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觀相)과 인상(人相)

by 파르헤시아

첫 만남에서 누군가로부터 "인상이 참 좋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이는 분명 칭찬일 것이다. 비록 어느 책 제목에서 유래된 말이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라는 말도 있다. 덕분에 상대에 대한 어색함이나 긴장감은 스르르 풀리고 호감까지 생긴다. 물론 사이비 종교의 전도인들이나 기성 종교인들의 입에 발린 말은 예외다.


일설에 따르면, 첫인상은 3초안에 결정된다고 한다. 3초안에 '호감' 내지는 '비호감'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처럼 첫인상은 인간관계형성의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왕이면 좋은 인상으로 관계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사람이면 마땅히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그 좋은 인상이 서로에게 변치않고 오래도록 유지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 되면 흔히, 굳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인상(人相)이 "나쁘다"거나 "좋다", "안좋다" 혹은 "선하다"는 느낌을 갖곤 한다. 실제로 그 느낌을 상대의 면전에 직접 말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인상(人相)이라는 단어 대신에 관상(觀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관상과 인상 이 두 단어는 비슷한 용도로 흔히 혼용하곤 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관상(觀相)이란, "수명이나 운명 따위와 관련이 있다고 믿는 사람의 생김새, 얼굴 모습. 또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의 운명, 성격, 수명 따위를 판단하는 일" 이다. 인상(人相)이란, "사람 얼굴의 생김새. 또는 그 얼굴의 근육이나 눈살 따위"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이 두 단어의 공통점은 사람의 얼굴 생김새에 대한 것뿐이다. 의미를 비롯하여 태생부터 다르다. 관상은 타고난 신체적 특징으로 고정된 유전적 산물에 가깝다. 인상은 후천적인 것으로 환경, 교육, 습관 등 일상적인 삶의 태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의 기록이다. 다시 말해 본질적인 차원에서 관상(觀相)은 이목구비의 생김새나 비율, 골격 등 타고난 신체 특징으로 한 사람의 현재와 미래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결정론적' 관점이다. 반면, 인상(人相)은 표정, 근육의 움직임, 마음가짐, 분위기 등 삶의 궤적에 따라 형성되는 '가변적' 모습이다.


관상이 완성된 건물의 '설계도'라면, 인상은 그 건물을 어떻게 가꾸고 사용했는지를 보여주는 '현재의 상태'라고 하겠다. 물론 현대 의학으로 얼굴을 뜯어 고치는 성형의학으로 관상을 바꿀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차이점은 관상과 달리, 인상은 굳이 성형으로 얼굴을 뜯어 고치지 않더라도 본인의 노력과 정서 상태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관상은 과학?


관상은 비록 통계학의 탈을 쓰고 있지만, '유사 과학(Pseudoscience)'에 불과하다. '유사 과학'은, "과학적 방법론, 검증, 논리적 근거가 결여되었음에도 과학과 관계없는 내용을 마치 과학인 것처럼 포장하여 주장하는 이론이나 지식"을 말한다. '사이비 과학'이라고도 부른다. '유사 과학'은 실험이나 증명보다는 정서적 호소나 신비주의를 통해 대중을 현혹하며, 반지성주의와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는 특징이 있다. 쉽게 말해 '유사 과학'은 말 그대로 과학이 아니며 일반적인 과학보다 파격적인 내용을 포함하거나 흥미로운 거짓을 포함하고 있기에 대중들을 현혹시키기 쉽다. 이러한 이유로 대중적인 전파가 매우 빠르다. 현대 과학의 엄밀한 잣대로 볼 때, 관상이 '유사 과학'인 이유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오류다. 상관관계는 '함께 변하는가'에 대한 것이며, 인과관계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유발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설령 특정 코 모양을 가진 사람이 부자가 되었다는 사례로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할지라도, '코 모양'이 '부(富)'를 만든 원인은 아니다. 부를 만든 것은 제3의 변수가 원인일 수 있다. 이렇듯 관상은 우연한 일치를 필연적인 법칙으로 오도한다.


둘째, 가설의 검증 불가능성, 즉 반증 가능성의 부재다. 예를 들어, "말년에 운이 트일 관상"이라고 했는데 안 풀리면, "조상 묘자리가 나빠서"라거나 "마음보를 잘못 써서", "의지가 약해서" 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 과학은 틀렸음이 증명될 수 있어야 하는데, 관상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자의적 해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반증가능성이 전혀 없다.


셋째, '바넘 효과 (Barnum Effect)'의 영향력에 의존한다. '바넘 효과'란, 보편적이고 모호한 성격 묘사를 자신만의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인지 편향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특정 연령대 혹은 특정 환경이나 상황에 처한 누구에게나 해당할 법한 보편적인 경험이나 특성을 말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에게만 딱 해당되는 정보라고 믿는 심리적 현상이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작용한다.


넷째, 유전적 결정론(Genetic Determinism)의 한계다. 유전적 결정론은, '인간의 행동, 지능, 성격, 질병 등 모든 특징이 환경적 요인보다 유전자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거의 필연적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관점을 말한다. 즉 생물학적 구성 요소가 개체의 본질을 좌우한다는 주장으로, 환경보다 유전적 요인을 극단적으로 우선시하는 시각이다. 하지만 인간의 성격과 운명은 유전적 특정 요인과 더불어 복잡한 환경적 요인과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 더욱이 단순히 안면 골격의 모양 내지는 비율이라는 유전적 형질이 인간의 미래, 즉 복잡한 사회적 성취를 결정한다는 논리는 생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절대 이론은 과학이 아니며, 반박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이론만이 진짜 과학이다"(칼 포퍼)


관상을 통계학에 입각한 과학이라고 주장하면서, 마치 소 뒷걸음질에 쥐잡기와 같은 소수의 특정 사례를 들어 논리적 근거를 제시한다할지라도 과학적 기준과 방식으로 검증할 수 없다면 과학이 아니다. 아무리 수천년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측적된 통계로부터 도출된 그 불변의 결과물들이 실험, 관찰 등 경험적 증거를 통해 거짓임이 증명될 가능성, 즉 '반증가능성'이 없다면 과학이 아니다. 결국 관상은 통계라는 과학적 방법론의 탈을 쓴 가짜과학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인상은 과학인가?


관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분명 허구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상은 비록 전통적인 개념의 과학은 아니지만 심리학, 생물학, 뇌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다. 우리가 인상을 통해서 얻는 인지행위, 즉 타인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는 행위 자체는 매우 정교한 뇌과학적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한다다. 즉 우리 뇌에는 얼굴을 인식하는 '방추상 안면 영역(FFA)'이라는 인식 전용 '소프트웨어'가 있다. 이곳은 얼굴을 개별 부위가 아닌 '전체적인 패턴'으로 순식간에 파악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FFA가 인식한 정보는 0.1초 만에 편도체로 전달되어 "이 사람은 안전한가, 위험한가?"를 판단한다. 첫인상의 강력함은 바로 이 본능적인 생존 회로에서 기인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상대의 표정을 뇌 속에서 미세하게 모방하며 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한다. 이것을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라고 한다. 상대의 인상이 나에게 전달되는 것은 내 뇌가 그 표정을 '거울 뉴런'을 통해 시뮬레이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본능적인 생존회로인 방추상안면영역은 뇌의 가소성때문에 긍정 또는 부정의 양방향으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하나의 긍정적인 특성이 전체 인상을 좋게 보이게 만드는 '후광 효과 (Halo Effect)', 부정적인 특징 하나가 전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드는 '악마 효과 (Horn Effect)', 처음에 입력된 정보가 나중의 정보보다 기억에 강하게 남는 '초두 효과 (Primacy Effect)', 자신의 첫 판단 혹은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나와 공통점이 있는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호감을 느끼는 '유사성 편향(Similarity Bias)'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비록 인상의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할지라도, 인상을 통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에 따르면, '성격의 경향성(외향성, 성실성, 우호성, 개방성, 신경성 등)'이나 현재의 건강 상태 정도는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이는 반복된 감정 상태가 얼굴 근육의 발달과 피부 상태에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즉, 인상은 '운명'이 아니라 그 사람이 세상과 사람을 대하며 쌓아온 태도가 누적된 결과물인 셈이다. 뇌는 신경가소성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한다. 따라서 인상은 만들어가기 나름이다. 좋은 인상, 선한 인상, 나쁜 인상, 어두운 인상, 불안한 인상, 얍삽한 인상, 성실하거나 신중하거나 경박한 인상 등등의 열쇠는 평소 본인이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달려있다 하겠다.


"얼굴에 나타나는 선악과 길흉도 결국 태도와 행동으로 드러나고, 보이지 않는 뒷면의 모습이나 마음속에 품은 선악과 길흉 또한 반드시 태도와 행동을 통해 밖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실제로 한 행동과 삶의 궤적을 제쳐두고 인상(人相)을 판단하려 하는 것은, 정작 당사자 본인의 서명이나 인감도장을 찍지 않은 문서와 같아서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만약 그 사람의 과거 및 현재의 행동을 모두 아울러서 그 전체를 살피지 않고 사람을 판단한다면, 이는 마치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혼자 세상을 재단하고 설계하는 공상과 다를 바 없다."-최한기, 측인문(測人門)/ 인정(人政)


인상(人相)은 얼굴 위의 자서전(自敍傳)


성경 창세기(47장)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야곱이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해 일가를 이끌고 애굽으로 피신한다. 이 때 파라오를 만났다. 첫만남에서 파라오가 야곱에게 이렇게 물었다. “연세가 얼마나 되시오? ” 야곱이 대답하기를 “제가 나그네살이한 햇수는 130년입니다. 제가 산 햇수는 짧고 불행하였을 뿐 아니라 제 조상들이 나그네살이한 햇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애굽의 파라오가 야곱과의 첫대면에서 뜬금없이 나이를 물은 이유는 무엇일까? 나름 추측컨대, 파라오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파삭 늙고 찌든 야곱의 얼굴에서 그가 살아온 세월의 험난함과 고단함을 엿보았기 때문이라고 사료된다. 그야말로 야곱의 얼굴 근육에 야곱의 삶의 궤적이 그대로 새겨져 있었던 셈이다. 야곱의 인상을 통해 얻은 파라오의 공감은 야곱의 자식들이 안심하고 애굽에 정착하는 든든한 안전장치가 된다. 결국 인상은 우리가 스스로 기록하는 '얼굴 위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겠다.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미국 링컨 대통령의 통찰이라고 한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40세 이후의 얼굴은 선천적인 유전이 아니라 그동안 살아온 삶의 태도, 습관, 마음가짐 등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임을 의미한다. 여담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인들과 사회 각분야의 유명인들 중에서 과거와 현재 얼굴의 전반적인 모습, 특히 눈매, 눈빛 등이 현저히 추하거나 탁하게 바뀐 인물들 몇몇을 떠올려 본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지만, 탐욕과 아집과 독선과 오만과 용렬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인물들을 종종 뉴스 화면을 통해 본다. 인상은 "스스로 기록하는 '얼굴 위의 자서전' "이라는 말외엔 나로선 딱히 떠오르는 표현이 없다.


"모든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명제는 인본주의 관점에서, 교육학, 심리학, 그리고 뇌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지지받는 핵심 가치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결정론적으로 미래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개선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교육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얼마든지 자기 발전과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다. 이로써 분명한 것은 한 인간의 미래는 결정론적인 운명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인상 또한 마찬가지다. 과학의 설명에 따르면, 인상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대하느냐"에 따라 바뀐다. "마음가짐이 태도를 만들고, 태도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격언이 있다. 이 격언은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삶의 경험에도 정확히 부합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사과학에 불과한 '관상(觀相)'이라는 결정론적 운명으로 정해진 틀에 갇혀 연연해 하며 살아갈 이유가 전혀 없다.


나가면서


내가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킬 때 문득 내 손을 보노라면 나머지 세 손가락은 언제나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을 구경하다보면 간혹 그 동물도 나와 눈을 마주치며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과연 내가 구경꾼인지 그 동물이 나를 관찰하는 구경꾼인지 헷갈린다. 이렇듯 내가 다른 사람의 인상을 평가하고 판단하듯이 다른 사람들 또한 마땅히 나의 인상을 평가하고 판단할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세상은 내 중심으로만 돌지 않는다. 이는 세상의 보편적인 이치다.


여하튼 누구나 '좋은 인상', 기왕이면 '선한 인상'으로 타인의 기억에 오래 남고 싶어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바램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왕이면 추하게 나이드는 것보다는 반듯하고 곱게 나이 들기를 원한다. 물론 자기 얼굴에 대한 책임,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있다. 이 지점에서 지극히 개인적으로 뜬금없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말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의 격언이 바로 그것이다.(202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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