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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D Mar 11. 2024

완성의 순간, 순간의 완성

그러나 아름다운 / 제프 다이어 2022 


   재즈다운 것이란 무엇일까. 존 버거는 ‘하나의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은 모든 예술의 본성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재즈는 순간의 예술이다. 찰나의 연주와 찰나의 여운은 예술이라는 인간의 오래된 미궁으로부터 잠시나마 이카루스의 날개를 선사한다. 그러나 비상하는 만큼 추락은 가파르다. 정상을 오르기 위해, 또는 추락하지 않기 위해 음악이라는 순간은 끔뻑이길 멈추지 않는다 - 적어도 재즈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말이다. 


    재즈는 ‘즉흥’과 ‘본성’의 순환에서 지고 피는 모종의 진위를 들춰보게 한다. 연주자의 손과 발 사이에서, 리듬과 멜로디 사이에서,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리프와 기교 사이에서, 연속과 쉼표 사이에서, 차별과 편견 사이에서, 강박과 기만 사이에서, 수모와 보복 사이에서, 힘과 가냘픔 사이에서, 중독과 습관 사이에서, 불가항력과 대항 사이에서, 사실과 픽션 사이에서 재즈의 정신은 삶의 다양한 이면들을 전율시킨다. 


   제프 다이어의 ‘그러나 아름다운’은 레스터 영이 겪은 오욕과 텔로니어스 멍크의 일관된 고집과, 쳇 베이커의 완연한 고독과, 듀크 엘링턴의 피곤한 천재성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재즈 연주자들의 삶을 재구성하여 재즈라는 단독적 시험대를 겪어낸 인물들의 험난한 역사를 기록한다. 비록 이 서술은 사실적 역사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이유는 재즈가 전통이 함축되어 있는, 또는 함축되어 가는 순간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 위의 인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바탕으로 연주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재즈의 전통이란 혁신과 즉흥 연주에 있기 때문에 대담한 우상파괴를 하는 것만큼이나 전통주의 역시 혁신적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예술이란 대부분 과거에 헌신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재즈는 늘 앞만을 바라봤는데 그런 점에서 가장 급진적인 작품은 동시에 종종 가장 전통적이기도 하다. (pg. 303) 

   ‘순간의 예술’ 재즈는 오래된 인간사의 역사를 섬광의 불빛처럼 점화시킨다. 그 순간의 불빛 안에서 삶의 다양한 장면들이 꺼지고 켜지길 반복한다. 예술의 본성은 인간의 본성을 가리키는 지표이다. 재즈가 시작되며 쌓아지고 분해되며 변주되고 다시 시초의 테마로 돌아오는 순환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재즈가 인간의 삶과 매우 닮아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혁신을 통해, 전통을 통해, 고통을 통해, 치유를 통해, 속박을 통해, 해방을 통해, 형식을 통해, 가능성을 통해, 이탈을 통해, 그리고 다시 복귀를 통해 - 재즈의 순간적 아름다움은 여전히 인간이라는 오래된 오선지를 그려나가고 있는 중이다. 

어떤 색소폰 주자는 가끔 다른 연주자의 악절을 인용하는데 하지만 그는 색소폰을 들 때마다, 비록 부족한 기량일지라도, 자기 발 앞에 놓인 전통의 맥락 속에서 자동적으로 그리고 함축적으로 논평하지 않을 수 없다... 때때로 이전에는 단지 간단하게 언급되었던 가능성을 탐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최상의 경우에 이 논평은 형식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pg. 274) 


2022년 7월 2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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