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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로운 Dec 31. 2022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나로 사는 시간을 그만 빼앗겨야겠다


시간이 없다. 빌어먹게도.

캘린더를 들여다보면 알록달록 아주 휘황찬란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할 것도 많고, 만나야할 사람도 많다. 내 몸은 왜 하나밖에 없어서 한 번에 한 개밖에 처리를 못하는 것인지 원.

원래도 시간이 넉넉하단 생각을 하진 않았는데,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후로부터는 더더더더더욱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건 노예라고 말한 니체의 말에 고개를 수천 번도 끄덕일 수 있다.

'나'로서 보내는 시간의 비중이 정말 정말 작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데에 쓰이는 시간들이 빼곡하다.

월급날 카드사에서 '퍼가요~♡' 하듯이 여기저기서 내 시간을 퍼간다.

아들로 보내는 시간, 직원으로 보내는 시간, 동료로 보내는 시간, 친구로 보내는 시간, 애인으로 보내는 시간.

그 시간이 엄청 알차다고 하기도 그렇다. 그냥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정도가 전부다. 함께하는 데에 의의를 두기 때문에 조금 느슨한 시간들이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을까. 문제는 나다. 거절을 못한다. 

나 하나 때문에 성사되지 못하는 순간들이 살짝 미안해진다.

그래서 차라리 내 시간을 빼버리고 만다. 그게 잘못이다.

나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 내 삶이 즐거워지고 재밌어지는데, 아까워 죽겠다 아주.

나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엽서도 만들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하고, 요리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럴텐데! 내가 재밌어 하는 것들을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많이 만들어낼텐데. 

내가 나로 사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더 필요하다. 

다짐,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는 나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2023년은, 나로 사는 시간의 비중을 가장 높이겠다고. 여전히 노예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다해도, 내가 나를 아껴주는 시간을 좀 더 늘려야겠다.

다른 역할로 사는 시간들도, 조금 더 밀도 있게 보내고 싶어졌다. 

친구들과 만날 때에도,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술 마시는 게 전부가 아니라, 무언가를 더 하고 싶다. 집에서 김밥을 만들던지, 봉사활동을 가던지, 무언가를 같이 사부작대던지.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의 밀도를 높이는 방법은 차고 넘친다. 그리고 실제로, 그게 더 재밌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도, 그냥 집 와서 얼굴만 비추는 것보다는 조금 더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내야겠다. 기력은 좀 소진되더라도, 나로 보내는 시간동안 충전하지 뭐.

우리, 새해는 좀 더 알차게 보내보자. 뭐 자기계발하고 성장하고 돈 버는 일에만 써야 알찬 게 아니라, 기억에 남는 시간들로 만들자는 얘기다. 지연이가 그랬다. 하고싶은 거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고 싶은 거 그냥 할 수 있는 시간들로 채우자. 해리랑 갈비 먹고 싶으면 갈비 먹으러 가고, 저녁에 달리기 하고 싶으면 달리기 하는 삶. 대신 사이사이에 충전하는 시간은 꼭 만들고. 일단 난 그렇게 살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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