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20 나는 나만 생각하는 못된 사람이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며느리가 아닙니다

by 글짓는맘


나는 신혼 초부터 시댁과 매우 가까이 살았었는데, 그 자체로 늘 부담스러웠다. 결혼을 하고 나서 어느 날엔가는 거실에서 빨래를 개다가 베란다 유리창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나는 새장에 갇힌 새였고 우울했다. 시댁과 사는 거리가 멀어지면 나의 우울함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당장 이사를 하거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서 그곳에 산다는 것이 내게 너무나 큰 산이었고, 어쩔 수 없이 자주 시부모님을 뵙는 것도 너무 스트레스여서 일 년에 한두 번만 시댁에 가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었다. 가깝게 사니 왠지 조금 더 자주 시부모님을 뵈어야 할 것 같고, 더 챙겨드려야 할 것 같은 일종의 의무감이 나를 짓눌렀고, 그러다 보니 매일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 마음으로 시부모님을 만나니 늘 즐겁지 않았고, 시댁에서 내 기분에 거슬리는 말을 듣기라도 한 날에는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다투기 일쑤였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한계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 마디로 머리 끝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잘하려는 모든 노력을 내려놓고, 잘 보이려는 마음을 내리고 또 내렸다. 그냥 나를 보이기로 했다. 아니, 내가 누구인지 보이려는 마음조차 버렸다. 나는 그냥 나였다. 그리고 시댁에 대한 나의 관점을 바꾸었다. 누가 누구에게 종속된 관계가 아니라 각각의 독립된 가정으로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현상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 시작하니 새로운 관계가 보였다. 예전의 나는 남편과 시부모님이 바뀌길 그토록 원했고,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는 철저하게 나 자신만 바뀌기로 했다. 바꿀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내가 해볼 수 있는 일이 삐죽하고 튀어나왔다. 내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하면서, 나는 점점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고 자신에 대해 더 알기를 원했다.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의 기호가 어떤 지에 대해 점점 더 잘 알게 된 것이다. 내게 좋은 결정을 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어떤 일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이 점점 더 쉬워지고 있었다. 내 안의 혼란스러움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시부모님은 어떻게 보면 냉정하게 보일 수 있고, 이전처럼 관심을 쏟지 않는 내가 야속하셨겠지만 그렇게 바뀌어 가는 내 모습을 인정해 주셨다.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는 그 느낌. 나는 더욱더 나 자신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내가 꾸려 나가는 가정과 삶에 집중을 했다. 더 이상 억지로 시댁에 자주 가거나 일부러 연락하지 않으면서 시댁과의 소소한 갈등은 눈에 띄게 줄었고, 남편에게 불평하거나 다투는 횟수도 확 줄어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시댁이 가까운데 애들이라도 자주 맡기지 왜 안 맡기냐고. 자기 같으면 아이들을 시부모님께 자주 맡기고 놀러 다닐 것 같다고 말이다. 누군가는 시부모님이 너무 편하다는 사람도 있고, 친정 엄마보다 시어머니가 좋다는 사람도 있다. 또 내 집을 드나들 듯이 시댁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해보니 나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내 친정 부모님이라도 미리 약속하지 않고 우리 집을 방문하는 것을 싫어하는 그런 사람이다. 맞다, 나는 못됐다. 내가 이렇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까지가 참 오래 걸렸다. 어쨌든 나는 어떤 관계 이든지 거리가 필요한 사람이고, 내가 그렇다는 것을 나의 방식대로 표현했다. 이제는 시부모님을 만나는 시간이 좋고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원하지 않은 말을 듣더라도 예전처럼 곱씹지 않는다. 부모님의 걱정과 사랑을 아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겼다. 나는 지금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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