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공공성
"Let my heart be broken by the things that break the heart of God!" - Bob Pierce
"하나님의 심장을 찢어지게 하는 일들에 저의 심장도 찢어지게 하옵소서."
20년 전 필리핀 노동자 교회를 시작하였다. 처음 우리 교인들은 별 생각 없이 동의하여 주었지만, 이내 불편한 일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작은 교회 안에서 시간만 달리하여 예배를 드리다 보니 양보해야 할 것이 생겨났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데서 발생하는 사소한 충돌도 있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노동하는 저들을 향한 불쌍한 마음은 점점 사라져 갔다.
불평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목사님! 필리핀 사람들 화장실 사용 못 하게 해주세요!”
“왜요?”
“필리핀 사람 오줌에 냄새가 나요.”
정말 황당하였다. 주변에 공중 화장실도 없는데 교회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 달라니 교회 나오지 말라는 말보다 더 지독하였다. 지나가던 불신자라도 급하면 뛰어들어와 일을 볼 수 있는 곳인데 함께 예배하는 필리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목사님! 필리핀 사람들 교회 담벼락에 서 있지 못하게 해주세요. 교회 들어오는 데 위압감을 느껴요. 우리가 예배 마칠 때까지 눈에 띄지 않는 먼 곳에 있다가 예배 시간에 맞추어서 오라고 하세요.”
일주일 만에 만난 동포들과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들이 못마땅하다는 말이었다.
“목사님 우리 교회도 힘들고 어려운 데 필리핀 목사님에게 사택 주고 사례도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보냅시다.”
나는 가슴이 무너졌다.
나는 필리핀에서 3년간 선교를 하면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겪어야 하는 설움이 얼마나 큰가를 몸으로 느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데, 일이 있어서 관공서를 찾아갈 때면 더욱 두려웠다. 한 번은 운전하는 중에 역주행하는 차와 부딪힌 적이 있었다. 운전자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라고 하였다. 한국에서 하듯이 차를 세워두고 필리핀 경찰을 불렀는데 그는 오히려 내가 교통 방해를 했고 잘못을 범했으니 상대방 운전자에게 돈을 주라고 하였다.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곳 생활이 기뻤던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때문이었다. 필리핀에 조금 큰 교회는 어김없이 외국인을 향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10시 따갈록 예배, 11시 영어 예배, 12시 중국어 예배, 2시 한국어 예배. 각기 따로 사역자가 다 있었고 그들 모두는 동역자로서 함께 사역하였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최소한 교회 안에서는 차별도 없었고, 설움도 없었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이런 교회를 만들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필리핀 노동자 교회는 정말 어렵게 이끌어갔다. 필리핀 노동자들은 안양, 안성, 천안, 파주, 화정, 영등포 등 전국 각지에서 3D 업종으로 일하였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욕설이 난무하는 공장 일은 서러움 그 자체였다. 기계 조작을 잘못 조작하여 사고 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불법 체류자로 체포되어 구금되어 강제추방되기도 하였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데,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데,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를 때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문제를 교회에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하면 오히려 그들을 내보내자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사무엘 목사님이 한밤중 전화를 하거나 커다란 눈에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날 찾을 때면 어김없이 사건이 터진 경우다. 그래도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체계가 잡혀가고 이제는 뜻하지 않게 불려가는 일은 없어졌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출23:9)
이스라엘 사람은 이방에 나그네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백성이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부터 나그네였다. (창23:4) 야곱 역시 애굽의 바로에게 자신의 인생길이 나그넷길이었다고 고백하였다. (창47:9)그들은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 생활하면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고되고 서러운지 알았다. 애굽 400년 종 생활에서 그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출22:21-23)
하나님은 이방 나그네가 압제받고 괴롭힘 당할 때 가슴이 찢어지신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반드시 그 원통함을 갚아주시겠다고 선언하셨다.
누구보다도 약자의 아픔, 이방인의 설움을 잘 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를 만들고자 하셨다. 나그네의 소망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하여 자기 땅에서 농사짓고 살아가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은 바로 그런 의미다. 나그네 인생길,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설움 받던 그들이 자기 땅 자기 나라에서 맘 편하게 살아가는 것이 안식이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서 안식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 모두에게 골고루 땅을 분배하여 주었다. 이제는 설움도 없고, 눈물 나는 것도 없고, 압제 받는 일도 없다.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세속 나라들을 바라보며 자신들도 큰 나라 만들고 싶고, 더 잘 살고 싶은 욕망으로 왕을 세우고, 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을 따라가면서 점점 변하였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은 사라졌다.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고, 고아와 과부, 약자들을 학대하기 시작하였다. 그 꼴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찢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앗수르와 바빌론에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가 다시 이방 나그네의 삶을 살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어렵게 나라를 회복하였지만, 이방 나그네를 개같이 여기며, 지옥 불쏘시개로 여겼던 유대인을 다시 흩으신 것도 하나님이시다. 2000년 동안 나라 잃은 설움을 겪은 유대인은 정신을 차렸을까?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팔레스타인을 괴롭게 하며 학대하며 압제하고 있다. 인간은 언제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필리핀 노동자 교회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 하겠다. IMF 전에 필리핀 노동자들은 200명 정도 모였다. 한국 교인을 넘어설 정도로 부흥하였다. 이러다 이 교회가 필리핀 교회로 바뀌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소리도 들었다. 매 주일 필리핀 교우들에게 오는 편지로 사무실은 넘쳐났다. 교회는 고향 소식을 듣는 장소였고, 정보를 주고 받는 장소였고, 서로 위로하고 안아주는 장소였다. 비록 한국 교우들은 그들을 품어주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품어주고 계셨다. 필리핀 교우들은 서북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IMF가 터지면서 공장이 문을 닫고 필리핀 교우들은 속속 고향으로 돌아갔다. 50명도 채 모이지 않는 작은 교회가 되었다. 한국 교인들은 필리핀 교회가 작아졌으니 이참에 문을 닫자고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필리핀으로 돌아간 교우들이 한국의 서북교회를 잊지 못하여 자기 땅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교회 이름은 자기 지역명을 먼저 쓰고 뒤에 서북교회라 이름하였다. 노동하여 번 돈으로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 이름에 서북이란 글자까지 넣어주니 감격이었다. 그들은 서북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받았던 은혜가 더 크다고 하였다. 해 준 것도 없는데... 그렇게 해서 mother church가 15개 daughter church가 45개 생겼다. 신학교도 세워졌다. 모두가 자생, 자립, 자존 하는 교회들이다. 서북교회로서는 뜻하지 않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단지 그들이 예배할 수 있는 공간만 제공한 것뿐인데 하나님의 선물은 크고 놀라 왔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방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 약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요한삼서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