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공평하지 않게 사랑하기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거짓말

by 뱅이




"딸, 이제 양치하자."

"오빠는?"


"딸, 이제 놀잇감 정리해야지?"

"오빠는?"


"딸, 얼른 밥 먹어."

"오빠는?"


요즘 들어 7살 난 딸아이는 두 살 터울의 오빠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공평함을 주창한다. 자기는 절대 손해 볼 수 없다고 말하며 뭐든지 똑같이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9살 큰아이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뭐든 똑같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나눠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서로 불공평하다며 서로 자기가 차별받는다고 불평을 한다.


공평함은 무엇일까? 공평과 정의는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추구하는 가치다. 그러니까 자식에게 모두 공평하게 사랑을 나눠주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일인 것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라고 하는 말도 그래서 나온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부모 당사자를 제외하고 자식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부모가 누구에게 더 마음 쓰고 있는지 말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공평함은 서로 다르게 태어난 아이를 하나의 기준에 놓고 대하는 것이다. 말을 잘 듣는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 함께 화목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만이 바람직하다는 하나의 기준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모두 다르다. 각자의 성격과 개성이 있고 그래서 자신을 표현방법도 다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생각해보면 공평함에 얽매이지 않고 자식을 사랑할 수 있다.


국가의 정치체계에서라면 이런 인정은 말도 안 된다. 공산주의를 생각해내고, 혁명을 일으키고, 거듭 실패하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목표와 노력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런데 부모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 하나하나와 직접 만나 우주와 같은 무한이 시간과 관심을 쏟아 인간의 공평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도 사랑을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부모는 관객이다 p.25



나는 아이들을 공평하게 사랑하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엄마라는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기로 했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울고 떼쓰는 아이를 억지로 사랑하려 애쓰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떼쓰고 우는 것이 일상인 아이를 달래도 보고, 혼내도 보고, 방치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며 할 필요가 없다. 굳이 아이를 이해하려 하거나 사랑하려 애쓰지 않고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않고 그대로 지켜봐 주기로 했다. 아이가 울 때 내가 화나는 이유는 우는 아이를 억지로 사랑하려고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애씀을 내려놓으면 화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켜보다 보면 아이도 울음을 멈춘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엄마인 나도 아들도 딸도 아빠도 모두 서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의 서로 다름을 바라보며 자기 다움을 찾아가는 것이다.


두 아이를 공평하게 똑같이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다른 아이에게 다른 재미를 느끼고, 다르게 놀고,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걸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오빠의 엄마와 동생이 엄마는 다르다는 것을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엄마인 내가 억지로 애써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두 아이의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지켜보면서 그에 맞게 나답게 반응하면 되는 것이다.


아이를 지켜보는 것.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역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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