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만하면 됐어. 자꾸 까먹어서 뭘 제대로 못 만들어. 근데 너무 굵지? 힘이 없어서 가늘게 못 썰었어.'
'아뇨. 안 굵어요. 맛만 좋은걸요. 근데 육수는 뭐로 ...'
방금의 대화에서 어머니가 알고자 했던 것은, '먹을 만 해? 그럼 됐어.'이다. 어쩌다 한 번씩 음식을 만드시면 꼭 물어보는 첫 번째 질문이다. 난 첫 번째 시식가이고. 음식이 혹시 맛은 없지 않을까 짜지는 않을까 등을걱정하며 하시는 질문인데, 어머니 음식이 맛이 없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어머니의 손 맛에 철저하게 길들여진 나의 입맛이기에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 방금의 칼국수는 그냥 맛있는 정도가 아니었다.내가 먹어 본 칼국수중 제일 맛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년만에 맛보는 어머니의 칼국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머니가 칼국수에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지를 방금 전 몰래 엿보고 왔었기에, 그리고 이러한 칼국수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먹어볼 수 있을까 하는 눈물 도는 감정이 솟구쳤기에 더욱 맛이 있었다. 따라서 '도대체 반죽에 무엇을 넣었는지?'라는 물음은 자동 반사적으로 나온 질문이다.
며칠 전 점심 즈음이었다. 부엌에서 뭔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오랜만에 뭔가 음식을 하시는가 보다. 비빔국수인가? 어제 새로 사 온 소면을 보신 모양이네.'
하지만 난 순간적으로 음식을 더 만들어 놓으면 처치 곤란이라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를 빨리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에겐 아내가 차려 놓은 점심상도 있었고, 냉장고에는 빨리 먹어치워야 할 음식들이 많이 밀려 있었기 때문이다. 난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인덕터 위에는 육수 냄비가 얹혀 있었고 어머니는 저 안쪽 싱크대 쪽에서 뭔가를 하고 계셨다.
'어머니, ....'
아마도 듣지 못하신 모양이다. 귀가 잘 안 들리시기 때문이다. 살짝 다가가보니 밀가루 반죽을 하고 계셨는데 조금은 힘에 부쳐 보이셨다. 워낙 고령이시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니 어머니를 말리려던 생각은 저 멀리 사라졌다. 힘은 들어도 아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애틋함이 느껴져서였다. 또한 그만두기에는 이미 진도가 많이 나가기도 했었다.
'수제비를 만드시려는가 보다. 내가 좀 주물러 드릴까?'
하지만 난 어머니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며시 되돌아 나왔다.
어머니의 낙을 내가 빼앗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반죽이 힘들기는 하겠지만 어머니께는 큰 즐거움이리라.
이제 내가 할 일은 어머니의 수제비를 맛있게 먹는 일뿐이었다.
얼마 후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식탁에는 수제비가 아닌 칼국수가 차려져 있었다. 뜻밖이었다. 힘에 부쳐서였는지 수년 째 시도도 안 하시던 칼국수가 아닌가? 힘들게 반죽도 하고 온갖 재료를 다 써가며 육수를 만들던 어머니의 정성이 느껴져서였을까, 보기만 해도 맛있게 보였고 한 젓가락을 뜨는 순간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칼국수가 또 있으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곧바로 어머니께 달려가 '이 세상 최고의 맛'이라는 것을 어떻게든 전달해드리고 싶었다. 어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을 기대하면서. 하지만 어머니는 '먹을 만 해? 그럼 됐어.'로 대화는 끊어졌다.
난 어머니와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어머니는 이미 등을 돌린 채 TV 화면만을 응시하셨다. 90세 고령이신 어머니는 귀가 잘 안 들리신다. 그래서인지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끝내거나, 듣고 싶은 대답을 듣고 나면 보통은 등을 돌리신다. 아마도 당신에게 목청 높여 소리 지르는 우리가 안쓰러워서일 수도 있고, 우리들 입술 움직임도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당신의 신세가 처량하다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런 이유가 아닌 듯하다. 어머니는 시끌벅적한 세속을 벗어나 한없이 평화로운 '무음의 세계'를 즐기고 계심이 확실하다. 어머니 방 서랍 한구석에서 제 쓰임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보청기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 어머니를 보자니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어 난 조용히 내 방으로 되돌아왔다.
어머니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주무시거나 TV를 보시거나 집안일 몇 가지를 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무미건조하게 살고 계시다. 그런 어머니께 '인생의 낙'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봤다. 이제야 인생의 여유로움이 생겼지만 너무 노쇠해 버린 육체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어머니의 현실이 너무 슬펐다. 잘 듣지도 못하시지만 많이 걸으실 수도 없어 여행도 영화도 아니 가벼운 산책조차도 어머니께는 힘들다. 아니 조금은 즐길 수 있을 텐데도 어머니는 이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조용히 집에만 계시려 하신다. (사실은 아니다. 누나가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드라이브를 시켜 드리고 있다. 누나가 힘들까 봐서인지 겉으로는 아닌 척하시지만 누나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누나, 고마워.') 어머니 삶의 반경은 거의 집안에 한정되어 있고 그나마도 침대가 대부분이다. 어머니의 남은 여생이 그저 이렇게 흘러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어머니께서 여전히 건강하시다는 것이 다행이라 여겨졌다. 기력이 좀 모자란 것일 뿐이지 잔병도 없으시고 집안일들도 곧잘 하실 정도로 건강하시다. 아직도 내게는 어머니께 효도하며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는 것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어머니께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 보니 어머니의 삶에 대한 회상에 스르르 잠긴다.
'어머니가 제일 행복해하셨던 때가 언제였던가? 어떤 일이 있었을 때 가장 즐거워하셨던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어머니께 큰 아픔이었던 일들만이 수도 없이 스쳐 지나간다. 아버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던 일은 어머니께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중학생 막내를 포함한 아직도 장성하지 못한 오남매를 남겨놓고 돌아가셨으니 더욱 막막했을 터였다. IMF 때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전 재산을 잃은 일도 날벼락이었다. 집을 날린 것도 모자라 자식에게 빚더미까지 떠넘겨야 했기에 이는 아마도 어머니께는 깊은 회한이 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이제는 완전히 잊혀진 일이다. 지금은 아무 문제 없이 모두 다 잘 살고 있으며, 괜히 오래전 일로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옛날 일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언급하게 되었는데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소환이 될 듯하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항상 일에 치여 힘들어하던 어머니의 모습만이 생각날 뿐이다. 어머니께는 삶을 즐기는 여유라곤 한 번도 없었던 듯하다. 어머니는 가족들과 먹고살아야 하는 삶이 전부였었기에 친구도 없었다. 아버지가 생전에도 아주 든든한 가장은 아니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고 장손 며느리로서 감당해야 하는 집안의 대소사도 무시 못할 정도로 어머니께 과한 압박을 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호구지책의 일들만으로도 무척 피곤하셨을 텐데 묵묵하게 밤새워 일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너무 생생해서 하는 말이다. 제사나 명절 때만 되면 좀 과장하여 일주일 전부터 그리고 밤새워가며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어머니께 '인생의 여유로움'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어머니의 일생을 되돌아보니 '인생은 고(苦)'라는 말이 실감 난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우리 오남매가 자라는 동안 사건 사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찔했던 그 순간마다 어머니의 가슴 한 구석은 심하게 철렁거렸으리라. 어머니의 어린 시절 또는 젊은 시절은 행복했었을까? 그것도 아닌 듯하다. 어머니의 그 시절은 강압받던 일제 강점기 그리고 참혹했던 625 전쟁 시절이었다.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그 시대의 얘기들은 슬프고 우울한 얘기들 뿐이었다. 결혼 후에는 행복하셨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을 듯하다. 그 시절은 대한민국 모두가 가난했었기에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급했다. 더구나 아버지는 집안 경제에 대해서는 약간 무심한 성격이셨던 바, 어머니가 무척 고생이 많으셨다. 그렇다면 어머니께는 정말로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을까? 물론 어렵게 살아도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 속에 행복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행복은 삶의 고통, 스트레스 없는 순전히 즐겁게 즐기는 삶의 행복을 말한다.
나로서는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어머니께 직접 여쭤본다 해도, 아마 대답은 '글쎄? 그런 때가 있었나?' 였을 것이다.
그랬는데 그 답을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어머니 당신께서 여러 번 직접 말씀하셨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어머니의 말 한마디 덕분에 상기할 수 있었다.
'칼국수 맛있게 먹었어? 고마워. 맛있게 먹어줘서.'
갑자기 나타난 어머니가 내게 고맙다고 하신다.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리고 뒤이어 또 고맙다고 하신다.
'고마워. 너희 내외가 싸우지 않고 재미있게 살아줘서. 그게 가장 큰 효도잖니. 그리고 네가 잘하니까 동생들도 다 화목하게 잘 지내고 온 집안이 평안하잖니.'
'제가 특별히 잘하는 게 뭐 있나요? 다 어머니가 저희들을 올바르게 잘 키워주셔서 그런 것이지요. 어머니, 고마워요.'
이렇게 서로가 고맙다고 하던 중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난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늙은이 같아. 엄마 안 모시겠다고 부부간에 다투고 형제들 간에 다투고들 그러는데, 너네들은 서로들 더 잘하려고 그러니 내가 얼마나 행복하겠니? 늙은이가 너무 오래 살아서 고생만 시키는데도 승욱 엄마는 내게 너무 잘해주잖니?'
'어머니, 승욱 엄마는 어머니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말고 더 행복해하세요. 그래야 저희가 더 행복해지니까요.'
그 순간 난 깨달았다. 어머니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분명히 어머니의 인생 여정에는 고난이 무척 많았었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일 뿐이다. 바로 지금 행복하면 그 삶은 행복한 것이다. 미래도 중요하지 않다. 90세 고령의 어머니가 당신의 멋진 미래를 꿈꾸며 인생 설계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 어머니는 정말로 행복하게 사셨어.'
라고 우리들이 말할 수 있으려면, 어머니는 바로 이 시간 현재에 행복하시면 된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행복한가'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 오남매 모두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된다.
끝.
(2023년 3월 25일 작성)
PS:
글 중간에 질문이 있었다.
'어머니가 제일 행복해하셨던 때가 언제였던가? 어떤 일이 있었을 때 가장 즐거워하셨던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어머니로부터 쉽게 찾았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어려웠다.
하지만 이 답도 찾았다.어렴풋이 생각해오고 있던 바를 누나가 확실하게 확인해 줬다. 누나는 그 사실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