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day: 강의에서 만나 인상적이었던 김애란 작가의 글 필사
대학 도서관 특강으로 김애란 작가를 처음 보았다. 극작을 전공하고 소설로 데뷔한 그녀의 글들은 언어 위에서 이미지로 그려지는 글이었다. 장르를 넘나들며 쓸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이다. 또한 그녀는 작가 같았다. 약간의 소극적인 제스처와 작가적 마인드를 가진 모습이 보였고, 넓은 강당 가운데 책상을 놓고 강의 시간 내내 앉아서 말했다.
무어라고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지만, 누가 봐도 천상 작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함께 수업을 들었던 동기언니도 작가님이다라는 말을 했다. 아마 직접 만날 기회가 생기면 내 말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이럴 때는 언어적 한계를 느낀다.
교수님처럼 강의하시는 것이 아니라 작가님처럼 글을 가지고 얘기하신 부분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그 당시 사진을 찍어놓은 것이 있을 텐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 사진을 찾다가 시간만 흘러가는 것 같아서 포기하고 차라리 글을 쓰자는 생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 원래 쓰려고 했던 글이 있었다. 요즘 계속 새벽기상을 하다 보니 오전에 글쓰기는 되었지만, 저녁만 되면 눈이 너무 감긴다. 아침부터 몽롱한 상태로 글쓰기를 시작해서 몽롱한 상태로 저녁에 정리를 했다. 오늘도 유혹이 있었다. 일찍 자고 내일 써서 올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다른 사람과 한 약속은 잘 지키면서 나와한 약속은 안 지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바꿨다.
졸린 상태로 글을 올리면 일기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그럼에도 매일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하면서 오전에 쓴 글을 정리하려고 한글 파일을 열었는데 자꾸 눈이 감긴다. 객관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글의 특성상 안 되겠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래서 오늘은 그럼 필사라도 써서 올려보자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팬을 들어 필사를 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 <벌레들>에 한 부분을 필사했다. 필사는 느린 읽기이다. 글맛을 알고 싶거나 천천히 꼭꼭 씹어서 글을 먹고 싶은 사람에게 필사를 권한다.
짧은 글만 보고, 빠르게 읽기 보기를 하는 시대에 필사는 시대에 흐름에 맞는 방법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급해 손이 빨라지면서 알아볼 수 없는 글을 내는 학생들에게도 필사를 권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오늘의 필사를 쓰고, 다시 곱씹으며 읽어보니 표현들이 마치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가 떠오르게 만들었다. 처음 그 소설을 읽었을 때 약간 충격이었던 기억이 난다. 방 안에 갇혀 사는 주인공이 환상을 보는 듯한 이야기가 떠오르는 장면인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장판 위로 네모난 빛이 비스듬히 들어왔는데,
그 사각형 안에서 뭔가 희미하게 출렁이고 있는 걸 발견해서였다.
그건 방바닥에 비친 아지랑이 그림자였다.
내 발아래서 신비롭게 출렁이는 봄기운.
나는 잠시 충만해져 '아, 보이지 않는 것에도 그림자가 있구나' 감탄했다."
김애란, <벌레들>, <<비행운>>, 문학과 지성사, 2012, 54-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