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하나만 데리고 살다가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살아보니 알겠다. 아이들이 아무 때나 부르는 ‘엄마!’라는 이름은 결코 말처럼 가볍지 않다는 것을. 다들 그렇게 사니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 노릇을 하면서 사니까 그게 뭐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했었다. 남들 다 하는 거 나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막상 엄마가 되어보니, 아이 젖병 씻는 게 왜 그리 귀찮은지, 새벽에 자다 깨서 우는 아이를 안아주는게 왜 그리 힘들던지, 겨우 잠든 아이를 내려놓고 방문을 살짝 닫으면서도 아이가 깰까 봐 두근두근 하며 집 안에서도 까치발을 들고 살살 걸어다니는 나가 되어 있었다. 아이가 점점 크면서 자기의 주장이 생기는 그 시기에는 아이와 함께 있다가 나도 모르게 내 깊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욱! 하고 뭔가 튀어나오는 순간 순간들이 있었다. ‘난 엄마 자격이 없나 봐, 내가 제 정신이 아니었나봐.’ 항상 후회하기 일쑤였고,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하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을 하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내 자신에게 실망도 했고, 여전히 하고 있다.
왜 이리 육아방식은 다양한지,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의 육아방식만 해도 차이가 있고 전문가들마다 저마다의 다양한 의견에 육아방식에 대해 알아보면 알수록 복잡하게만 느껴졌다. 내게는 육아의 기본적인 틀이 ‘아이를 사랑하고, 존중해주고 어떤 이유로든 때리지 말아라.’ 정도로 정리가 되어 그 때부터는 이런 저런 육아법에 흔들리는 일이 적었던 것 같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지 말고, 아이랑 실컷 돌아다니고, 아이를 마음껏 사랑해주자. 아이가 잘 걷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동네 구석구석 많이도 돌아다녔다.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바나나 우유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기도 하고, 버스의 숫자를 같이 읽어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트에 가는 길에는 길가에 서있는 나무를 모두 만져보면서 가느라 10분이면 갈 마트를 30분도 더 걸려서 도착하기도 했다. 날씨 좋은 어느 날에는 밑반찬으로 먹고 남은 오뎅이랑 우엉을 잘게 잘라 주먹밥을 후다닥 만들어서 집근처의 공원에 가서 햇볕은 쨍쨍하고 바람은 시원하게 부는 벤치에 앉아 아이와 점심을 먹으며 공원의 풍경을 즐기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랑 하루의 반나절을 밖에서 놀면서 아이에게 화를 내는 일이 줄어들었고, 엄마역할에 집착도 덜 하게 되었다. 아이와의 추억이 소복소복 쌓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를 잘 키우려고 하면 할수록 아이는 내가 원하는 대로 커주지 않는다. 잘 키우려는 마음을 먹을수록 아이에게 자꾸 집착을 하게 되고, 내가 정해 놓은 틀을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워진다. 내가 정해 놓은 틀이 늘 옳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이는 내 소유가 아니다. ‘이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다’라고 생각을 하고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면 사실 그렇게 혼내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일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엄마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부분이 너무나 사소한 것들이고,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들임에도 굳이 지적을 하고 아이의 잘못을 확인하려고 한다. 내가 그랬다. CCTV로 내 모습을 찍는다면 나는 너무 부끄럽고 아이에게 미안해서 쥐구멍으로 쏙 숨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사소한 것에 자꾸 혼을 내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되면 아이는 점점 마음의 문을 닫고 혹시라도 나중에 정말 큰 문제가 생겼을 때에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을 주변에 아이를 다 키운 분들에게서 종종 봤다. ‘엄마는 하느님께서 아이들을 다 돌볼 수 없어서 대신 보내준 사람이다.’ 라는 말처럼 아이에게 엄마는 신이고, 우주이며 인생의 전부이다. 하늘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