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고 싶어서 컴퓨터방에 들어갔다
어느 순간, 끊임없이 나를 부르고 혼자 조금이라도 놀았으면 좋겠는데 나에게 늘 요구하는 아이에게 마음이 지쳤나 보다. 나름대로 아이를 잘 돌본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와 관계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아이의 요구에, 집안일에 마음도 몸도 모두 지쳤던 것이다. 그 때는 몰랐다. 사실은 내가 지쳐 있다는 것을, 아이들 돌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나는 언제나 남편에게 그리고 다른 가족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를 잘 돌보고 살림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매월 따박 따박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는 일이 없는 지금의 나는, 육아와 살림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다. 육아와 살림이 내가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정말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육아는 할수록 어려웠고, 살림은 해도해도 끝이 없었다. 매일 정리할 것 투성이고, 어쩌다 힘이 들어 하루라도 내팽개치면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돌쟁이 둘째에, 항상 엄마의 사랑이 부족한 첫째는 자기 옆에 딱 붙어있길 원했다. 맞다. 나는 지금 내가 이만큼이나 힘들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면 그 정도도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 옛날에는 훨씬 더 했다고. 그렇게 힘들면 애들 다 기관에 보내라는 이야기밖에 들을 수 가 없었다. 머리 끝이 지끈 지끈거렸다.
육아나 살림,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것 없는 것 같고, 이 정도는 일하면서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애들 다 기관에 맡기고 일이나 하러 나갈까 싶기도 했지만 역시나 ‘아직은 아니야..’라는 마음이 나를 잡아 당겼다. 어느 날,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서 나는 커피나 한 잔 하려고 물을 끓였다. 믹스 커피 한 봉지를 톡 따서 컵에 붓고 뜨거운 물을 졸졸 부어 젓가락 한 짝으로 휙휙 섞었다. 식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실까 하다가 집에서 가장 작은 방, 현관 옆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에는 컴퓨터가 있다. 컴퓨터 앞의 의자에 앉아 책상에는 커피잔을 올려놓고 호록 호록 한 모금씩 마셨다. 거실에서는 아이들이 집중을 하면서 보고 있는지 텔레비전 소리만 들려왔다. 한 5분정도 됐을까, 커피를 다 마시고 아이들의 ‘엄마!’ 소리에 조금 더 의자에 앉아있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거실로 나갔다. 커피 한 잔에 조금 새로운 기분으로 ‘응? 뭐가 필요해? 왜 불렀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에게 말할 수 있었다. 커피의 카페인 때문이었는지, 잠깐이었지만 아이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 커피를 마셨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전환되는 것을 느꼈다. 살짝 힘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 날 뒤로 아이들이 잘 놀고 있거나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나를 찾지 않을 때면 잠깐씩 컴퓨터 방에 들어갔다 나오곤 했다. 책을 한 페이지 읽거나 못 읽기도 하고, 그냥 멍하게 앉아있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나는 아이와 함께 있지만 아이와 잠깐 떨어져 있고 싶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이런 내 자신을 인정하기 싫어서, 내 자신을 외면하고 싶어서 컴퓨터방으로 숨어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컴퓨터방은 그렇게 나의 감정을 해소시키는 출구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고, 끝이 없는 집안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 도피처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살림을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것 같고, 도무지 살림에 관심이 생기지 않았지만 남들에게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전업주부가 살림을 못하고 살림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면 직무를 유기하는 것처럼 보여질까 봐 눈치가 보여서 살림을 좋아하는 척, 잘하는 척을 했다. 나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 보다, 살림 자체가 힘든 것 보다도 내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육아와 살림을 전업으로 하는데 육아가 어렵다고 하고 살림을 힘들어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내 스스로를 다그쳤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이런 나를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나의 아이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보다 수십배는 더 힘이 들었다. 나조차 나를 인정하기가 이토록 어려운데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그리 힘을 들였을까.
육아가 더욱 힘들게 느껴졌던 이유는 집안일이 한 몫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보면서 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 국을 끓이고 설거지를 하기란 내게는 정말 쉽지 않았다. 접어야 할 빨래는 하루가 멀다하고 덮수룩 하게 쌓여갔다. 바닥에 뭐가 이렇게 많이 떨어져있는지, 하루종일 닦아도 또 발바닥에 뭔가 작은 알갱이가 걸리적거린다. 살림을 꼼꼼하게 잘하지 못하니까 적당히 깨끗하게 하고 살자고 결심했다. 반찬도 다양하게 잘 못하니까 영양가 있게 한가지 메인 음식을 정하고 반찬은 한 두개만 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밀키트를 활용해서 먹기도 하고 살림으로 인해서 육아가 힘들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이전처럼 집안일에 너무 집중하지 않으니 아이들에게 눈을 한 번 더 맞출 수 있었고, 아이의 부름에 빨리 반응할 수 있었다. 엄마가 편한 방식이 아이들에게도 좋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내 자신에 대해 더 궁금해졌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집중할 수 있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것은 아이와 내가 함께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나의 성장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내 자신과 친해지고 있었다. 마치 마음에 드는 새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