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20 엄마,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이에요

혼돈의 시간을 지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by 글짓는맘


이러스로 온 세상이 어지럽다. 끝날 줄 모르는 혼돈의 시간이지만 나라도 정신을 차리고 살자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해 본다. 나는 엄마이니까. 내 아이들을 지켜야 하니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엄마들도 하는 공통된 고민은 이것이다. ‘우리 애를 학교에, 유치원에, 어린이집에 보내도 괜찮을까? 내가 좀 데리고 있을까?’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믿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맞다고 왈가왈부할 수 없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상책일까? 그렇게 따진다면 이 세상에는 온통 피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해서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이러스로 인한 불안한 마음이 더 커서 아직 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데, 이런 나의 선택에 따른 실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 친구들이 필요한 아이는 놀이터에 나가면 아는 친구가 없는지 찾기도 하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내 눈 앞에서 아이를 볼 수 있어서 안심이 되는 마음과 동시에 내가 아이의 교육받을 기회를 뺏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고 미안한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다.



바이러스가 언제 사라지는지 아무도 모르는 이 시점에서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마음을 전해야 하나. ‘바이러스가 무서우니 이것이 끝날 때까지 집에 있어야 한다.’ 또는 ‘바이러스가 있지만 조심하면서 지내면 괜찮다.’고 다독여야 할까. 바이러스, 두렵다. 피하고 싶다. 실내에서 마스크를 살짝이라도 벗으면 불안하고, 아이가 마스크를 벗으면 얼른 마스크를 쓰라고 다그치게 된다. 그렇다고 계속 꽁꽁 숨어서 지낼 수는 노릇이다. 학교든,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기관에 보내는 엄마들의 마음도 같을 것이다. ‘우리 아이, 괜찮을까? 마스크는 잘 쓰고 있을까? 하루 종일 쓰고 있으면 힘들 텐데.. 조심히 잘 지내다 오면 좋겠다.’ 위기 상황에서의 불안한 마음은 모든 엄마가, 모든 부모가 비슷한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 결국 우리 모두는 한 마음이다.

서로 조심하면서 이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내고 지나가는 것, 그 바람뿐이다.


나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무엇을 알려주어야 할 것인가? 위기 상황에서 아이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두려움에 벌벌 떨고, 두려움에 압도되어 꼼짝도 하지 못하는 마음이 들지라도 아이에게 부모의 두렵고 나약한 마음을 보이지 말아야겠다. 조금 더 의연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줘야지.



전 세계적인 비상 상황이 아이들의 성격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을 해 본다. 맛있는 간식을 나누어 먹고, 아이들끼리 싸우고 화해를 할 때조차 서로의 손을 맞잡아 흔드는 것이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동네에서 조차도 놀이터에 아이들이 많이 있으면 ‘여기 사람들이 많으니까 다른 데 가서 놀자.’ ‘이제 아이들이 많아졌으니까 얼른 들어가자.’고 재촉하는 부모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부모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공기가 있음이 당연하듯 일상생활을 보내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서 웃고 떠들었던 일상생활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이토록 소중하고 아쉬울 줄이야.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과 불안의 상황이 지속될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이다. 그립다,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 모두의 일상이. 하지만 이제 그랬던 과거는 지금 누릴 수 없다. 두려움이라는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두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겠지. 혹시라도 가다가 터널이 막힐까 봐 무섭고, 터널이 언제 끝이 날지 몰라 두려운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는 터널 안을 조심조심 살피면서 걸어가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터널을 빠져나가는 것만이 터널을 지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 어서 터널이 사라지고 햇볕이 내리쬐는 밝은 길이 쨍하고 나오면 좋겠다. 할 수만 있다면 터널 위로 훨훨 날아서 이 시간을 지나고 싶다. 이제, 11월이면 아이는 올해 처음으로 유치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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