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변덕이 죽 끓듯 할때

그건 불만이 아니라 불안이야.

by 뱅이




"어?? 나는 국에 말아먹기 싫단 말이야!"


"엥?? 너 아까 국에 말아달라고 했잖아?"


"아니야! 마음이 바뀌었단 말이야!"


"..." (부글부글) 밥과 국을 다시 따로 담아줌


"아 뭐야! 나는 파 싫단 말이야!" (울어버림)


"그름 믁즈므르.." (나도 울고 싶다 진짜..)




나는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말의 의미를 둘째를 키우면서 알았다. 끓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 공기방울이 이리저리 폭폭 터지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죽처럼 우리 딸의 변덕도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었다. 변덕은 이내 짜증으로 번지고 짜증은 같은 공간 안에 있는 모두에게 전염되기 쉽다. 보통 아침에 저런 대화가 오고 가면 웃는 얼굴로 보내기가 너무 힘이 든다. 훈육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뭐가 문제인지 말하면 말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아이는 스스로도 자기 마음을 모른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알고 말고 할 마음이 없다. 그 마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외부와 관계 맺음이다. 이 관계 맺음의 출발은 단연코 양육자, 주로 엄마다. 불안 덩어리 아기는 엄마를 테스트한다. 엄마는 나 자신이기도 하고, 나 자신이 아니기도 한 가장 큰 불안의 대상인 동시에, 이 불안을 해소해줄 열쇠를 쥐고 있다. 이 불안한 동일시와 독립의 끊임없는 테스트 과정이 엄마와 아이가 맺는 관계의 질을 결정한다.

- 부모는 관객이다 p.79



지금까지 나는 아이가 문제를 제기하고 불안을 드러내면 나는 아이의 문제나 불안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결방법을 거듭 제시하거나 장단점을 알려줬고, 그러다 말이 안 들어 먹히면 화를 내고 우는 아이를 더 울리는 그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끝에는 항상 "엄마 나빠!!!"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나도 쟤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자괴감과 동시에 팔자 탓까지 가지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 '네가 더 나빠!!'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해결을 바라서 내게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도 좋은지 싫은지 자기 마음을 아직 알지 못했어 불안했던 것이다. 어른인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를 때가 많은데 고작 7살 난 아이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치가 않으니 그 불안이 얼마나 컸을까? 아이가 안고 있는 이 큰 불안 앞에서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그냥 다 싫어를 외치는 아이 앞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면 상황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헤아려 주려고 하면 아이의 눈치를 보며 시중드는 상황이 연출된다. 윽박지르고 강압적을 끌고 가면 아이와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지금까지의 나의 잘못된 예시들이다. 이제는 그저 불안의 끝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면 된다. 네가 이것도 싫어하고 저것도 싫어해도 다 괜찮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도데체 어쩌라고?"라는 심정이 된다. 하지만 아이의 불안에 대한 이론을 떠올리면 금세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이의 진짜 마음을 찾아주려고, 해답을 찾아주려고 다그치지 않는다. 너의 불안 자체가 괜찮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의 불안을 엄마인 내 안에서 발견하지 못하도록 한다. 자신의 불안이 이 세상 전부가 아니라는 것, 불안은 아주 작고 일시적인 것뿐이라는 것, 너의 불안의 끝에 흔들리지 않는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중략) 아이는 불안의 끝이 세상의 낭떠러지가 아니라, 불안의 경계에 바위같이 단단하고 안정적인 엄마의 세계가 꼭 붙어있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이게 이 아이의 마음의 틀로 만들어지면 된다.

- 부모는 관객이다 p.81




"어?? 나는 국에 말아먹기 싫단 말이야!"


"엥?? 너 아까 국에 말아달라고 했잖아?"


"아니야! 마음이 바뀌었단 말이야!"


"이미 떠놓은 밥을 버릴 수는 없어. 하지만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괜찮아."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화난 표정을 들키지 않는 것.)


"아 뭐야! 나는 파 싫단 말이야!" (울어버림) << 마음이 바뀌었다는 말에 내가 어떤 반응을 했었어도 불만을 토로했을 것이므로


"네가 하고 싶은 게 생각날 때까지 엄마가 기다릴게. 너도 화내고 싶은 대로 내면서 기다리면 네 마음이 찾아올 거야."


"아니야, 싫어!"


"..."(평화로운 얼굴 표정을 보여준다.)



불만투성이 울보라고 낙인찍힌 아이에게 지금 네가 느끼는 것은 불만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것을 이해해주고 묵묵히 기다려 주는 것. 그렇게 지켜보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역할인 것 같다.




표지 이미지: © zacharykadolph, 출처 Unsplash

참고 도서: 부모는 관객이다/ 박혜윤/ 책소유

매거진의 이전글화가 나가는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