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는 제각각 좋고 싫어하는 바가 있어서 옳고 그름을 서로 다투는데, 나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이나 평가에 휩쓸려 한편으로는 근심하고 한편으로는 기뻐한다면 지혜롭지 못한 짓이다. 저 군자는 좋고 싫어하는 기준이 공정하고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 따라서 내가 군자인지 소인인지는 군자가 나를 어떻게 인정하는지 여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인정하는 것을 내 어찌 기뻐하지 않겠으며, 그가 인정하지 않는 것을 내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 소인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사사롭고 옳고 그름이 애매모호하다. 따라서 내가 소인인지 군자인지는 역시 그가 나를 어떻게 인정하는지 여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인정하지 않는 것을 내 어찌 기뻐하지 않겠으며, 또 인정하는 것을 내 어찌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대는 자기 자신이 군자인지 소인인지를 진실로 일체 남의 말에 따르고 남을 의존하여 판단하고 결정하는가?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스스로 결정하는가? 근본은 오직 나 자신에게 있다. 내 자신이 진실로 군자일진대 남들이 나를 소인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근심할 바가 아니요, 내 자신이 진실로 소인일진대 남들이 나를 군자라고 하는 것은 내가 기뻐할 바가 아니다. 기뻐할 만하고 근심할 만한 것은 오직 나 자신에게 있을 뿐이니, 남들이 어떻게 간여할 수 있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선(善)한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불선(不善)한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면 무언가 기뻐할 만한 실상이 내게 있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반대로 불선한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고 선한 사람이 자신을 미워한다면 무언가 근심할 만한 실상이 내게 있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근본은 나에게 있지만 자기의 실상을 아는 것은 남에게 있다. 그런즉 애써 가릴 바와 애써 힘쓸 바를 어찌 분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박세당(朴世堂, 1629~1703), '효애오잠(效愛惡箴)', 서계집(西溪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