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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Oct 27. 2019

갈등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가 타인. 사람은 저마다 자기중심적인 고정관념을 지니고 살게 마련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물에 대한 이해도 따지고 보면 그 관념의 신축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걸 보아도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오해란 이해 이전의 상태 아닌가. 문제는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다. 실상은 언외(言外)에 있는 것이고, 진리는 누가 뭐라 하건 흔들리지 않는 법.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 이전에는 모두가 오해일 뿐." -법정('오해')


우리 말, 한자어 오해(誤解)의 뜻은, '무엇이 가진 뜻을 잘못 이해하거나 또는 잘못 풀이함.'이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오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법정 스님의 통찰을 잠시 빌리면, '자기 나름의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경향'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매사에 자신을 더 긍정적인 관점에서 혹은 더 유리한 관점에서 보게 되는 편향적 사고"를 의미한다. 지레짐작, 추측, 직관, 성급한 일반화, 이해관계, 기대, 욕망,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 인지 편향, 가치관, 관점, 지식, 경험 등등 자신에게 익숙하고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여기에 포함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입각하자면,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며 "오해란 이해 이전의 상태"라는 법정 스님의 통찰에, 나는 절절히 동감한다. 비록 선한 의도일지라도, 상대가 정서적으로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혹은 어떤 형편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나쁜 의도로 오해하기도 한다. 오해는 불신(不信)과 함께, 특히 대인관계(인간관계)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다. 


한자 갈등은 ‘칡 갈(葛)’ 자와 ‘등나무 등(藤)’자의 합성어다. 칡과 등나무는 덩굴식물로 생장 성질이 같다. 즉, 무엇이든 축을 삼아 휘어 감고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런데 칡은 왼쪽으로, 등나무는 그 반대인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간다고 한다. 이 둘이 서로 얽혀 있을 경우, 둘 중에 그 세력이 열등한 쪽이 먼저 죽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 둘이 우연히 같은 축을 공유하고 있다면, 서로 살기 위해 경쟁적으로 넝쿨을 뻗어 성장하게 된다.


물론 덩굴 식물의 성장력이 강하고 세력이 커질수록 그 주변의 축이 되는 나무나 식물이 스스로 거뜬히 버틸 만큼 충분히 건강하지 못할 경우 필히 말라죽고 마는 불상사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라는 결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속담도 있다. 하지만 이점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한다. 결국 갈등은 그 바탕에 생존과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경쟁 또는 투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갈등으로 번역되는 영어 'Conflict'의 어원은, 라틴어의 콘플리게레(Confligere)다. 콘플리게레는 '충돌, 다툼, 논쟁, 싸움, 전쟁 ' 등의 뜻으로, '서로'라는 의미의 'Con'과 '맞서다, '치다'라는 의미의 'fligere'가 합쳐진 말이다. 즉 '서로 대립하여 맞선다'라는 점에서, 영어 Conflict'는 어원적으로 한자어 갈등과 비슷한 맥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갈등에는 부정적인 측면의 역기능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순기능도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갈등 당사자들이 갈등에 잘 대응할 수 있다면, 양쪽 모두 성장 발전을 위한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는 말이 되겠다.


갈등의 유형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주로 그 내용에 따라 '이해관계 갈등', '사실관계 갈등', '이념 또는 가치관 갈등', '구조적 갈등', '인간관계 갈등'의 다섯 가지로 범주화된다. 갈등의 유형으로 보나 실제 경험으로 보나, 갈등은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이루고 사는 사회적 삶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불가피한 현상이다.


사람이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이해할 정도로 익숙한 단계에 이르게 되면, 진실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일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을 요하는 일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그 소중한 인간관계가 파괴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 파괴의 중심에 어김없이 갈등이 있고, 갈등의 근저에는 오해가 한자리를 차지한다.


대인관계(인간관계)의 갈등 문제에 대한 연구에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Thomas-Kilmann의 갈등 모드 측정도구(TKI: The Thomas–Kilmann Conflict Mode Instrument)에 따르면, 사람들은 갈등상태에서 대체로 두 가지 관심사를 가진다. 하나는 자신의 목표에 대한 관심,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 이 두 가지다. 이 두 관심사를 두 개의 축으로 하여 목표의 높고 낮음, 관계의 상호 협조 여부에 따라 갈등 대응 유형을, ①경쟁 대립형(Competing), ②회피-보류형(Avoiding), ③순응 양보-동조형(Accomodating), ④타협- 절충형(Compromising), ⑤협동-이상형(Collaborating)의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5가지 유형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갈등 대응 유형은 협동-이상형(Collaborating)이다. 이 유형의 사람들의 특징은, 첫째 개인 간의 차이, 또는 다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둘째, 갈등의 해결은 정직한 상호토론과 상호 협력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기본 마인드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 유형은 모두의 관심사를 함께 만족시킬 수 있는 문제 해결을 도모한다. 결국 서로의 관심사에 대한 목표도 각각 추구하고, 동시에 좋은 관계도 유지하면서 갈등을 해결하는 유형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오해의 근원이 되는 자기중심적 사고, 특히 자기 경험에 바탕을 둔 성급한 일반화, 지레짐작, 추측은 갈등의 대응과 해결에서 오히려 장애요소가 된다. 흔히 태도와 행동을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태도는, '사람의 행동에 대한 마음가짐'으로 감정적, 정서적인 차원이다. 혹자는 태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사물에 대해 가지는 좋고 싫음 즉 호불호의 감정적 차원의 마음가짐'이라 정의하기도 한다. 반면에 행동은, 태도가 어떤 행위로 실현되는 것으로 사실적 차원이다. 따라서 태도를 가지고 마음가짐을 추측할 수는 있으나, 함부로 속단하기는 힘들다. 개인의 감정 혹은 정서는 환경, 처지, 상황, 기대, 계기, 이해관계, 상대 등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다만 태도에 이어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를 경우에는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행동을 바탕으로 평소의 태도를 살핌으로써, 상대의 마음가짐을 헤아려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행동이 따르지 않은 태도만으로, 상대의 마음가짐을 헤아리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더욱이 상대의 문제 행동 혹은 태도가 자신으로부터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내가 상대를 주시하고 관찰하듯이, 상대 또한 나를 예의 주시하고 관찰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다시말해, 문제행동 혹은 갈등의 주체가 바로 '너'가 아니라, 바로  '나' 일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태도와 행동을 분간치 못하고, 그 사람과 문제 행동을 동일시할 때,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적대적 인간관계를 제외한, 일반적인 대인관계에서 갈등의 근원은 문제가 되는 행동이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와 사람을 동일시하는 실수를 곧잘 범한다. 다시 말해 문제보다는 그런 행동을 한 그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부분에서 결코 예외가 아니다.


어쨌든 말로 표현하지 않은 한, 타인들이 내 속마음을 알 수 없듯이 나 또한 상대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나조차도 내 속을 알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지레짐작' 만으로도 '다 안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에 대해서 알고 또 너에 대해서도 알고', 무릇 '다 안다'라고 착각하는 것이 정작 문제다.


이러한 일반적인 인간관계 상의 갈등 상황에서, 정신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갈등을 회피할 목적으로 갈등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삼키는 데에 있다. Thomas-Kilmann의 갈등 모드 유형에 적용하면, 회피-보류형(Avoiding)과 순응 양보-동조형(Accomodating)이 여기에 해당한다. 회피 보류형은 문제가 있어도 없는 듯이 무시하거나, 애써 회피하는 유형이다. 순응 양보 동조형은 자신의 욕망, 기대, 감정, 관심사 등은 아예 포기하고, 오직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적으로 상대방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는 유형이다.


여기에서 분별해야 할 것은, 특히 회피 보류 유형의 부정적인 면을 굳이 적대적 인간관계 상의 갈등 문제에까지 확대 적용할 이유는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원하고 기대하는 바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적대적 인간관계에 무턱대고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적대적 인간관계에서는 아예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허다함으로, 애당초 상대를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갈등 예방의 상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적대적 관계에서 갈등 대응 유형 다섯 가지 모두가 제각각 최선의 방책이 될는지도 모른다. 착각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격장애자나, 정신질환자의 성향을 뚜렷하게 반복적으로 자주 행사하는 사람과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면,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생각은 애당초 접어야 한다. 소통 자체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아예 상종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여하튼 위의 두 유형은 공히 자기감정을 의식적으로 억압함으로써 문제를 무시 혹은 회피하거나, 아니면 자기를 합리화함으로써 자기를 기만하는 데에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 문제를 회피하거나 기만한다고 해서, 문제가 근원적인 미해결의 상태로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갈등의 불씨로 그냥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단 각인된 부정적인 감정은 비록 억압했을지라도, 몸은 절로 그 감정에 반응한다. 즉, 억압된 부정적인 감정은, 결국에는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부자연스러운 태도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는 마치 시한폭탄을 품에 넣고 있듯이 갈등의 소지를 스스로 품고 있는 것과 같다.


다시 강조하건대, 특히 부정적인 자기감정을 스스로 억압하는 것은, 온갖 신경증, 마음의 병, 정신질환의 토대를 자발적으로 구축하는 것과 같다. 지금 당장은 갈등 상황을 모면할는지는 몰라도,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고 또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시한폭탄에 폭발물의 량을 차곡차곡 늘리는 것과 같다.


주로 소심한 성격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대인관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자기감정을 억압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흔히 내성적인 성격과 소심한 성격을 같은 성향으로 착각하기 쉽다. 소심한 성격, 대범한 성격 등은 환경 등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성격 기질이다. 이는 '자존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자존감이 높을수록 대범하고, 자존감이 낮을수록 소심한 경향을 보인다. 반면에 내성적 성향, 외향적 성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성격 기질이다. 천성(天性)으로 한번 타고난 성격 기질은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다. 제아무리 독하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내성향의 성격이 외성향의 성격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내성적이건 외향적이건 무론하고, 환경 또는 훈련의 여하에 따라 소심할 수도, 대범할 수도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성격이 변한다'라는 속설은, 후천적으로 영향을 받아 형성된 성격 기질의 경우에만 국한된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은, 타고난 성격 기질인 천성(天性)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다.


갈등 상황에서, 자신에 대한 상대의 마음가짐을 알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람직한 의사소통 기술을 배우고 익혀서 활용하는 것이다. 즉 상대의 나에 대한 태도 혹은 그( 그녀)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바람직한 의사소통의 과정을 통해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의사소통의 구성은 언어와 비언어의 메시지를 모두 포함한다. 여기서 표현 수단으로써 언어의 비중은 20~35%, 비언어는 65~80%를 차지한다. 심지어 의사소통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율을 7%로 보는 학자도 있다. 비언어는 눈짓, 몸짓, 말투, 억양, 자세, 등등 시각, 청각적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의사소통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의사소통에서 눈과 눈을 마주하고, 무엇보다 상대에게 귀와 마음과 눈을 함께 여는, 적극적인 경청은 매우 중요하다. 적극적인 경청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존중은 필수적인 요소다. 존중은 의사소통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다양한 의사소통 기술이 있겠지만, 대인관계에서 문제행동 때문에 생긴 자기의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에게 직접 표현하여,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함으로써, 동시에 상대의 입장 또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기술로 '나-전달법'(I-Message)이 있다. '나-전달법'(I-Message)은, 문제가 되는 상대의 행동 혹은 태도 때문에 영향을 받아서 생긴, 부정적인 내 감정을 상대에게 직접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의외로 상대의 속마음을 개방하도록 이끔으로써 상대를 좀 더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나-전달법'(I-Message)은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며 심리치료사인 토마스 고든 박사가 개발한 의사소통 기술이다. 그는 '부모 역할 훈련'(Parent Effectiveness Training : P.E.T)과 '교사 역할 훈련' (Teacher Effectiveness Training : T.E.T.)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미국 교육계에 큰 공헌을 한 학자다. 토마스 고든은, 인간 중심 심리 상담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 박사의 직계 제자이기도 하다. 그는 교수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 간에 벌어지는 갈등 상황이 주로 의사소통의 문제로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의사소통 기술로, '나-전달법'(I-Message)을 개발하였다.


나-전달법의 핵심 구성 요소는 세 가지다. 첫째 문제가 되는 행동(사실), 둘째 그 문제 행동이 현재 나에게 끼치고 있는 영향(느낌 등), 셋째 그 행동에 대한 나의 감정이다. 세 가지 요소의 순서는 상관없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지금 기분이 아주 언짢아. 은근 화도 나고..." (감정), "네가 내 말에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가버려서"(행동) "네가 나를 무시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영향).  '나-전달법'은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반복연습이 필요한 소통의 기술이다.


"신경증 환자가 타인을 보고서 내면에서 솟아난 확신을 가지면, 관찰된 사실과 지성의 비판력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는 현실에 맞게 자신을 자신으로, 타인을 타인으로 의식하지만, 강박에 사로잡힌 온갖 필요탓에 타인을 보고 내린 평가는 흔들리지 않는다." -카렌 호나이('내가 나를 치유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 오해는, 제대로 알고자 하면 의외로 쉽게 풀린다. 상대를 진정 인간적으로 존중할 수 있다면, 타인들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또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마인드를 가질 수 있다면, 인간관계 때문에 내 속에서 갈등이 자리 잡을 틈새가 없을 것이다. 물론 내 안에 끊임없이 움틀거리는 욕구나 욕망에서 비롯한, 어쩔 수 없는 심리적 갈등을 제외하고 말이다. 비록 어쩔 수 없이 갈등이 발생할지라도 나를 이해하고 나를 생각하듯이, 내 감정과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전달하여, 제대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인드를 가진다면, 오해가 끼어들 여지는 더욱 없을 것이다.


허물없는 인간은 없고, 실수 없는 인간 또한 없다. 그러나 허물이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데, 어찌 실수와 허물로부터 배울 수 있으랴. 정리하고 보니, 실천보다 말이 앞서는 듯한, 나야말로 이 나이에도 여전히 배움이 필요하고, 또 기술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연습이 정말 많이 필요한 사람인 것을 알겠다. '바담 풍' 선생이 어디 멀리 있겠는가.(201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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