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day: 기술은 진화하고 보안은 후퇴하는 4차 산업혁명의 역설
민원 접수를 하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고, 날씨는 화창했다. 애플 계정 해킹 사실을 알게 된 후 당황과 분노, 체념의 감정을 거치며 애플 상담센터 조치와 사이버 수사대 민원 접수를 마쳤다. 피의자를 '모름'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막막한 마음을 가지고 관할 경찰서를 찾았다. 엄격한 출입 절차를 거쳐 생전 처음 수사민원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마음은 두근거렸고, 내 소중한 개인정보를 되찾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얼굴이 잘 안 보이는 상태에서 기웃거리며 상담관은 금전적 피해가 없다는 점에 안도하면서도, 애플과 같은 외국 기업의 경우 미국 측의 협조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실제 수사 착수와 범인 검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을 알려줬다.
SKT 정보유출 사건에도 피해자들 보상에 관련된 언론 보도나 사례들은 많이 들었지만 정작 범인을 잡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대기업조차 보안 사고의 범인을 잡기 힘든 상황에서 개인이 범인을 특정하기란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다. 관할 내에서 이례적인 민원이라는 답변과 함께, 수사관이 배정되더라도 해결이 어렵다는 뉘앙스에 기대감은 씁쓸한 실망감으로 변했다.
애플 계정 해킹 사건을 통해 개인정보 유출은 국가나 회사가 온전히 지켜주지 못하며, 결국 스스로 지켜내야만 하는 영역임을 절감했다. 과거의 범죄가 직접적인 폭력 위주였다면, 이제는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계정을 탈취당하고 신상이 도용되는 사이버 범죄가 모두의 일상을 위협하는 시대에 사는 것 같다.
뚜렷한 금전적 손실이 없다는 이유로 수사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현실 속에서, 이미 유출된 개인정보에 대한 찝찝함과 무력감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스마트폰 하나에 모든 삶을 의존하는 편리함의 대가로 내어준 정보들이 얼마나 취약하게 관리되어 나의 일상을 침해하는지 뼈저리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AI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려한 기술 발전의 이면에는 진화하는 범죄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보안 문제는 단순히 개인 정보의 문제를 넘어 모든 것이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에서 인간의 생명, 물리적 자산까지 위협받는 수준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가장 크게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보안 대책과 교육은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 이제는 누군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방관의 태도를 버리고, 내 정보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배우고 대비해야 한다는 숙명을 받아들여야 나를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