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정문일침

냉소주의자

by 파르헤시아

냉소주의자는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늘 만사의 궁극적 귀결점인 무(無)를 보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의 심리적 장치는 충분히 유연해져 생존요소로서 자신의 활동에 대한 영구적 회의를 자기 내면에 설치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상황 논리나 자기 보존의 욕망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어쩌면 더 못난 사람들이 어차피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새로이 통합된 냉소주의는 자신이 희생자이고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이해심을 보인다. 그는 근면하게 동참하는 담담한 겉모습 속에 상처받기 쉬운 불행, 눈물을 쏟고 싶은 욕망을 잔뜩 지니고 다닌다. 그 안에는 '잃어버린 순결'에 대한 슬픔, 즉 자신의 모든 행위와 작업의 궁극적 목표였던 좀 더 좋은 지식에 대한 일말의 애도가 들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그 정의는 이렇다. "냉소주의는 계몽된 허위의식이다." 냉소주의는 현대화된 불행한 의식이다. 이 의식은 자신이 어떤 이데올로기 비판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비참함을 동시에 느낀다.


-페터 슬로터다이크, 『냉소적 이성비판』(이진우·박미애 공역, 에코리브르 2005)


※참고: "Dictionary.com은 냉소주의자(cynic)를 "이기주의(이기심)만이 인간의 행위에 동기를 부여한다고 믿고, 사심이 없는 순수한 이타적 행위나 사심이 없는 공정한 관점을 불신하거나 그 의미를 최소화하는 사람"이라고 정의(定義)하고 있다. 또 다른 정의(定義)는 '쓰라린(bitter), '경멸하는'(contemptuous), 비관적인( pessimistic)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포함한다."(The intentional workpla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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