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마케터라는 사람이 이런 말 하는 게 웃기긴 하다. 시류를 잘 읽고 흐름에 잘 올라타야 하는데.
내가 없어졌으면 하는 것들은, 유행하는 이유가 유행하기 때문인 것들이다. 왜 유명한지도 모르고 유명하기 때문에 따라야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얼마 전에 우리 집 근처 평양냉면 집이 어떤 맛집 리뷰 유튜브 채널에 올라왔다. 가끔 가던 식당이라 반갑긴 했는데, 몇십만 구독자들이 보는 그 채널에 그 식당이 올라오자마자 그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가 없어졌다. 인근에 평양냉면 집이 없던 터라 여름에 가끔 웨이팅이 있던 정도였지만 그 이후로는 평일 점심에 가도 이미 저녁까지의 웨이팅이 다 차버렸다. 재택 근무하는 날 점심도 못먹고 집으로 돌아가느라 허비한 30분이 허탈했다. 그 후로는 가기 전에 전화를 걸어 빈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었다. 계절이 바뀐 지금은 또 그만큼의 인파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계절의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새 그 유튜브 채널에는 수십 곳의 식당이 소개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년 여름의 인파를 비교해보아야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엔 파이브가이즈가 우리나라에 1호점을 열었다. 강남에서 일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침 출근길에 웨이팅을 걸어놓아야 점심 시간에 맞춰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왜 파이브가이즈에 줄을 설까. 런던에서 먹었던 파이브가이즈의 버거는 맛있었지만 인생 버거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패티가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샌프란시스코 어딘가의 수제버거집이 더 인상 깊었다. 사람들이 5시간을 맞바꾸는 파이브가이즈 강남점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차리는 공간은 왠지 또간집 같은 곳에 소개될 것만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해로운 식탁이 되었든, 해로운 OOO이 되었든, 아니면 해리가 차릴 초콜릿 가게가 되었든 미디어에 소개가 될 것 같다고 했다. 나와 해리가 사부작거리는 일들을 좋게 봐준 친구들에게 내심 정말 고마움을 느끼면서 N의 상상력을 동원해 그런 순간을 상상해봤다. 묘하게 싫었다. 또간집이 싫었던 게 아니라, 그 이후에 찾아올 것들이 부담스러웠다. 내 친구들이 우리의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들이 아니라, '어딘가에 소개되었다'는 이유로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했다. 그래서 나는 건방지게도 유튜브 촬영을 거절할 것 같다고 답했다. 방금 말한 이유들과 함께.
트렌드와 유행은 정말 교묘한 독이다. 그게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 가장 멋지고 세련된 것으로 둔갑시킨다. 또 그 트렌드를 좇는 행위와 사람들 마저 멋지고 세련된 사람들처럼 보이게 만든다. 역설적이게도 트렌드는 트렌드가 되는 순간부터 어디가 멋지고 세련되었는지는 잊혀진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멋지고 세련되었다는 것만 남아버린다. 불행히도 트렌드는 기간제여서, 시간이 지나면 마법 같이 느껴졌던 타이틀은 불쌍한 다른 이에게 빼앗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남는 건 철 지난, 유행이 지나버린 과거의 영광이라는 꼬리표다.
확실히 트렌드는 가스라이팅이 맞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트렌드라는 이유로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좇는다. 마치 그것이 스스로를 수식하는 키워드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트렌디하기만 한 사람은 색깔이 없다. 트렌드는 그 사람의 색깔이 아니라 다른 존재에게 붙여진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트렌드보다 취향을 좇았으면 좋겠다. 트렌드는 사람을 동색으로 만들지만, 취향은 각자의 색깔을 뚜렷하게 만든다. 그리고 색깔이 뚜렷한 사람은 존재감이 강하다. 색깔이 있는 사람들에겐 궁금한 게 생긴다. 색깔이 있는 사람들은 재밌다.
유행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물론 친절하길 바란다.) 자신의 선택에 타인이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색깔을 가졌으면 좋겠다. 트렌드라는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더 다양하고 재밌는 사회를 만드는 건 차치하고, 그들이 재밌길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