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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n 26. 2018

공감 능력

신10:19

2004년 테리 조지 감독은 영화 ‘호텔 르완다’를 연출하였다. 1994년 르완다 내전 중에 호텔 밀 콜린스에서 100일 동안 1,268명의 난민을 보호한 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의 실화를 영화로 만들었다. 후투족의 학살을 피해 도망치는 난민을 전 세계는 남의 일이라 모른 채 하였다. 1268명의 난민을 지키기 위해 홀로 힘겨운 싸움을 하는 폴의 노력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인종 청소와 같은 대량 학살의 참상을 알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1994년 벌채용 칼로 한 사람씩 난도질해서 불과 두어 달 만에 거의 백만 명의 목숨을 빼앗은 것이 르완다 학살의 진상이다.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후투족과 투치족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교회와 학교를 다니며, 같은 마을에서 살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다. 두 종족은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고 서로 자유롭게 결혼도 하였다.1) 두 민족 간의 평화협정도 체결되었고, UN군이 파견되어 그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때 후투족의 지도자 어거스틴 비지문구(General Augustin Bizimungu, 1952-2011)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벌채용으로 사용되는 수십만 자루의 칼을 수입하여 은밀하게 후투족에게 나누어주었다. 칼을 나누어 주면서 올해 풍년이 들어서 수확할 작물이 매우 많아질 전망이라고 하였다. 모두 풍년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겉으로는 평화와 번영을 이야기하였지만, 이내 검은 속마음을 드러내었다. 선동가들을 동원하여 투치족은 ‘바퀴벌레’ 같은 존재라고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라디오 방송에서 조롱하던 말이 후투족 사회 전체에 퍼져나갔다. 그들 모두가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지고 괴물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약 백만 명의 대량 학살은 그렇게 진행되었다.2)  


루돌프 헤스(Rudolf Hess, 1894-1987)는 히틀러 정권이 성립하자 국무장관으로 입각하였다. 그는 괴링 다음가는 총통 후계자였다. 그는 유대인을 합법적으로 탄압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법을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극우 민족주의자였던 헤스의 과격한 생각에 히틀러마저 불편해할 정도였다. 헤스는 히틀러가 내린 명령을 ‘성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이 받은 명령을 도덕적 목표라고 믿었으며,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인간적 마음을 억눌렀다. 그는 전범 재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유대인을 향한) 약간의 연민을 보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주어진 임무를 계속해서 수행해야 했다.  

내게는 몰살과 대량학살의 의무가 있을 뿐이며, 개인적인 내 감정은 억눌러야 했다.”3)

재판받는 루돌프 헤스

전범 재판에 회부된 극렬 나치 당원들의 공통점은 공감 능력의 상실이었다. 또 다른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은 단 한 번도 법을 어겨본 적이 없었던 모범 시민이었다.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그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법대로 했고, 명령에 순종했을 뿐이다. 한나 아렌트가 발견한 것은 ‘악의 평범함’(banality of evil)이었다. 그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어렵게 찾은 그의 죄는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자기에게 주어진 명령의 부당함에 대하여 아무 생각이 없었다. 생각 없음은 다른 말로 말하면, 가스 실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유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는 공감 능력이 전혀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히 르완다의 후투족을 증오하거나, 독일의 나치를 경멸하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독일인의 입장이 되어 독일인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찌하여 나치가 권력을 잡도록 지지하였고, 나치의 정책에 국민 90% 이상이 환호하였던가? 그들은 무엇 때문에 대량학살에 동조하였을까?  


1차 세계대전 패배로 경제는 망가지고, 삶은 황폐하였다. 그때 등장한 히틀러는 구세주와 같았다. 국가 경제를 다시 일으키고, 국민을 잘살도록 하겠다는 오래된 선동술에 국민은 현혹되었다. 이 어려운 시절에 우리 먼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국익 우선주의에 전 국민은 동의하고 열광하였다. 지금까지 함께 어울려 살아온 유대인들과 약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자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풍요와 번영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희생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폭력 문화, 살인 문화가 만들어졌다.  


루돌프 헤스가 고백한 대로 폭력과 살인은 공감 능력을 배제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매를 맞는 사람이 아파하는 모습에 공감해서는 살인할 수 없다. 한 명이 죽든 수백 명이 죽든 나만 아니라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해야만 가능하다. 칼에 찔려 피 흘리는 모습을 불쌍히 여기면 안 되고, 총에 맞아 죽어가는 사람의 아픈 신음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된다. 살인과 폭력은 고통받는 사람을 철저히 외면해야 가능하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가인의 후예인 라멕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노래를 부른다.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창4:23-24)  


가인과 라멕은 살인자였다. 그러나 그들도 나름 핑곗거리는 있었다. 가인은 시기와 질투가 핑계였고, 라멕은 자신이 받은 상처가 핑계였다. 그 상처가 마음의 상처인지, 실제 상처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자신이 상처받았기에 보복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몇십배 끔직하게 보복하였다. 정당하고 합당한 보복이 아니라 살인을 저지르고 노래까지 불렀다. 자신 때문에 아파하며 죽어가는 사람의 고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분노와 살인 욕구만 가득할 뿐이지, 공감과 동정하는 마음, 긍휼의 마음은 없었다.


가인의 후예가 만든 문화는 타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을 공격하여 살인하는 폭력 문화다. 그들이 만든 문화는 공감 능력 제로이다. 국익을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상처받았기 때문에, 그냥 싫어서, 내가 잘살기 위해서 타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타자의 아픔을 헤아리지 않는 공감 능력 제로인 사회는 악의 평범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국가를 위한 법을 주실 때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다. “너희는 (이방, 외국인)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10:19, 출23:9) 하나님께서 단순히 외국인 나그네를 잘 대하라는 법을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법 이전에 공감 능력을 강조하였다. 냉정하고 차가운 법, 지키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생각을 버리고,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켜서 법을 따뜻하게 하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여리고로 내려가던 한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을 정도를 매를 맞고 물건을 빼앗겼다. 그는 길바닥에 쓰레기처럼 버려져서 신음하였다. 마침 그때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이 지나갔다. 그는 백성에게 언제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설교하였다. 말과 이론은 그럴듯하였지만, 그에게 공감 능력은 없었다.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고통받는 사람 곁을 지켜주지 않았다.


날마다 율법을 연구하던 레위인도 거기를 지나갔다. 아침마다 큐티를 하고, 저녁에는 중보 기도 모임에 참석하였지만, 그도 역시 공감 능력은 하나도 없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듬어 주기는커녕,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지나쳤다. 신음에 귀를 막았고, 보지 못할 것을 본 것인 양 고개를 외면하였다.


그때 외국인 나그네, 늘 경멸하고 따돌렸던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갔다. 그라고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여행자였다. 수많은 여행을 하면서 자신도 여러 차례 위험을 겪었고, 그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가졌을 법한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는 아파하는 신음을 외면할 수 없었고, 피 흘리는 모습에 불쌍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여행 일정이나 비용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만나 적이 없는 그(타자)를 치료하기 시작하였고,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돌봐주었다.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에게 공감 능력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은 말씀에 정통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교회 생활에 충성을 다한다. 그런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크리스천 공동체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정글북’의 저자인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1936)은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

누이와 유모는 말한다.  

선한 사람들은 모두 동의하길

그리고 선한 사람들은 모두 말하길

훌륭한 사람들은 전부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그리고 그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타인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그 타인들은 바다 건너 저 멀리에 사는 사람들이며

우리는 단지 길 건너에 산다고  

하지만 당신은 그런 이야기를 믿는가?

그들 역시 우리를 바라볼 뿐이다.  

또 다른 타인으로!’4)


2003년 노스캐롤라이나 하이포인트의 웨스트앤드 마을은 범죄와 무질서가 판치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마약상들이 가득했고, 그들은 영역 다툼으로 날마다 총격전을 벌였다. 때로는 마약을 구하려는 중독자들 때문에 길이 막혀 지역교회 신도들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할 지경이었다. 하이포인트 경찰은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경찰과 다를 게 없었다. ‘마약상’을 타인으로 간주했고, 사람들을 세워 몸수색하고 주머니에서 마약을 발견하면, 가차 없이 체포하였다. 교도소에는 범죄자로 차고 넘쳐났지만, 변화는 없었다.


그때 데이비드 케네디 교수의 제안에 따라 ‘집중적인 저지’라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먼저 실태를 파악하였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마약상은 많지 않았다. 단지 16명뿐이었고, 그들 중 세 명만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였다. 경찰은 폭력적인 마약상 3명을 체포하였고, 나머지 마약상들과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었다. 지역사회의 명사들과 부모, 친척, 그리고 자신들과 가깝고 친분이 두터운 지인들을 불러 모았다. 강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마약상’을 타자로 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약상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마약상들은 자신이 지역사회에 소중한 존재라는 마을 주민의 설명을 들었다. 진심으로 설득하였다. 만약 그들이 마약 판매와 총기 휴대를 중단하면,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지역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 기꺼이 받아주겠다고 하였다. 물론 일자리도 제안하였다. 마약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가정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공감하고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하이포인트 지역사회는 바뀌었다. 마약상과 범죄는 사라졌다. 마을의 누가 아파하면 함께 공감하고, 마을의 누가 곤란한 지경에 빠지면 함께 도와주었다. 공감의 능력으로 가득한 하이포인트는 살기 좋은 마을이 되었다.5)


우리 사회도 타자를 향한 공감 능력으로 가득한 하이포인트 마을 공동체처럼 되면 얼마나 좋을까?


1) 제레드 다이아몬드, ‘문명의 붕괴’, 강주헌 옮김, (김영사;서울) 2005년, 444쪽

2) 폴 에얼릭, 로버트 온스타인, ‘공감의 진화’ 고기탁 옮김, (에이도스;서울) 2012년, 33쪽 이하

3) ibid, 35쪽

4) ibid, 22쪽

5) ibid,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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