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천의 책 <숙론> 리뷰
이 글은 인터뷰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 인터뷰에 기반한 것은 아닙니다. 저자에 대한 흠모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대화일뿐입니다.<숙론(김영사, 2024)>을 감명 깊게 읽고 리뷰를 쓴다는 것이 그만 여기까지 와버렸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의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전새벽 반갑습니다, 선생님. 평소 이곳저곳에서 존함을 들어왔습니다만 발간하신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인데요,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인터뷰 독자들을 위해 본인 소개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최재천 반갑습니다. 저는 동물과 생태를 연구하는 최재천입니다. 책도 여러 권 냈고, 요새는 유튜브 <최재천의 아마존>으로도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전 작년에 내신 책 <숙론>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볼까 합니다. 먼저 제목에 관해서인데요, ‘숙론’이란 단어가 다소 낯선 것 같습니다.
최 숙론이란 표현에 생각이 미친 것은 토론이란 단어가 오염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고려대 한문학과 김언종 명예교수님에 따르면 토론(討論)이라 단어 는 논어에 처음 등장한다고 하죠. 외교 문서를 작성할 때 비심이 초안을 작성하면 세숙이 검토(토론)하였다고 말입니다. 공자는 초안을 보고 자세히 살펴 의견을 제시한 세숙의 토론을 칭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토론은 이같이 뭔가를 심사숙고하는 행위인 것이죠.
그런데 오늘날 토론이란 단어는 그런 뉘앙스가 아닌 것 같습니다. <백지연의 끝장토론>이란 제목만 봐도 그렇습니다. 토론은 끝장을 보려 도모하는 행위가 아닌데 말입니다. 기어코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결기로 충만해 토론에 임하면 남의 혜안이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없지 않겠습니까. 시인과 촌장의 노래 <가시나무>의 노랫말처럼 말입니다.
전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이 가사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숙론은 어떻게 다릅니까?
최 토론의 ‘討’는 견책하다, 징벌하다의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반면 숙론(熟論)은 여럿이 특정 문제에 대해 함께 깊이 생각하고 충분희 의논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말로 여겨져요. 저는 이 말이 훨씬 좋습니다.
전 견해의 차이를 극복하여 합의점에 이른다는 측면에서는 토론이나 숙론이나 같은 것 아닐까요?
최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숙론은 적어도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는 과정이겠지요.
전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를 가리켜, 작은 땅덩어리에서 참 많이도 다툰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모습들을 보셨습니까?
최 저는 평생 동물을 관찰해왔습니다. 그런데 동물중에 이념이 다르다고 싸우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습니다. 이념이나 종교 같은 거대 관념뿐만이 원인이 아닙니다. 인간은 사소한 문제로도 늘 다투고 편을 가릅니다. 이 얘기를 할 때면 곧잘 동백대교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강원도 양양군이 설악산 대청봉이 있는 서면의 명칭을 ‘대청봉면’으로 바꾸려고 했다가 인제군과 속초시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경북 영주시는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바꾸려고 했다가 충북 단양군과 법정 다툼에 휘말리게 됐고요. KTX 역 이름은 천안∙아산인데 농어촌공사 천안지사는 아산지사에 통합되면서 아산∙천안지사가 된다고 하더군요. 여수와 고흥을 잇는 연륙교의 명칭은 또 어떻습니까? 고흥군에 있는 산 이름 팔영산의 이름을 따서 팔영대교로 짓겠다고 했더니 국가지명위원회가 거부했죠. 이러다가 여수시의 적금도 이름까지 붙여 팔영∙적금대교라고 할판입니다. 도무지 화합의 가능성을 기대하기 힘든 판국입니다. 우리게 먼저다,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 이런 팽팽한 기싸움이 화합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해피엔딩은 불가능한 걸까요? 저는 ‘군산’과 ‘장흥’을 잇는 대교의 이름에서 그 희망을 봅니다. ‘군장대교’라고 하려고 했던 걸 두 지자체가 협의체를 구성해 이마를 맞댄 끝에 ‘동백대교’라는 멋진 이름이 탄생했으니까요.
전 갈등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대립구도를 비판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성 갈등, 세대 갈등 같은 것들 말입니다.
최 2005년에 저는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습니다. 남성으로는 거의 유일했죠. 그런데 제가 딱히 여성운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분명 저는 호주제 폐지에 기여했지만 그건 어떤 성별이 어떤 성별보다 위에 있다는 개념 자체를 탈피하고자 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게다가 평생 동물을 연구한 입장에서 봤을 때 만일 호주가 존재한다면 그건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얘기는 단순합니다 더이상 성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세대 문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구구조상 세대갈등은 심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정책이 필요합니다. 저는 ‘정년제 단칼에 폐지’ 같은 정책을 찬성합니다. 당장 내일부터 정년제를 없애자는 말이 아니라, ‘세대 갈등의 원인 중 하나인 세대별 경제불평등 등을 해소하기 위해 정년제를 단칼에 없앨 수 있는가’를 다방면에서 지금 숙론하자는 것입니다.
전 과연 소통이 가능할까요?
최 제가 연구하는 동물행동학은 본질적으로 ‘동물정보통신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물들이 서로 어떤 메시지를 주고 받는지를 알면 그게 곧 그들의 행동 원리가 되니까요. 그리고 소통에 대한 제 결론은 이겁니다.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
그러니 잠깐 해보고 안된다며 실망하고 돌아설게 아니라, 지난하게 부딪힐 일입니다.
전 지난하게 부딪혀 결론까지 갔던 사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최 남아프라키공화국 몽플뢰르 콘퍼런스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 1990년 넬슨 만델라가 27년가의 복역을 마치고 석방되자 인종격리정책을 유지하던 남아공 사회가 혼란을 겪으며 시작한 미래를 위한 컨퍼런스였죠? 앞으로 인종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최 맞아요. 케이프타운에 22인의 지도자가 모였죠. 웨스턴케이프대 피터 르 루 교수를 중심으로 아프리카민족회의 관계자, 흑인 좌파 정치가, 우파 흑백 분리주의자, 노동조합 관계자, 주류 경제학자, 백인 기업 임원 등 다양한 사람이 모였습니다.
전 참가자 구성만 봐도 소통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대화가 이루어졌나요?
최 참가자들이 채택한 방식은 ‘시나리오 사고’ 방법론이었습니다. 이 방법론은 1970년대 오일쇼크에 대처하기 위해 고안한 시나리오 기획에서 시작된 것인데요. 에너지 산업은 투자 규모가 크고 기간이 길어, 복잡하고 다국적인 요인들에 대응할 수 있는 탄력적 전략을 필요로 합니다. ‘시나리오 사고’란 목표와 방향을 정하지 않은 채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지속적인 합의 과정을 거쳐 다수가 원하는 시나리오를 채택하는 방식이죠. 몽플뢰를 컨퍼런스는 다국적 에너지 기업 셸(Shell)에서 오랫동안 이런 업무를 담당했던 애덤 카헤인을 진행중재자로 초대했어요. 카헤인은 <협력의 역설>이란 책을 쓰기도 했는데, 그 원서의 제목이 ‘적과 협력하는 법(collaborating with the enemy)’이니, 중재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겠죠.
전 셸의 중재전문가가 오든 유재석 씨가 오든, 참가자가 흑인 좌파 정치인과 백인 기업 임원 등인데 대화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최 몽플뢰르 컨퍼런스는 1년 남짓 진행됐습니다. 1차 워크샵에서는 30개의 시나리오를 도출했고 매주 모임을 가지며 그걸 9개로 추려냈죠. 2차 워크샵에서는 4개의 시나리오만 남겼고,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단체 혹은 학계로 돌아가 이 네 가지를 공유하고 숙론했습니다. 3차 워크샵에서는 4개의 시나리오를 다듬어 ‘믕플뢰르 시나리오’로 발표했고, 4차 워크샵에서는 대국민 토론의 장을 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구나 내용을 알기 쉽게 책과 비디오로 자료를 제작해 대대적인 홍보를 하기도 했고요.
전 결론은 어땠습니까?
최 컨퍼런스가 제시한 4가지 모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타조, 레임덕, 이카루스, 플라밍고. 타조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인데, 타조가 머리를 모래 속에 처박고 국민 요구사항(민주주의)을 거부하는 상황을 상정한 것입니다. 결과는 파국이죠. 레임덕의 경우 약체 과도정부가 집권하며 개혁을 지연시키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카루스의 경우 급진적인 흑인 정부가 대중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장악하는데는 성공하지만 포퓰리즘이 난무하여 결국 붕괴에 이르게 되는 시나리오입니다.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섬을 탈출하지만 지나친 욕망으로 태양 가까이 날다가 날개가 녹아 추락하는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에서 모티브를 따왔죠. 끝으로 플라밍고는 남아공의 모든 대표가 연합해 점진적으로 개혁을 이뤄나가는 상상이 전제되었습니다. 플라밍고 무리는 구성원 모두가 날아오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준다고 하죠. 남아공 국민들은 이 시나리오를 택했습니다.
전 반목하면 붕괴하고 협력하면 성공한다, 는 단순한 말만 반복한게 아니라, 실제 시나리오를 연구하고 홍보해가며 화합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만들어나갔다는 말씀이죠? 지금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교훈인 것 같군요.
전 오늘은 이렇게 선생님의 책 <숙론>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청해들었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혐오와 편가르기의 시대에 꼭 강조하고 싶은 말씀을 여쭙고 싶습니다.
최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오랫동안 편견에 대해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접촉 부족’이 편견과 차별을 낳는다고 결론지었죠. 당시에는 지나치게 단순한 이론으로 치부되었지만 그의 말은 점차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1943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서 ‘피의 월요일’이라고 부르는 인종폭동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차별에 불만이 쌓인 흑인들과 백인들 사이에서 강한 충돌 빚어져 도심 곳곳에서 혼란이이 일어났죠. 그런데 웨인대학만큼은 달랐습니다. 평소 다양성을 추구했던 웨인대학에서는 그때도 흑인과 백인들이 함께 평화롭게 수업을 들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2차 대전에서 흑인과 백인을 섞어 놓은 부대에서는 다른 부대에 비해 흑인 혐오가 무려 아홉 배나 적었다고 하죠.
“알면 사랑한다.” 어느새 제 좌우명이 된 말입니다. 올더스 헉슬리는 <영원의 철학>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만 사랑할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한편 데일 카네기는 “알면 용서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려면 알아야 합니다. 올포트가 말하는 접촉이 바로 앎의 시작입니다.
전 한국 사회는 최근 탄핵을 통해 다시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권력을 남용한 선출직 지도자가 국민의 손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나는 모습은, 민주주의의 힘을 세계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철학은 ‘정당 정치’라는 좁은 틀로 축소된 듯하고, 그 정당 정치는 오히려 사회를 분열시키는 편 가르기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생각도 자주 듭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꼭 그렇게 풀 죽어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만나고, 대화하고, 포기하지 않고, 누가 옳은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연구하고, 끈질기게 이 과정을 되풀이 하는 것, 즉 숙론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로 갈 것이라고 희망해봅니다.
끝으로, <숙론>을 감명 깊게 읽은 독자라면 이졸데 카림의 <나와 타자들(민음사, 2019)> 같은 책을 이어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별과 혐오가 일어나기 전, 어떻게 동질사회가 먼저 형성됐는지부터 고찰하는 이 책은 선생님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독자들에게 한층 더 강렬한 공부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인터뷰이는
최재천(崔在天, 1954년 1월 6일~)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동물행동학자이자 생태학자입니다. 서울대학교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미국 미대학교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 등 다양한 학술·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인터뷰어가 추천하는 다음책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이졸데 카림(1959~)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재정의하려는 철학적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다원화가 개인의 정체성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이 공존하는 사회에서의 공존과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그녀의 저서 『나와 타자들』(Ich und die Anderen, 2018)은 2018년 독일 하노버 철학연구소가 선정하는 철학도서상을 수여했으며 오스트리아의 서평플랫폼 proZukunft에서 2018년 Top10 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