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가는 문

화내는 엄마를 구해주는 스위치

by 뱅이



화내는 엄마


얼마 전까지 우리 집에는 '소리 지르지 마!'라는 문구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주방 근처에 가장 많이 붙어있었고, 안방 화장실이나 옷장에도 붙어 있었다. 그 문구는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굳이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되는 일을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화를 내고 소리 지르는 내 모습을 바꿔보려는 시도였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 된 걸까? 어쩌다가 화만 내는 엄마가 된 걸까? 변명을 좀 해보자면 나는 늘 작은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을 해서 아이를 픽업하고, 저녁을 준비해서 아이들을 먹이고 나면 주방에서 밀린 설거지를 한다. 주로 이 시간이 내가 소리를 많이 치는 시간이었다. 하루의 피로가 누적되는 시간이고, 얼른 집안일을 마치고 빨리 씻고 쉬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을 안고 손을 바삐 움직일 때 아이들이 둘이서 싸우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큰소리로 화를 내며 아이들을 야단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화낼 일이 아닌데 나의 피로와 고단함을 아이들에게 화로 전달하는 꼴인데 당장 화에 휩싸이는 순간에는 그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던 것 같다.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화를 입에서 불이라도 뿜을 것 같은 모습으로 소리를 질렀다. 순간 창밖에서 누가 들으면 미친 사람이 산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사실 아이가 어릴 때는 화낼 일이 전혀 없었다. 특히 첫아이 때는 애지중지 모든 것이 새롭고 예쁘기만 했다. 아이가 울면 빨리 말을 해서 원하는 것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째가 생기고 첫째도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원하는 것을 내게 말해도 내가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떼쓰는 아이를 달래며 슬슬 나에게도 화라는 것이 차오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억누르고 참았다. '그래 아이니까 내가 30년 더 살았으니까 참자 참자.....' 하지만 참고 참으며 누르다가 엉뚱한 데서 뻥뻥 터지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가 어느 육아서에서 화가 나면 엄마가 먼저 그 자리를 피하라는 글을 보고 화가 나면 방으로 뛰어 들어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질렀다. 처음에는 아이가 나의 화내는 모습을 볼일이 없으니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은 아이가 방으로 따라 들어와 베개에 대고 소리 지르는 나를 보고 겁을 먹고 엉엉 울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화내는 것을 화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아이가 대처하는 방법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아예 화를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텐데 '아이에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화를 내면 이 아이는 스스로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화가 나가는 문


아이들은 자기보다 몇 배나 큰 어른이 화를 내면서 소리를 치면 그 화에 압도당한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퇴로를 확보하고 그 길을 찾아 나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스위치를 하나 알려 주었다.

"엄마가 화났을 때 이 스위치를 누르면 엄마를 화에서 꺼내 줄 수 있어. 그 스위치는 '미안해' 야."


처음에는 화에 휩싸여 큰소리가 나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빨리 스위치를 눌러"하고 말해 주어야 했다. 하지만 "엄마, 미안해"하는 말을 듣자 화내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져서 정말로 화가 사라져 버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가 사라졌음을 언어로 표현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 화가 사라졌네.." 하고 말하면서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아이의 말 한마디에 내가 정신을 차리고 화내는 것을 멈추게 되는 경험은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쏟아지는 나의 화에 압도당하지 않고 멈춰서 생각할 수 있게 되니 이 방법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방법은 아동심리 전문가 정유진 선생님의 블로그 '찹쌀떡 가루의 떡 육아 프로젝트'에서 보고 배운 방법이다. (엄마를 다루다>> https://blog.naver.com/dbwlsl0307/220921994583) 이 방법의 배경에는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실험이 있는데 이 선생님은 엄마의 화를 실험의 전기 충격과 같은 맥락으로 설명한다.(상황을 다루다>> https://blog.naver.com/dbwlsl0307/220917367224)


내가 소리를 칠 때 나의 화에 압도당해 겁먹고 안절부절못하는 아이와 실험 속 강아지가 같은 상황이라 생각하니 정말 제대로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도한 화가 나가는 문을 만들기는 정말 효과 적이었다.


우리 집의 화가 나가는 문을 만드는 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미안해' 만으로 모면할 수 없는 상황도 수없이 많다. 그때 아이들에게 대처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스위치도 알려 주어야 한다. 이렇게 나도 배워가지만 아이가 내품에서 하나씩 배운 퇴로를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만나는 '화내는 사람'에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그 강한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내 품 안에서 수없이 만들어졌던 출구로 문을 열고 나가 그 사람의 감정을 의연히 바라보고 대처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찹쌀떡 가루의 떡 육아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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