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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win Aug 06. 2019

#43킬리만자로 정상에서 10년 뒤 나에게 보내는 편지

아프리카_탄자니아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국립 공원 내부, 퍼밋을 발급을 기다리는 중

킬리만자로 등반의 시작은 퍼밋(허가장)을 받는 것에서 시작한다. 킬리만자로 국립공원 입구에서 입장료 USD 616를 결제하면, 퍼밋이 나온다. 나와 가이드, 요리사, 포터 분의 입장료가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세 분의 입장료는 각각 USD 2이며, 등산객이 지불한다.

한스 마이어의 기념비

입구 초입에는 킬리만자로를 처음으로 등반한 유럽인 한스 마이어의 기념비를 볼 수 있다. 킬리만자로를 등반하는 루트는 다양하지만, 나는 대중적인 ‘마랑구 루트’를 선택했다. 4박 5일간의 일정 중에서, 3일간 등산한다. 3일 자정에 킬리만자로 정상 우후루피크(5,896m)를 등반하고, 남은 2일간 하산을 한다. 킬리만자로는 높은 입장료를 지불하는 만큼, 환경 관리가 매우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등산객은 산으로 갖고 들어가는 것을 그대로 갖고 나온다. 쓰레기를 절대 버릴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킬리만자로는 매우 깨끗하고, 쾌적했다.

3일간 등산을 하던 중, 가이드에게 킬리만자로의 어원을 물어봤다. 킬리만자로에는 오래전에 치타(Chita) 부족이 살았다고 한다. 수백 년 전의 킬리만자로 산은 지금처럼 정상에만 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눈으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형상은 항상 구름에 가려져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랑구 근처에 살던 치타 사람들이 맑게 게인 킬리만자로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모습을 보고 '키보(Kibo)'라고 외쳤다. 키보의 뜻은 '엄청난 또는 경이로운'의 뜻을 가진 놀람의 감탄사다. 키보라는 말이 독일인이었던 한스 마이어가 독일 발음으로 킬리라고 한 것이, 오늘날 영어 발음으로 '킬리만자로'가 되었다고 한다. 킬리만자로 이름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 하나라고 한다.

3일째 자정, 킬리만자로 정상인 우후루 피크(5,896M)로 등반을 시작했다. 

킬리만자로 등반 준비를 하며, 가이드와 함께

내가 등반한 날은 달빛이 아주 밝아, 헤드 랜턴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1시간 정도 올라가다가,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다시 발걸음을 움직여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가이드가 현 지점이 5,500m 임을 알려줬다. 이제부터는 쉴 틈 없이 올라갔다. 바로 앞이 길만스 포인트(5,685m)이기 때문이다. 킬리만자로 등반 중, 대부분의 오르막길은 길만스 포인트까지다. 분명히 길만스 포인트가 눈앞에 보이는데, 왜 그리도 먼 것인지 계속 올라가도 끝이 없었다. 이 구간까지가 킬리만자로 등반에서 가장 힘든 구간으로 생각된다.

쉬어도 쉬는게 아니다

올라가는 당시, 정말 춥고 배고프고 더불어 졸음까지 몰려왔다. 그런데 가장 황당한 경험은 바로 호흡 곤란이었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는데, 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한 걸음 걷고, 한 호흡 숨을 들이마시면서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심지어 도중에 숨이 멎는 느낌이 들어, 재빨리 물을 마신 적도 있었다. 5천 미터가 장난이 아님을 이 부분에서 크게 실감했다. 더군다나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었다. 옷이 다 젖은 상태라, 움직이지 않고 쉬면 더 추워졌다. 그냥 죽어라 걸었다. 당시 영하 15도였다. 참고로 올라가는 도중 뜨거운 물을 담은 내 물통에는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고, 정상에 도착하니 얼어 있었다.

길만스 포인트에서

그렇게 도착한 길만스 포인트에서, 이제 진짜 정상인 우후루 피크로 향했다. 다행히도 경사진 곳은 없고, 대부분 평지였다. 그래도 공기가 부족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서서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해가 밝아오니, 우후루피크로 가는 길이 더 선명해졌다. 밑에서 볼 때는 몰랐던, 구름 위로 모습을 감추고 있던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밝아지는 해 기운과 주변에 펼쳐진 만년설을 둘러보며, 정상으로의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다. 킬리만자로 정상, 우후루피크(5,895m)

킬리만자로 정상, 표범이 없어 내가 표범이 되었다

킬리만자로 정상, 우후루피크에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마디로 웅장했다. 표범을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여서, 내가 표범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상에 올라온 후, 춥다는 이유로 금방 내려갔다. 실제로 나도 사진을 찍다가 손가락이 어는 줄 알았다. 상상 이상의 추위다. 그래도 최대한 오래 있고 싶었다. 6시간 동안 힘들게 올라왔는데, 5분만 있다가 내려가는 것은 억울했다. 가이드가 내려가자고 해도, 그냥 무시하시고 오래 있었다. 킬리만자로 정상을 내 눈과 가슴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지막 등산자가 올라올 때까지, 약 40분 정도 정상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들이 있었다. 정상 등반을 하기까지 힘든 순간들을 기억하며, 10년 뒤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10년 뒤 나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를 남기기로 했다.

킬리만자로 정상, 우후루피크(5,895m)에서

“안녕, 현재 나는 아프리카 최고봉이라는 킬리만자로 정상에 서있어. 올라올 때, 많이 힘들었지. 키보 숙소에서 잠을 못 자서, 올라올 때 졸면서 올라왔잖아, 정말 위험했지. 오후 6시에 먹은 스파게티는 금방 허기져서, 배도 엄청 고팠어. 하지만 무엇보다도 호흡곤란을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 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데, 그 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들리기는 처음이었어. 공기가 부족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한숨 들이쉬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지. 그렇게 6시간 동안 죽어라 걷기만 했지. 또 쉬고 싶어도 옷이 다 젖어서, 추워서 쉬지도 못했잖아.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죽기 전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 ‘포기할 거면 시작도 하지 말자’라는 좌우명이 있기 때문이겠지. 고로 내가 10년 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힘들지만 정신력으로 버티고 이겨내서 올라온 이 순간들. 이것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것이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이 말한 아주 유명한 명언이지. 네가 산을 올라갈 때 느꼈던 힘들었던 순간들. 그 순간에는 비극이라고 생각되지만, 정상에 올라오고 나서 돌이켜보면 뿌듯함(성취감)을 주려는 희극의 한 과정이지 않았을까 싶어. 10년 뒤 네가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지는, 지금 내 모습으로는 모르겠어. 잘 살고 있다면 좋은 것이고, 힘든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겠지. 만약 힘들다면, 네가 킬리만자로를 오르던 순간들을 상기하길 바래. 그 힘듦이 희극으로 다가가는 하나의 과정임을 인지하며, 꼭 다시 힘을 내면 좋겠어.


-나도 쓰면서 엄청 오글거리지만, 10년 뒤 이걸 읽으면서 힘을 낼 나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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