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가진 농부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는 바구니 속의 몇몇 사과가 썩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썩은 사과는 멀쩡한 사과까지 모두 오염시켜 결국은 썩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이대로 계속 방치한다면 바구니 속의 멀쩡한 사과까지 모두 썩어버리게 될까 봐 걱정이다. 그렇다면 바구니에 담긴 사과를 더 이상 썩지 않게 막으려면 그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바구니에서 사과를 모두 꺼내고 바구니를 비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다음 단계는 사과를 하나씩 차례로 살펴서 멀쩡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골라서 바구니에 다시 넣고 나머지는 바구니 바깥에 그냥 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올바르게 철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여러 과정을 통해서 머릿속에 축적한 다양한 의견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대개의 경우 그 의견들이 실제로는 참이 아닌 거짓된 것일 수 있다고 판단할만한 객관적인 이유가 나름 존재한다. 썩은 사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거짓된 것에 의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잘못된 신념들은 나머지 올바른 신념들을 오염시키고 전체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이러한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마땅히 거짓 신념들을 다른 신념들과 구별하여 가려내야만 한다. 이때 이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가진 모든 믿음 또는 신념들을 모두 불확실하고 전부 거짓인 것처럼 한꺼번에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새로이 배움의 자세로 각각의 신념들과 마주하여 차례로 검토하고 검증한다. 그리하여 진실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인정되는 올바른 신념들만 다시 자신의 것으로 채택할 수 있다.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제1철학에 관한 성찰(Meditations on First Philosophy. 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