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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D Feb 24. 2024

연극이 끝난 후

보 이즈 어프레이드 / 아리 애스터 2023



1.


    영화의 중반에서 주인공 ‘보’는 숲에서 일시적으로 정착하는 ‘숲 속의 고아’라는 집단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매번 다른 숲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에 체류를 마무리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연극을 연다. ‘숲 속의 고아’의 한 일원은 보에게 자신들의 연극에 대해 ‘배우와 관객의 경계를 지우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이 ‘경계를 지우는 행위’는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적인 모티브이기도 하다. 꿈과 현실, 진실과 거짓, 은유와 직유, 아들 ‘보’와 어머니 ‘모나’의 관계까지도 경계의 부재로 인해 혼합되어 가는 과정을 피해 갈 수 없다.

    마치 아고사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 등장하는 두 쌍둥이 형제가 서사의 말단에서 과연 별개로 존재했는지, 혹은 한 사람의 두 가지 자아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이 ‘보 이스 어프레이드’는 영화의 내용이 그렇게 흘러갔는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는지에 대한 실마리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해석의 가짓수는 기하수급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2.


    아리 아스터 감독은 전작인 유전이나 미드소마를 통해서도 불가피한 환경에 놓인 인물들의 파국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그의 세 번째 영화인 ‘보이즈어프레이드’도 ‘유전’에서 보여주는 가족의 악마적 내력과 유사하게, 잉태의 순간부터 이미 조작되어 있는 삶의 예정표에 의해 불가항력으로 이끌려가는 좌절된 인격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모종의 냉소적 ‘운명론’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 영화가 전작들과 차이가 있다면 바로 플롯이 ‘미결’로서 종결된다는 점인데, 그래서 이 영화의 끝이 더더욱 좌절스럽고 공포스럽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모태에서 ‘보’가 세상에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어머니 ‘모나’의 재판장에서 침수당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한 번의 ‘주기’에서 ‘물’은 탄생과 죽음 모두를 상징한다. 어머니 ‘모나’의 성(姓)인 ‘와서만’의 앞글자 ‘Wasser’는 독일어로 ‘물’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어머니라는 근원에서부터 파생되어 근원으로 다시 회기 하는 ‘보’의 순환은 그 자체로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불안한 가능성을 넌지시 비춘다. 아리 아스터 감독이 애초에 이 영화의 주인공을 ‘모나’로 설명한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3.


    니체는 영원 회기 사상을 통해 ‘시간 속에서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것, 그러므로 아무런 새로움이 없는 고통, 항락, 사념, 탄식, 등 생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주체적 주인의식으로 ‘긍정하기’를 완곡하게 시사한다. ‘긍정’의 의지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고 생성하는 방식이 바로 ‘amor fati’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정신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는 태어났기 때문에 주체성을 상실했다. 어머니 ‘모나’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체성을 아들 ‘보’에게 주입했으므로 주체로서 독립할 수 없다. ‘보’가 영화의 끝에서 ‘죽었음에도’ ‘모나’가 버젓이 살아있으니 새로운 ‘보’가 태어나 똑같은 순환을 겪게 되는 것은 단순 시간문제다. ‘보’와 ‘모나’의 관계는 기어코 분리될 수 없는, 의존으로 생성되고 소멸되는 ‘경계 없음’의 참혹한 실태를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처럼 ‘보’는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고 싶어 두렵고, 동시에 벗어나더라도 자신이 주거할 근원이 없어 두렵다.  


4.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종교적인 상징(마리아와 예수)은 일종의 왜곡된 모티브로 작용한다. 예수는 애초에 인간 간의 교미를 통해 탄생한 인물이 아닌 지상의 아무런 ‘연고’없이 (신의 직접적 개입으로) 태어난 존재이다. 이 말은 즉, 자신이 자신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연극사에 의해 본격적으로 정의되어 온 연극의 기원은 B.C 5세기경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디오니소스 신 자체가 인간과 신 사이에서 태어난 신이자 재생의 신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디오니소스 극장 / 아테네, 그리스

    연극은 인간의 집단성을 활용한 종교적 의식에서부터 파생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비극적 양식이 초대 연극의 형식을 대표하는데 비극 (tragedy)의 어원은 제사 시 올리던 제물을 일컫는 ‘트라고스’ (양)에서 비롯되었다. 연극의 기원은 곧, 신에게 바치는 인간집단의 ‘제사’ (희생양)와 매우 밀접하다는 해석이다. 그렇기에 연극의 기원이 존재의 근원과 상생을 암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가 자신의 '무연고성', 혹은 독립적 근원으로 잠시나마 누렸던 ‘숲 속의 고아’의 연극. 그러나 그 순간도 잠시, 거스를 수 없는 모나의 현실로 회귀하는 비극.


    ‘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삶의 주인공도, 관객도 될 수 없었다. 샤프의 노래 제목처럼 '연극이 끝난 후'에, 지난했던 보의 수난기는 시끄러운 정적만을 남기고 말았다. 차가운 물에 최종 변론을 토해내는 무력한 불씨처럼.

[Beau is Afraid <보 이즈 어프레이드>, Ari Aster, 2023]

Casts: Joaquin Pheonix, Parker Posey, Amy Ryan, Zoe Lister-Jones, Patti LuPone, Nathan Lane, and more.

A24, July 5th, 2023 (South Korea)


2023년 7월 1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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