는 추기경 자리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한마디로 거절하고 이렇게 설교하였다.
“로마 성직자들은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고 있다. 성찬식에서 매매한다. 그들은 더 많은 돈을 주는 자에게 성직을 판매한다.”
마침내 사보나롤라는 1497년 5월 12일 파면당하였다. 그는 감옥 안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였고, 1498년 피렌체 피아짜 델라 시그노리아(Pizza della Signoria)에서 목매달려 죽었고, 그의 시신은 화형당했다.
사보나롤라는 최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전투적인 지상 교회에서 떠나갑니다.
당신들이 나를 지상교회에서 분리할 수 있으나, 승리의 천상 교회에서 나를 분리할 권한은 없습니다.
나는 이제 천상의 교회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사보나롤라는 담대한 설교자였다. 불의한 세상을 보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심판을 선언하였다. 그는 수도원에서 나올 때부터 죽음을 각오하였다. 생명을 내걸고 진리를 선포하던 사도와 사보나롤라와 같은 용기와 담대함이 요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권세자들 앞에 나아가 그들을 축복하며, 조찬을 함께 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내놓고 불의한 세상 권세를 책망할 의로운 사자가 필요하다.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느니라.”(잠28:1)
그의 사회개혁에 대한 식견은 탁월하였다. 그는 피렌체가 '어떤 정치체제를 가졌으면 좋을까?' 깊이 생각한 끝에 이런 설교를 하였다.
“만약 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가 선한 사람이라면, 군주제는 가장 훌륭한 통치 형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악한 사람이거나 무능한 사람일 경우 군주제는 가장 최악의 정부 형태가 됩니다.
이탈리아, 특별히 힘깨나 쓰고 배웠다 하는 사람이 많이 있고, 재치 있고 약삭빠른 인간이 사는 피렌체와 같은 곳에서, 한 사람에게 정부를 맡긴다면, 그는 독재자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정부 형태는 주권이 시민에게 있는 통치 형태입니다.
그리고 그 정부에 시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합니다.”
500년 전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정치적 감각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회 개혁, 도덕 개혁, 정치 개혁에만 집중한 나머지 말씀에 집중하지 못 하였다. 그의 설교는 현실 비판적 설교가 많았다. 때로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설교하기도 하고, 알레고리칼한 해석을 하기도 하였다. 마틴 루터나 칼빈처럼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 그 말씀을 부여잡고 개혁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 천착하였고, 그의 말씀 해석은 그만큼 개혁적 요소가 부족하였다.
기독교는 사회개혁가들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야 한다. 세상(context)을 보는 혜안이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성경(text)을 이해하는 눈 역시 필요하다.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그 뜻을 바로 깨달아야 이 세상에서 선지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기독교의 힘은 말씀에 있다. 진리를 깊이 파고들어, 진리가 말하고, 진리가 이끄는 대로 가야,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진다.
요즘 사회가 몹시 어지럽다.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높여 서로 옳다 그르다 떠들고 있다. 그 모든 사람의 목소리보다, 이 시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깊이 연구하고 생각해야 할 때다. 말씀이 힘이고 진리가 힘이다.
1. 플로렌스의 사보나롤라 : '우뢰의 아들' / Paul K. Christianson 씀 / 차광신 역 / 진리의 깃발 1996년 8월호 / 한국 개혁주의 설교연구원 / 52쪽
2. 중세의 세례요한 기롤라모 사보나롤라 / 김남준 지음 / 도서출판 솔로몬 / 19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