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망해라
작년에 갤럭시S22플러스로 핸드폰을 바꿨다. 이전 핸드폰은 갤럭시S10이었고 그 전은 갤럭시S7, 그 전은 내 첫 스마트폰이었던 갤럭시S3였다. 언젠가 이벤트로 받은 애플워치는 받은 그 날로 당근에서 팔아넘겨버렸고, 지금껏 애플 제품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영역은 0.1%도 없었다. 지금 직장에서 강제로 맥북을 쓰게 해서 처음으로 애플 제품이 내 인생에 끼어들게 됐다.
내 지인들은 알겠지만 입사 초기에 맥북에 적응하느라 애를 보통 먹은 게 아니다. 윈도우 기반 엑셀에서 쌓아온 나의 커리어는 맥북을 만나고 제대로 너프를 먹었다. 지금이야 엑셀 최신 버전을 사용하지만 입사 당시에는 엑셀 구버전을 사용했고, 버릇 없는 맥북은 넘버스인지 뭔지가 있답시고 엑셀과의 호환성을 지원하지 않았다. 윈도우라면 마우스가 없어도 업무를 보는 데 전혀 지장 없을 정도로 단축키들이 손에 익었는데, 맥북은 단축키는 커녕 마우스로 뭘 눌러야하는지도 모르겠었다. 단축키야 적응이 안됐다쳐도, 디자이너도 개발자도 아닌 마케터한테 맥북은 내 생각에 핏이 좀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가 이런 말 하기 좀 웃기게 받아들여지겠지만, 애플을 별로 안 좋아한다. 사용자 경험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상황에 때깔 고운 마케팅과 브랜딩으로 껍데기를 잘 씌우려는 애플이 좀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괘씸하다는 생각은 사실 애플 제품을 쓰기 전부터도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던 생각들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애플의 브랜딩이 낳은 일종의 부작용이 만들어낸 일종의 저항심리였다.
아이폰을 쓰는 남자는 매력적이지만 갤럭시를 쓰는 남자는 뭔가 올드한 것 같다는 밈부터, 애플을 쓰는 사람은 트렌디하고 나머지는 트렌디하지 않은 것 같은, 특히나 트렌디한 마케터라면 더더욱 애플 제품이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는, 사진을 에어드랍으로 보낸다고 하고 '아 너 에어드랍 안되지' 라며 새삼스럽게 쳐다보는 그런 이분법적 흐름들이 어느샌가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없는 척 존재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가만히 있다 머리채를 잡히는 사람이 되었다. 머리채 잡힌 사람을 '예민하네화났네 장난인데왜그래 진지하게받지마' 라는 태도로 대하는 시선들까지 느껴지지만 진짜 내가 예민한가 싶어서 반응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마음 한 켠에서는 '애플의 브랜딩은 성공적인가? 열성팬을 만들었지만, 일부 극성 팬들이 가만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어버리고 다수 팬들이 묵인하는 브랜드는 좋은 브랜드인가?' 라는 물음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내가 말한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의 그렇지 않고, 장난식으로 가지고 있더라도 그걸 진짜로 믿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별로 개의치 않는 편이지만, 돌이켜보면 살짝씩 긁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삼성의 탓도 분명히 있다. 어느샌가 광고 스타일도 애플과 비슷해졌다.(이건 선후관계가 체감으로도 확실하다.) 비슷한 포지션을 놓고 경쟁을 하려는 느낌을 자꾸 받는다. 선점당한 포지션을 뺏을 거면 확실히 뺏던지, 아예 새로운 포지션을 잡던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감이 있는 초미세먼지 같은 사회적 인식을 만든 데에는 도전자 같은 마케팅을 하는 삼성의 지분도 적지 않다.
마케터가 트렌디한 건 꽤 중요하다. 흐름을 잘 읽어야하는 사람들이고, 그 흐름을 일에 활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래서 꽤 열심히 트렌드를 파악하려 노력하고, 몸 담은 조직에선 대체로 그런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다보니 내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에게 종종 '오 진짜 아이폰 쓸 것 같았어요' 라는 말을 듣는다. 내가 어떤 핸드폰을 쓰는 그 정도의 놀라운 반응을 보일만한 행동일까? 의외라는 반응은 좋아해야할까 말아야할까. 아이폰을 쓸 것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