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취식금지구역

by 뱅이


티브이가 없는 우리 집에는 오랫동안 소파가 없었다. 그러다 큰 마음먹고 몇 해 전 소파를 들였다. 내 기준에서 꽤나 비싼 물건이었기에 무척 고심해서 골랐는데 아이들이 있어 커버 세탁이 가능한 페브릭 소파를 선택했다. 하지만 세탁이 가능하다고 해서 덩치 큰 소파 커버를 매일 세탁할 수는 없기 때문에 소파가 설치됨과 동시에 우리 집에는 규칙이 하나 생겼다.


"소파에서는 취식 금지!"


왜 안되는지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매의 눈으로 감시했다. 자연스럽게 음료수를 마시며 소파에 앉는 아이를 식탁으로 불러서 다시 앉히고, 아무렇지 않게 과자를 집어먹으며 소파에 앉는 아이에게 쟁반을 깔아주고 바닥에 내려와 먹게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의 피곤한 감시가 계속되었고 가족 모두에게 소파에서는 무엇을 먹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어 자연스럽게 습관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파에서 먹지 않고도 소파에 음료를 쏟는 일이 발생했다. 우유.. 하필 우유를 들고 식탁으로 가던 아이가 넘어지면서 우유를 소파 위에 엎지른 것이다. 나는 아이가 괜찮은지 확인 후 빛의 속도로 소파 커버를 벗겨냈다. 우유가 스며들어 소파 안쪽까지 젖으면 소파를 통째로 세탁할 수도 없고 우유가 썩어서 냄새가 나면 정말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벗겨낸 커버는 세탁기에 넣고 다른 곳은 괜찮은지 살피면서 혹시라도 우유가 묻어 냄새가 날까 봐 알코올을 뿌려가며 곳곳을 닦기에 바빴다. 바쁘게 움직이면서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는 얼굴에 다 드러나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아이들은 겁을 먹었고 결국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며 화를 냈다.


그 일이 있고는 소파 근처에서는 음식을 들고 지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우스개 소리로 소파 반경 몇 미터 안으로 식음료 반입금지 바리케이드를 칠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다 문득 진짜 바리케이드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소파는 제 역할을 할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함께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었고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소파인데 나는 이 소파가 더러워지는 것을 이렇게까지 신경 쓰며 모시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소파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간식을 먹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이 음식을 흘리거나 쏟으면 나는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걸까? 아이들이 사고를 쳐도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내 몫이다. 아이가 우유를 엎질러도 치우는 것은 내 몫인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깟 우유 한번 쏟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아이가 뭔가를 쏟고 흘리는 일은 거의 매일 있는 일인 데다가 이미 사방천지로 할 일이 널려있는 나에게 예기치 못한 사고는 스트레스를 불러온다. 나는 그 사고를 방지하고자 했던 것인데 그러지 못하니 화가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의도하지 않은 일로 생겨난 그야말로 사고이고 실수인 것을 내가 수습해야 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되짚어가며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숙제와도 같았던 이 고민을 해결해준 4컷 만화가 있었다. 그 만화 속에서는 아이가 물을 쏟으면 스스로 닦을 수 있게 '입으로만' 도와준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로 아이가 닦도록 알려주는 방법인데 아이가 쏟은 걸 엄마가 대신 닦아줄 땐 바닥만 보느라 보이지 않던 아이의 얼굴이 닦아 주지 않으니 혼날까 봐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누군가 닦아주길 기다리는 무기력한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이 스스로 치우도록 시키기 시작했고 이제 제법 치울 줄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나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인내심을 갖고 친절하게 치우면 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혼내며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실수를 하면 스스로 책임을 지면 된다가 아니라 치우는 것은 실수를 한 벌이다로 여기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나에게 화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예기치 못한 사고나 실수는 아이들뿐 아니라 나도 한다. 아니 누구나 실수는 한다. 실수를 방지를 할 수 있다면 방지하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못한 실수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 방지하지 못한 실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실수를 했다면 수습을 하고 책임을 지면 된다. 그렇다면 그 책임이라는 것을 아이가 스스로 지게 하면 어떨까? 물을 쏟으면 스스로 닦고 치우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아이에게 치우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물을 많이 쏟았다면 마른 걸래를 가져오고, 조금 흘렸을 때는 휴지로 닦고, 쏟아진 것이 음료라면 끈적할 수 있으니 마지막에는 물티슈로 마무리를 하는 등의 일을 정말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치울 수 있다면 나도 화를 좀 덜 내게 되지 않을까?


이 방법을 좀더 내게 맞추어 다시 친절하게 알려주고 실수하면 수습하면 된다고 자연스럽게 가르쳐야겠다. 이미 만들어진 어느 정도의 룰은 유지하겠지만 지금까지 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소파를 모시고 살지는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엄마부터 뭔가 엎고 쏟아진느 것에 태연해야 한다. 더럽고 귀찮다며 얼굴을 찡그리면 아이도 치우는 일이 싫은 것이라고 학습 한다. 아무리 주의해도 실수하면서 쏟는 일은 생긴다. 실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냥 살아가는 일의 한 부분일 뿐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의도치 않게 쏟고 깨고 더럽히는 일은 나쁜일도, 좋은 일도 아니고, 반드시 자연스레 발생하는 일이라는 것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걸 치우고 정리하고 책임지면서 즐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부모는 관객이다. p.123




표지이미지: © phillipgold, 출처 Unsplash

참고도서: 부모는 관객이다/ 글 박혜윤 그림 유희진/ 책소유






매거진의 이전글아이의 변덕이 죽 끓듯 할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