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를 닮은 것이 싫었다.
아빠의 가장 싫었던 모습은 ‘술 마시는 것’이었다. 아빠가 술 마시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 세상의 술을 내가 다 마셔버리고 싶기도 했었다. 어릴 때에는 몰랐다. 평소의 아빠는 다정했고, 주말이면 가족이 늘 어디론가 함께 놀러를 갔다. 그런데 문제는 그놈의 ‘술’이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술을 마셔도 술주정이 없이 그냥 잠만 주무셨다. 술을 너무 좋아하는 아빠와 술을 싫어하는 엄마는 술 때 문에 종종 다투셨고, 나는 술을 좋아하는 아빠가 점점 더 싫어졌다.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서 잠을 쿨쿨 자는 모습을 보는 게 힘이 들었다. 아빠의 술에 취한 얼굴도 싫었고, 술에 취해 벌겋게 상기된 눈을 쳐다보는 것은 더 싫었다. 술만 안 마시면 정말 100점 아빠인데, 도대체 가족들이 싫다고 하는 술을 왜 그렇게 마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빠는 6남매의 넷째로 태어났는데 어릴 때 할아버지가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아서 할머니가 집안 살림을 다 하셨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아빠를 돌봐 줄 사람은 아빠 바로 위의 형이었는데, 같은 어린이였으니 누가 누굴 돌봤겠는가.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어찌 보면 방치에 가까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상처가 있어서였을까. 아빠는 성인이 되어서 채워지지 않는 그 마음을 술로 달래고 있는 것 같았다. 배고픈 아기가 우유를 찾는 것처럼 아빠는 술을 그토록 찾아 댔다. 일이 힘들다고 핑계를 삼아 퇴근하고 마시는 한 잔, 두 잔의 술은 습관이 되어 술 없이 살 수 없는 아빠였다.
30년이 넘게 술과 함께 살아온 아빠가 어느 날, 버스를 타고 내리다가 넘어지셨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를 못하셨다. 병원에 가도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는데 아빠는 그때 ‘술을 끊어야겠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느꼈다고 하셨다. 그 일로 인해 아빠는 그토록 사랑하던 술을 칼로 무를 자르듯이 단칼에 끊었다. 나는 ‘아빠가 술을 끊었다’라고 말했을 때 믿지 못했다. 믿음이 안 생겼다. 그토록 좋아하는 술을 ‘이번에는 정말 끊겠다’는 다짐과 함께 술 앞에서 바로 무너지던 아빠의 모습을 지극히 오랫동안 봐 왔던 터라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아빠는 그런 나의 불신을 잠식시키기라도 하듯이 정말 그 뒤로 단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고 계신다. 술을 끊으신 지 5년이 지났다. 외할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그러니까 십 년도 훨씬 전에 엄마는 아빠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 때문에 힘이 들어서 외할아버지께 하소연을 했다고 하셨다. 그럴 때마다 외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놔둬라, 이서방 본인 몸이 아프면 알아서 끊을끼다.” 정말, 외할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다.
20대 초반,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아빠가 싫어서 도대체 왜 술이 그렇게 좋을까 하고 나도 술을 많이 마셨던 적이 있었다. 잠깐 동안 술이 나의 힘듦을 위로해주었지만 역시나 힘들었던 현실은 그대로였다. 술을 마셔서 변하는 것은 나의 뱃살뿐이었다.
아빠가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가족 모두 아주 괴로웠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에도 역시 나는 술을 마시는 아빠를 증오하고 있었다. 아빠의 손에는 퇴근길에 사 온 소주 한 병이 들어있는 까만 봉지가 들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그대로 싱크대에 쏟아부으려고 했는데 아빠가 그런 나를 막고 안방에 들어가서 혼자 소주 한 병을 드셨다.
집에는 아빠와 나만 있었는데 나는 안방에 있는 아빠가 들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런 나에게 아빠는 가만히 계시다가 한마디 하셨다.
‘너 아빠한테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
나는 말했다.
‘후회 안 해, 후회해도 돼!’
나는 지금 후회가 된다.
나의 남편은 술을 잘 못 마신다. 술을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새빨개진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술을 마시는지 마시지 않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보셨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좋은 아빠의 역할에 대해 강요할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아빠의 이상향을 남편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내가 그러지 않아도 이미 남편은 아이들에게 충분히 좋은 아빠이고 내게는 자상한 남편인데 말이다. 나만 좋은 엄마가 되면 된다. 아이들이 남편를 보고 자라면서 언젠가는 ‘나도 아빠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라고 말을 할게되는 날이 올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아빠를 나는 참 많이 닮았다. 가끔 내 안의 아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눈물이 톡 하고 날 것 같기도 하고, 씩 웃음이 난다. ‘나는 아빠를 닮았구나.’
나의 아이들도 남편을 많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