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정문일침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by 파르헤시아

"아무런 불덩이도 삼켜져 목구멍을 내려가면 되건만 이것은 아직 목구멍에 걸려 있어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므로 밥을 먹을 수 없고, 숨을 쉴 수 없고, 말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서 이것을 삼켜 내려야 한다. 혹은 이 올가미를 벗어 버려야 한다. 올가미가 거저는 아니 벗겨진다. 죽을 힘을 다해 벗겨야지. 코가 좀 벗어지고 귀가 좀 찢어지고 이마가 좀 벗어지고 턱이 부스러지는 한이 있더라고 벗겨야 한다. 불덩이가 그대로는 아니 넘어간다. 눈을 꽉 감고 죽자 하고 혀를 깨물고 목구멍을 좀 데면서라도 꿀꺽 삼켜야 한다. 역사적 사건의 뜻을 깨달음은 불덩이를 삼킴이요 올가미를 벗김이다.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 모든 일은 뜻이다. 뜻에 나타난 것이 일이요 물건이다. 사람의 삶은 일을 치름(經驗)이다. 치르고 나면 뜻을 안다. 뜻이 된다. 뜻에 참여한다. 뜻 있으면 있다(存在). 뜻 없으면 없다(無). 뜻이 있음이요, 있음은 뜻이다. 하나님은 뜻이다. 모든 것의 밑이 뜻이요, 모든 것의 끝이 뜻이다. 뜻 품으면 사람, 뜻 없으면 사람 아니다. 뜻 깨달으면 얼(靈), 못 깨달으면 흙. 전쟁을 치르고도 뜻도 모르면 개요 돼지다. 영원히 멍에를 메고 맷돌질을 하는 당나귀다. " -함석헌('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1958년 8월 사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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