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기르는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자
베란다에서 잘 자라던 철쭉이 시들 시들해졌다. 해마다 봄이면 우리집을 화사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언제가 베란다에 놓여진 화분에 물을 주는 내 모습을 보던 첫째아이가 물을 주고 싶어해서 그 뒤로는 식물에게 물주기가 아이 담당이 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물을 너무 자주, 많이 준 탓이었나 보다. 철쭉의 흙을 만져보니 촉촉하게 젖어 있었지만 전체적인 철쭉의 모습이 시들시들했다. 누런 이파리도 많이 보이고, 꽃이 피었는데도 이전만큼 꽃의 색깔이 진하지 않았다. 예쁘다고 관심을 너무 많이 가지고 목이 마를 것 같다고 물을 너무 많이 줘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 역시도 아이들을 돌봐서 식물들까지 잘 돌보지 못하겠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철쭉을 이전만큼 잘 관리해주지 못한 탓도 있었다. 식물에게는 적당한 햇빛과 적당한 물, 적당한 관심이 필요했는데 말이다. 과하게 넘치고 또 너무 부족해서 결국 철쭉은 뿌리가 썩어 죽고 말았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에서 얻어와서 7~8년을 집에서 키워서 그랬는지, 철쭉과 정이 들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막상 철쭉이 죽고 나니 뿌리를 뽑아서 정리하는데 마음이 참 안 좋았다. 누굴 원망 하랴. 내 탓인 것을. 식물도 지나친 관심을 주거나 관심을 너무 갖지 않으면 잘 살지 못한다.
육아도 식물 기르기와 참 닮아 있는 것 같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적당한 관심과 간섭은 아이를 성장하게 하지만, 지나친 관심이나 무관심과 방치는 아이에게 독이 된다. 그 적당한 정도를 지키기란 왜 이리 어려운지. 일정 기간 동안 식물에게 좋은 말을 해 주었더니 식물이 건강하게 쑥쑥 자랐고, 같은 기간동안 식물에게 욕을 했더니 식물이 시들어버렸다는 연구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나는 아이에게 왜 자꾸 가슴 아픈 말들을 내리치는지, 그 말들이 아이를 막아서고 한계를 긋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 올라오는 화를 참지 못해, 아이에게 독을 내뿜는 내 자신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결국, 아이를 향한 화는 내 자신에게 배가 되어 되돌아올 것인데 말이다.
꽃을 바라볼 때, 나무를 바라볼 때 어떤 생각을 하며 보는가? 참 예쁘고 아름답다. 쑥쑥 잘 크면 좋겠다. 멋지다. 어쩜 이렇게 색이 고울까.. 꽃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내 아이를 바라보자. 아이가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할 때, 무대에 올라가 뽀시락 뽀시락 준비한 것을 하는 걸 지켜보는 나의 눈빛은 어떤가? 뿌듯하고, 내 아이가 언제 이만큼 커서 무대에 올라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기특해서 눈물이 왈칵 난다. 아이에게 더 잘해 줘야지 싶다. 무대 위에 올라서 있는 아이를 바라보듯 일상에서 내 아이를 바라보자. 적당한 거리, 적당한 관심과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말이다. 과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부족해 보여서 다 해주고 싶다. 대신해주고 싶기도 하고, 내가 미리 해줘서 아이가 힘든 과정을 겪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솔직히 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언젠가 아이의 인생에서 빠질 존재인데, 내가 다 해주다 보면 내가 없는 어느 날에 아이는 무너질 것이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고, 혼자 무언 가를 해 볼 생각도 못 할 것이니 말이다. 어리지만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혼자 해볼 수 있게, 조금만, 1분만 더 기다려주자. 혼자 해보고 싶다고 하는 것이라면, 그게 위험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혼자 해볼 수 있게 아이에게 시간을 주자. 집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시간을 주지 않으면 누가 아이에게 시간을 주겠는가? 어린이집만 해도 시간마다 활동이 정해져 있어 아이가 원하는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없으니 집에서만큼은 아이가 마음껏 움직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꼭 줘야한다. 온 집안을 다 어질러 놨을 때 치우기 귀찮은 마음과 ‘이러다가 맨날 이거 해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한다. 갖다 버려야 한다. 자꾸 한계 긋는 그 마음을.
아이의 놀이에 같이 즐거워해주고, 아이가 이렇게 잘 노는구나 하는 기쁜 마음으로 지켜봐 주자. 이거 하지 말라고, 저거 하지 말라고 자꾸 막아서지 말자. 잘 노는지 지켜봐 주고,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 있으면 가져다 주고, 다 놀았으면 같이 정리를 할 수 있도록 아이를 꼬시자. 이거 안 치우면 이제 다시는 이렇게 안 논다고 아이를 혼내고 협박하지 말자. (이건,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아름답게 눈부시게 훌쩍 커 있을 것이다. 멋진 한 그루의 나무가, 아름다운 꽃 한송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부모의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간섭이 아이에게 자양분이 되어 홀로 우뚝 서 있게 될 것이다. 아이의 행동 하나 하나에 마음 졸이지 말고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의 어른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지금 내 눈앞의 꼬맹이를 바라보고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