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하게 인도받기
"어린아이들이 볼링을 할 때 공이 빠지지 않게 양 옆을 고무 벽으로 막아주잖아? 인도받기도 그런 거지. 우리 삶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제 길로 가게끔 해줘."
나는 안전하게 고무 벽이 쳐진 우리의 인생길을 상상해 본다.
" 난 교회 대신 뒷마당이든 어디든 조용한 곳을 찾아. 앉아서 특정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처음에는 마음이 소란스러워.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이 고요하고 부드럽고 느려지기 시작해. 바로 인도의 목소리가 내게 닿는 거지. 소란스럽고 획획 움직이는 마음은 사라져 버리지. 그렇게 인도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돼. 아주 간단해"
<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웨이-심화편>
[4주 차, 다섯 번째 미션]
인도받는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고요한 중심을 발견한다.
공원, 정원, 교회 등 조용한 곳을 찾아가면 더 큰 고요함으로 들어갈 수 있다.
노트와 펜을 챙겨 고요한 공간으로 가라.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 인도를 구하고 답을 기다려라.
그 공간이 인도의 말을 더 잘 듣게끔 해주었는가?
어제 남편이 퇴근길에 안경점에 들러서 렌즈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돌아가야 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니 알겠다고 했다.
11시쯤 퇴근한 남편이 책상에 놔뒀다는 렌즈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어? 책상에 놔뒀는데 어디 갔지? 퇴근 후의 내 동선을 다시 짚어 보았다. 오자마자 짐 정리하고 첫째 학원 보내야 해서 밥 차리고 빨래 돌리고... 다 살펴봤는데 남편의 렌즈가 보이지 않는다. 운동 가방에 넣어서 왔는데, 운동복 꺼내면서 딸려 들어갔나? 지금 세탁기 돌아가고 있는데 그 안에 있는 거 아닌가? 어디 갔지? 어디 갔지? 하며 찾고 있는데 남편이 짜증을 낸다.
한쪽이 잘 안 보여서 급히 주문한 건데, 요즘 잘 안 보여서 힘들어 죽겠는데, 내일 써야 하는데... 마지막엔 나한테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두느냐고 묻는다.
'뭐? 대신 찾아와 줘서 고맙다는 말은 않고 지금 나한테 짜증부터 내는 거야? 지금 찾고 있잖아.' 이 말을 삼키며 계속 뒤졌다. 렌즈는 결국 둘째 방 책상 위에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가방에서 렌즈를 꺼낸 뒤 둘째 방 환기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창문을 열면서 둘째 책상에 두고 온 모양이다.
렌즈를 찾고 나니 남편에게 서운한 감정이 물밀 듯 들어왔다.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 아이처럼 돌봐주기를 바라는 인간, 가부장적인 인간, 나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안 하는 인간 등등 남편을 세상에서 제일 나쁜 인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 말을 다 하고 싶었는데, 다 하고 나면 분명히 후회할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어떻게 당신만 생각하냐고 했더니 나를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단다. 지금 우리 나이에 이렇게 건망증이 있으면 안 되니까 걱정돼서 그랬단다. 이걸 말이라고 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되는데, 며칠 전에 서운하게 했던 것까지 끄집어냈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사과를 받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고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남자가 이 모양이었다니 실망감도 컸다.
베란다 까만 창을 보며 인도의 목소리를 구했다. 나는 왜 이렇게 남편에게 실망했을까? 내가 바라는 남편의 모습이란 무엇일까? 내 남편이 완벽하지 않음에 실망했다면, 내가 그 기준선을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건 아닌가? 남편이 생각하는 아내의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아내의 역할을 잘하고 있나? 만약 상황이 바뀌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동요하던 마음이 가라앉고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가끔 이렇게 실수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 남편은 영원한 내 편이지. 내 편일 거야.
오늘 점심때 시장을 봐서 밥을 차리는데 남편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솔선수범해서 점심 준비를 한다. 어제 일이 뜨끔했던 모양이다. 밥을 다 먹고 다시 회사로 복귀하는데, 남편이 현관 앞에서 "고생해! 힘내!"라며 인사를 건넨다.
그래 남편은 영원한 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