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
좁다, 참 좁다. 아이들만 집에서 보고 있자니 누구를 만날 수도 없고, 기껏해야 만나는 사람은 집 앞 놀이터에서 만나는 엄마들이 전부이다. 만난다고 할 수도 없지, 대부분 잠깐씩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다. 내 친구를 만났던 것은 얼마 전 중학교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것이 전부였다. 첫째 아이가 한창 아기였을 때에는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해서, 동네에서 내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준다는 핑계로 아이를 들쳐안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임산부 요가교실에서 만났던 동네 친구들을 주구장창 만났다. 때가 되면 우리집에서, 너네 집에서, 그리고 또 다른 아이의 엄마 집에서 수시로 만나 함께 점심을 먹었다. 혼자 아이를 돌보기 힘들어서, 여럿이 함께 아이들을 보면 좀 나을까 싶어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만났다.
돌쟁이 아이들을 모아 놓으면 무엇을 하겠는가, 엄마 옆에만 붙어있으려고 하는 아이, 이것저것 죄다 쏟아 붓는 아이, 졸린데 잠을 못 자서 칭얼대는 아이를 굳이 다른 아기들과 놀게 하려고 애를 썼다. 제발 아이들끼리 놀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다른 엄마들이랑 조금이라도 더 친해지려고, 한 마디라도 더 해보려고 아이가 내 눈 앞에서 알짱거리는데, 엄마만 찾는데에도 자꾸 떼어놓으려고 했다. 동네 엄마들과의 만남은 시간이 지날수록 습관처럼 굳어져갔다. 어쩌다가 동네 엄마들을 만나지 않는 주에는 괜히 외로웠고,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엄마들끼리 만나면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거의 정해져 있었다. 아이 얘기로 시작해서 시댁얘기로 끝났다. 집에 돌아와서는 왜 또 허전했는지.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흐르자 이사를 가는 엄마들도 있었고 아이들도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만남이 점점 뜸해졌다. 만날 때에는 그렇게 친하게 지냈었는데 자주 보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다 하는 전화통화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어색한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다 연락이 거의 끊겼다.
우리는 육아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만났던 관계였을까? 그저 흐르는 시간을 아이만 보면서 보내기 싫어서 누구라도 같이 있으면 좀 나으니까, 힘듦이 조금 덜어지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만났던 것일까? 나는 그랬다. 답답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고, 이야기를 할 상대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게 만났어도 답답한 마음은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동네 엄마들과의 그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기도 여러번이었다. 그 시간에 아이의 눈이라도 한 번 더 봐줄 걸, 책이라도 한 장 더 읽을 걸 하는 후회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간 시간인데. 아무리 후회를 해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인데. 처음 하는 엄마 역할에 어려웠던 마음을 터놓을 수 있어서, 마른 일상에 단비 같았던 그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음에 고마운 마음만 남겨놓기로 했다.
아이를 집중적으로 돌봐야 하는 그 시기는 외롭다. 외로운 것이 맞다. 인간 관계가 좁을 수밖에 없다. '니 원래 이렇게 집에만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나 원래 이렇게 못생기지 않았는데, 나 원래 부지런한 사람인데 왜 이렇게 뭐 하나 하는게 힘들지.' 매일같이 들었던 이 마음을 받아들였다, '나도 집에서 아이와 이렇게 하루종일 있을 수 있구나. 화장 안하고 안 꾸미면 당연히 별로 안 예쁘지. 그렇지만 이게 아기에게는 제일 예쁜 엄마의 모습이야.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는데 당연히 힘들지. 잠 좀 더 자고 조금 게을러도 괜찮아.'
세상과 단절된 것만 같아서 두려웠던 그 순간에, 이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았던 그 시간에 맥주 한 캔을 부여잡고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랬고, 나 잘하고 있다고 나를 위로했다. 나를 달랬던 것은 남편도, 동네 친구도, 텔레비전도 아닌 바로 내 자신과 맥주 한 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