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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Aug 20. 2021

각성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숱하게 읽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나는 공자를 존경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공자에게 존경할 만한 것이 있는지는 잘 몰랐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저잣거리의 난장에서 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광대 놀음판을 구경하려 애쓰다가, 사람들이 잘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소리치면, 내가 광대놀음은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남들이 하는 대로 덩달아서 잘한다고 소리 지르는 격이었다. 이처럼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진실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덩달아서 짖어대었던 것과 다름없었던 까닭이다. 행여 남들이 짖는 까닭을 내게 물어오면 그저 벙어리처럼 멋쩍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오호라! 나는 이제야 비로소 공자를 제대로 이해했다.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남들 따라 무턱대고 짖지 않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한갓 난쟁이와 다름없었던 내가 노년에 이르러야 비로소 어른(長人)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지(李贄, 1527~1602, '성교소인(聖敎小引)', 『속 분서(續焚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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