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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l 04. 2018

순혈주의를 반대하며

영화 '프리 스테이트 오브 존스'를 보고서

‘게리 로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 ‘프리 스테이트 오브 존스(Free State of Jones)’를 보았다. ‘매튜 매커너히’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2016년에 제작된 전쟁 역사 드라마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 1862년에서 1876년 사이, 미국 미시시피의 존스 카운티라는 마을에서 발생한 일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남북전쟁 때 한 남자(뉴튼 나이트)의 여러 투쟁을 다룬다. 뉴튼(매튜 매커너히)은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끌려온 조카의 허망한 죽음을 계기로 탈영하여 고향에 돌아온다. 그러나 고향의 상황은 전쟁터보다 더 참담하였다. 남부 자치법에 의하면, 생산물의 10%만 세금을 내도록 하였지만, 남군은 전쟁지원을 명목으로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반면에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며 많은 노예를 거느린 부자들은 전쟁에 나가지도 않고 세금도 내지 않았다. 결국 남북 전쟁은 부자들을 지켜주기 위하여 힘없고 가난한 농민들만 죽어 나가는 현실을 깨달은 뉴튼은 남군에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늪지대에 숨어서 남군에 저항하던 뉴튼 곁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백인 탈영병들, 가난하고 힘없는 농민들, 흑인 노예들. 그들은 자기들이 농사지은 것을 빼앗기지 않고 마음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자유를 꿈꾸었다. 남부 정규군과 싸움에서 승리한 그들은 모두가 평등한 ‘Free State of Jones(존스 자치구)’를 세운다. 인종 차별이 없고, 빈부 차별을 하지 않는 존스 자치구를 이끄는 뉴튼 나이트는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흑인 노예였던 레이첼(구구 바샤 로)과 결혼하였다.

그는 존스 자치구의 4가지 원칙을 발표하였다.

1. 누구의 가난이 다른 이의 부가 되지 못한다.

2. 누구도 다른 이에게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무엇을 위해 죽는지 강요하지 못한다.

3. 자신이 수확하고자 땅에 심은 것은 누구도 빼앗지 못한다.

4.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났지만, 존스 자치구를 이끄는 뉴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백인은 모두 떠나고 흑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그에게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남부는 연방법을 교묘히 피해서 ‘견습생’이란 명목으로 과거의 노예들을 다시 붙잡아 강제 노역을 시켰다. 남북전쟁의 결과로 주어진 선거권을 확보하기 위해 힘쓰던 해방 노예 모세는 대낮 길거리에서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영화는 85년을 건너뛰어 뉴튼의 증손자 나이트가 결혼 문제로 재판받는 장면이 나온다. 흑인의 피가 1/8 섞여 있어 백인 여인과 결혼이 불가하다는 미시시피 주법에 따라 그는 감옥에 갇힌다. 노예 해방을 선언한 지 85년이 지났어도 인종차별은 여전하였다.  Free state를 꿈꾸었던 뉴튼 나이트 가문은 그렇게 고통받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인종 차별 없고 약자들을 보호하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영화는 보여준다.

요즘 우리 사회에 심심찮게 들리는 단어가 ‘순혈주의’다. 순혈주의(純血主義)란 단일민족과 혼용하여 쓰는 말로서 순수한 혈통만 선호하고 다른 종족의 피가 섞인 혈통은 배척하는 폐쇄적인 민족주의이다. 순혈주의는 미국의 인종차별과 궤를 같이하는 사상이다. 순혈주의는 뿌리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라와 고려 왕실에서는 자신들의 부와 권세를 다른 가문과 나누기 싫어서 족내혼((endogamy, 근친혼)을 하였다.1) 겉으로는 혈통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었지만, 사실은 정치적이고 이기적인 목적 때문에 족내혼을 시행하였다.2) 신라의 골품제는 까다로워 부계 모계가 모두 왕족이면 성골이라 하였고, 부계나 모계중 한 쪽만 왕족일 경우는 진골이라고 하였다. 성골이 진골과 결혼하면 진골로 떨어졌고, 진골이 평민과 결혼하면 평민이 되었다. 결국 성골은 점차 줄어들어 사라졌고, 열성 유전자를 이어받은 진골마자 리더십을 잃게 되었다. 이는 지금도 카스트 제도를 유지하는 인도와 네팔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족내혼의 현상은 유교가 들어오면서 사라진 듯 보이지만, 정략결혼이라는 형태로 얼굴을 바꾸어 오늘까지 존속하고 있다. 소위 한국 정치 경제를 주무르는 대다수 특권계층은 정략결혼으로 얽히고 설켜 있다. 한국 재벌의 족보를 연구한 어떤 경제학자에 의하면, 한국 재벌은 거의 사돈 아니면 겹사돈으로 맺어져 있다고 한다.3) 소위 ‘뼈있는 집안’이나 ‘혈통이 좋은 집안’이란 말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골품제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물학적으로 이런 족내혼은 근친교배 현상이라고 한다. 동물과 식물을 막론하고 근친교배는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들판의 이름 없는 작은 꽃마저, 수술과 암술의 수정 시기를 조절함으로써 최대한 근친교배를 피하고자 한다. 그들은 가능한 한 먼곳에서 오는 꽃가루를 받아 수정하고자 하며, 최악의 경우가 아닌 한, 자가수정이 안되게 되어있다. 근친교배를 계속하면, 열성유전자가 나올 가능성이 커지고 결국 멸종으로 이어진다. 신라 패망의 가장 큰 원인은 결국 골품제의 한계 때문이었다는 연구가 있다.4)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성골이나 진골이 아니면 소외될 수밖에 없었고, 못난 껍데기(성골)들만 요직을 점령하니 그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인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족내혼을 유지하지만, 결국은 문호를 개방하여 족외혼(exogamy)으로 가게 된다.5) 한국 사회의 순혈주의와 정략결혼은 결국 나라를 썩게 만들고 망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도 처음에는 족내혼으로 시작하였다. 아브라함은 이복 누이동생인 사라와 결혼하였으며, 이삭은 사촌 브두엘의 딸 리브가와 결혼하였고,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딸들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야곱의 자녀 대에 가서 족내혼은 족외혼으로 바꾸어진다. 요셉은 애굽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하였고(창41:45) 유다 족속의 조상인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결혼하였다.(창38:2)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이었던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였으며, 후일 흑인이었던 구스 여자를 아내로 취하였다. 물론 모세의 누이였던 미리암은 모세가 흑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모세를 지지하였다. 하나님께서 세우려고 했던 이스라엘은 순수한 혈통으로 뭉쳐진 민족국가가 아니었다. 출애굽 할 때부터 허다한 잡족이 함께 나와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루었다.(출12:38)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있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끄는 모세가 흑인 여자와 결혼한 것은 ‘Free State of Jones(존스 자치구)’를 이끌던 뉴튼 나이트가 흑인 여자와 결혼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제발 우리 공동체만은 인종으로 혈통으로 빈부귀천으로 차별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었을까?


모세의 결혼을 통해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혈통으로 인한 민족 공동체가 아니라 신앙으로 뭉쳐지는 공동체임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울은 참 감람나무에 접붙인 바 된 돌 감람나무 비유를 통하여 유대인이나 이방인, 종이나 자유자, 주인과 노예,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는 자유로운 평화 공동체를 가르치고 있다. (롬11:17) 신앙공동체는 신분과 인종의 차별이 없는 자유로운 평화 공동체이다.


순혈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한 나치나 일본 제국주의는 결국 멸망하였다. 대한민국도 백의민족이니 단일민족이니 하면서 혼혈인을 튀기라고 비하하고 배척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역사를 조금이라도 연구한 사람은 우리 민족이 결코 단일 민족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신라 시대부터 다민족 국가였으며 고려 시대에는 외국과 활발한 교류를 하였다. 단지 조선 시대 유교 사상이 들어오면서, 혈통을 강조하고 폐쇄적인 국가로 돌아섰을 뿐이다. 이제 다문화 다민족 국가로 세계를 향하여 열린 자세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순혈주의를 외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행태다. 특별히 온 세계와 민족과 언어와 열방이 하나님 안에서 함께 모여 찬양하는 나라를 꿈꾸는 그리스도인은 더욱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1) 족내혼은 근친혼이라고 하는데, 특별한 가문 내에서 혹은 계급(카스트)이나 인종 집단 내에서만 결혼하는 사회적 관행이다.

2) 김병곤, '신라 박씨왕 시대의 왕실 세력과 신분편성', 한국고대사탐구 28,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18년 4월호 78쪽

3) 이한구, ‘성골과 진골’ 철학과 현실 1992년 9월호 (철학문화연구소) 102쪽

4) Ibid, 105쪽

5) 족외혼은 같은 씨족이 아닌 다른 씨족과 해야 하는 개방적인 결혼 제도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족간의 연합이 이루어지고 결국 연맹 왕국을 형성하며 고대 국가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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