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40년째 노력하며 배우고 있어.
애늙은이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과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남편은 아이가 아이답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세상 물정 모르고 마냥 즐겁고 신나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 달리 아이는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상황판단이 빠르고, 그 상황을 어른의 언어(?)로 표현할 때가 많았다.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쟤가 저런 단어를 알고 있어?' 하는 생각이 자주 들 정도로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게 말하고 행동했다. 다르게 말해 애늙은이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우리와 몸집의 크기는 다르지만 영혼의 크기는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를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대해 줘야 하고 어른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그렇게 대하려 노력했고 그런 나의 태도 때문에 애늙은이가 된 것 일 수도 있지만 그에 괘념치 않고 나의 육아관을 이어갔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부모가 철이 없으면 애가 애늙은이가 된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의 육아관이 크게 흔들렸다. 내 아이가 나의 바람과 다르게 애늙은이가 된 것이 내가 철이 없어서였구나 하고 충격을 받으면서 그 말이 너무 맞는 것 같다고 느꼈다. 당시 나는 계획 같은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해서 연고도 없는 제주도로 훌쩍 떠나 살던 시절이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쇄신
아이가 1살이면 엄마도 1살이고, 아이가 2살이면 엄마도 2살이라고 했다. 처음엔 그 말이 눈높이 교육을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생각해보니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고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도 경력이 쌓이니 점점 능숙해진다는 뜻이었다. 엄마 8살이 된 후 육아에 능숙함이 더해졌는지는 몰라도 나는 여전히 철없이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철이 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를 쇄신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끊임없이 책을 사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계획하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는 일은 내 인생을 너무 운에 맡기는 행동이라는 것도 안다. 지금까지 나는 운이 정말 좋았다.
나도 40년째 노력하며 배우고 있어.
지난 주말 영화 '작은 아씨들'을 보면서 너무 여운이 남아 몇 번이나 다시 돌려본 장면이 있다. 주인공인 조와 엄마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엄마의 대사를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저는 왜 이러죠? 수없이 다짐하고 반성의 글도 써보고 울기도 해봤는데 도움이 안 되나 봐요. 감정이 격해지면 모질게 상처 주고 그걸 즐겨요."
"넌 날 닮았어."
"엄마는 화 안 내잖아요?"
"나도 거의 매일 화가 나는걸. 인내심이 많은 천성은 아니야."
"정말요?"
"나도 40년째 노력하며 배우고 있어. 분노에 내 좋은 면이 잠식되지 않게."
"그럼 저도 그렇게 할래요."
"나보다 좋은 방법을 찾았으면 해. 어떤 천성들은 억누르기엔 너무 고결하고 굽히기엔 너무 드높단다."
영화 [작은 아씨들] 조와 엄마의 대화
불혹의 나이가 되어도 끊임없이 노력하며 배우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분노에 내 좋은 면이 잠식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천성들은 억누르기엔 너무 고결하고 굽히기엔 너무 드높단다 하는 그 말까지 너무 크게 와 닿아서 계속 곱씹었다.
마지막 엄마의 대사를 보면서 나에게도 그런 말을 엄마가 해줬더라면 하는 생각과 나도 딸에게 그런 말을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이 쇄신의 방법을 더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아이도 좋은 사람으로 자란다. 그냥 마냥 좋은 게 좋은 사람 말고. 진짜 나답게 어떻게 목적을 찾아 좋은 사람으로 살아 가는지 그 과정을 보고 자란 아이는 분명 자신의 삶의 목적도 잘 찾아서 자기답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육아의 종착점은 아이의 독립이다. 아이가 스스로 잘 나아갈 수 있도록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