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복잡한 세상의 흐름을 읽기 위해 각종 언론 매체나 유튜브 속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 하지만 그들의 예측이 빗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예측을 "과연 믿어도 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최근들어 부쩍 전쟁과 관련된 군사·외교, 시사, 정치·경제 분야의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예측이 계속 헛발질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당 전공 분야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까지도 자칭 전문가 행세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본다.
예측이 빗나가는 헛발질을 계속하는 와중에도, 자신들의 신념과 주장을 굽히지 않는 자칭 타칭 언필칭 전문가들의 곡학아세와 후안무치는 정말 가관이다. 게다가 이들이 제공하는 헛발질 정보에 빌붙어 확대 재생산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기레기들과 이른바 푸세식의 재래식 언론기업들 그리고 유튜브 팟캐스트들 그야말로 기생충이 따로 없다. 철새가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먹이 확보와 번식에 유리한 환경을 찾아가는 본능적인 생존 전략 때문이다. 옛글에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고 했던가. 자칭이든 타칭든 좌우 불문하고 각종 이권을 노리고 애완견 노릇을 하는 스피커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결코 의(義)가 아님이 분명하다. 각설하고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전문가의 직관 또는 예측을 "과연 믿어도 될까?"
신뢰의 여부를 따지기 전에 먼저 '전문가'란 개념의 정의부터 알아보자. '전문가(Expert, Specialist)'란,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즉 전문가는 특정 기술, 예술, 학문 등 특정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많은 경험과 훈련을 통해 능숙하게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단순히 그 분야에서 오래 일한 사람을 넘어, 자신의 강·약점을 파악하고 해당 분야의 패턴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여 효율적인 성과를 내는 사람이 전문가인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인지심리학자로 노벨 경제학상(2002년)을 수상한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게리 클라인(Gary Klein)은 전문가의 직관이 유효하려면 다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첫째로, '환경의 규칙성 (High-Validity Environments)'이다. 즉 예측하려는 분야가 일정한 인과관계에 의해 움직여야 하며, 해당 분야의 경험·관찰·분석·검증을 통해 축적된 테이터가 일정하고 변수가 적어서 높은 수준의 규칙성을 가진 환경에서만 전문가의 직관을 신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질병 패턴, 범죄 패턴, 게임 규칙, 화재 역학 등등 이러한 분야 전문가의 직관은 신뢰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주식 시장, 정치·외교·경제, 장기 기상 예보 등 이러한 분야는 변수가 너무 많아 예측의 신뢰 가능성이 낮다. 신뢰 가능성의 높고 낮음은 높은 수준의 규칙성 여부, 즉 변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좌우된다.
둘째로, '즉각적이고 명확한 피드백'이 가능해야 한다. 전문가가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바로 알고 즉각 수정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수술 후 환자의 상태를 바로 확인하는 의사는 결과의 분석 과정에서 즉각적인 피드백의 반복과 오류의 수정을 통해 실력이 향상되지만, 10년 뒤의 경제 위기를 예측하는 경제학자는 피드백 루프가 너무 길기 때문에 학습이 어렵다.(Kahneman, D., & Klein, G. (2009). "Conditions for intuitive expertise: A failure to disagree." American Psychologist)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다."(논어 위정편)
비록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전문가일지라도 인간 지능의 한계와 편향을 가진 인간인 이상 피할 수 없는 논리적 오류들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확고한 신념이나 믿음도 그것이 사실로 검증될 때 까지는 단지 가설일 뿐, 그 믿음이 곧 나 자신(자아)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말해 믿음은 믿음일뿐이고 사실은 사실일 뿐이며 의견은 의견일 뿐, 믿음 혹은 사실이나 의견에서 드러난 오류가 곧 자기 존재 자체의 오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문제는 자신의 믿음(신념)이 부정되면 곧 자기 자신도 부정되는 것으로 느끼는 역기능적 신념이다. 참고로 '역기능적 신념(Dysfunctional Beliefs)'이란, 개인이 자신, 타인, 세상에 대해 가지는 비현실적이고 경직된 부정적인 신념 체계를 뜻한다.
이와 관련된 논리적 오류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이다. 전문가는 자신의 기존 이론이나 가설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명성이 높을수록 자신의 과거 판단을 고수하려 한다. 또 사건이 터진 후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사후에 사건의 전개 양상과 결과에 자신의 논리를 끼워 맞추어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사후 과잉 확신 편향 (Hindsight Bias)'이라고 한다. 이는 미래 예측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사후약방문'식일지라도 설명이 가능한 헛발질 전문가가 일반 대중에게 유능해 보이게 만든다.
실제로 전문가의 예측 신뢰성에 대해 연구한 학자가 있다. 미국의 정치 심리학자 필립 테틀록(Philip E. Tetlock)은 20년 동안 300명에 가까운 정치·외교·시사 전문가들이 내놓은 8만 건 이상의 예측 데이터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놀랍게도 저명한 전문가들의 평균적인 예측 정확도는 단순히 다트를 던지는 원숭이보다 나을 것이 없는 수준이 나왔다. 오히려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 전문가일수록 더 큰 오답을 내놓는 경향이 있었다. 이 연구의 결론은, 전문가가 가진 지식의 양 그리고 신념이나 이념(좌파/우파 등)보다 그들의 '사고방식'이 예측의 정확도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우리가 흔히 '전문성'이라고 믿는 지식의 양이나 학벌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사고의 방식과 태도'에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Philip E. Tetlock, 'Expert Political Judgment', 2006)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하나만 안다" (이사야 벌린, 『The Hedgehog and the Fox』, 1953)
테틀록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인용한 비유를 빌려 전문가를 두 부류로 나누었다. 예측에 성공하는 소수의 전문가를 '여우형'으로, 실패하는 대다수를 '고슴도치형'으로 구분했다. 고슴도치는 자신의 이념이나 거창한 이론 하나로 세상을 해석하려 하며, 자신의 가설에 맞지 않는 정보는 "운이 나빴다"거나 "시기상조일 뿐"이라며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여우형 전문가들은 세상이 복잡하고 불확실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수집하여 자신의 예측을 끊임없이 수정한다. 예를 들어, 이라크 전쟁의 향방을 예측할 때 한 가지 정치적 신념에만 매몰된 고슴도치들은 현실의 변화를 보지 못했지만, 여러 변수를 유연하게 검토한 여우들은 더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테틀록의 연구는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준다. "무엇을 아느냐(What you know)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How you think)가 예측의 질을 결정한다." 만약 어떤 전문가가 "내 이론에 따르면 반드시 이렇게 된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그는 전형적인 고슴도치일 확률이 높다. 반대로 "현재 데이터로는 A일 확률이 60%지만, B라는 변수가 발생하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라고 말하는 여우형 전문가가 있다면, 우리는 그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테틀록 연구의 요지는 "정치적 판단은 측정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며, 편향에 사로잡힌 고슴도치형 전문가보다 유연하고 비판적인 여우형 사고방식이 훨씬 더 가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테틀록은 "우리가 전문가의 명성이나 확신에 찬 어조에 속지 말고, 그들이 어떻게 증거를 처리하고 오류를 인정하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경고한다.
"인간에게는 아는 것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장애가 있다. 나무는 보지만 숲은 보지 못하는 격이랄까?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스완』, 2007)
결국 전문가의 예측을 신뢰할 수 있느냐의 핵심은 그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얼마나 인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진정한 전문가는 "반드시 이렇게 된다"는 예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증거가 나타날 때마다 자신의 데이터와 확률을 정교하게 다듬어 나가는 사람인 것이다. 결국 전문가는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놓치고 있는 리스크를 짚어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전문가의 예측을 '예언'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확률적 시나리오'로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전문가를 가이드로 삼아야 할까? 전문가의 명성이나 강한 확신에 의존하기보다, 그가 반대 의견을 얼마나 경청하는지,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을 때 이를 겸허히 학습의 기회로 삼는지를 살펴야 한다. 결국 전문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보다는 그들의 사고 과정을 참고하여 우리 스스로가 더 나은 판단을 내리는 '여우'가 되는 것, 그것이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현명한 전략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틀릴 수도 있고, 당신이 맞을 수도 있으며, 서로의 노력을 통해 진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
글을 마무리하면서, 판단과 직관과 예측에서 굳이 비유하자면 한갓 졸(拙)에 불과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여우형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슴도치형은 더욱 아닌 듯하다. 오히려 곰에 가깝다 하겠다. 우물 바깥, 동굴 바깥의 밝은 세상은 진실로 광대하고도 깊다. 세상이 광대한만큼 인재(人才) 또한 많다.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한 인재는 지천에 널려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자 꾸준히 어깨너머로 기웃거리며 배우고, 확인하고, 인정하고, 수용하고, 또 학습하는 이유는 단순 명료하다. 세상에는 내가 아는 것보다 내가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26.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