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로원 Jun 24. 2024

1. 전시를 하게 되었다. 계급장 때고.

마음과 직감을 따라가는 현재 진행형 4년차 직감 아티스트

"로원님, 이번 전시 참여하실래요?"

라는 전화가 왔을 때, 아. 나는 이 전시를 이미 참여하고 있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거제도에 반해 이사를 하고, 참 여러 다이나믹한 일들이 벌어진 가운데 내가 만든 복합문화공간의 계약 기간이 끝날 즈음까지. 이상하게 부산에서 상업전시를 참여할 때만 하더라도 술술 진행 되었던 '전시'라는 것이. 요망하게도 내 공간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노력했지만 끝끝내. 


다시 풀어보는 모닝페이지가 알려 준 내안의 아이의 원함.

8주간 매일 아침에 눈 뜨자 마자 쓰는 '모닝페이지' 작업을 했다. (책 아티스트웨이에 실린 내면 글쓰기 방법)

그 작업 결과 내 안의 켜켜히 묵었던 온갖 것들과 마주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는 내가 계속 무시하고 있었던

어릴 적 내가 바란 것들이 있었다. "로원아 어릴 때로 돌아간다면, 아무런 조건이 없다면 뭘 하고 싶어?"

나는. 연기를 하고 싶어

나는. 노래를 하고 싶어.

나는. 피겨를 타고 싶어.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어릴 때 순수하게 좋아했던 것들,

연기라는 나의 첫번째 업.

그러나 어떠한 한계들을 맞아 고작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그만두어야 했던 것들.

나는 이것들을 해주기로 결정했다. 그 때의 나는 일로써 내 존재를 증명해내고 있던 중이라.

대단히 건강치 못한 상황이었거든. 외적 몸의 건강도, 내면도.

우울증과 번아웃은 온지 오래였지만, 사업이라는 특성상 그런 것들을 들여다 보기엔

당장 쳐내야 하는 것들이 눈 앞을 가렸으니까. 그럼에도 책임감, 어떤 사명감으로 버텼던 것 같다.

그러다 찾아온 코로나는 나를 억지로 멈추게 만들었는데, 그것 역시 자연스럽게 찾아온 감사한 흐름이었다.



아, 근데 이런 예술적인거 내가 해도 되나? 어떻게 하는거지?

내 전공은 상경과 사회과학 복수전공이다.

하고 싶어한다는 것들이 죄다 예술적인건데. 나는 전공도 아니고

중학생 이후로는 그러한 것들을 해준 적이 없어서 뭘 어찌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들어가는 시간과, 돈, 그 선택으로 포기하는 어떤 기회비용까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내 연습은 아주 작은 마음의 소리들 부터 들어주는 것 부터 시작했다.

"산책을 가고 싶어! ... 아, 일하는 도중이지만 가자!" (코로나 시절 공기가 귀했던)

"오늘은 이 길 말고 다른 길로 가볼까?"

"갑자기 산이 가고 싶군. 1시간이 걸리는데.. 아 그냥 가보자!"

그렇게 연습하던 몇개월차. 나는 그림이 몹시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15년 만에 붓을 처음 잡는거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리고 싶은게 없었다.

어릴 때는 그렇게 그리고 싶은 게 많았는데. 어른이 된 나에게는 '그냥' 그리고 싶은 것 자체가 없어진거다.

그래서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리고 싶은 것도 없고, 그리는 방법도 모르겠고. 색칠은 또 어떻게 하는건데?



마음 vs 이성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던 어느날, 한 번 간적이 있는 갤러리의 관장님이 페메를 보내셨다.

'로원님, 오늘 작가님이 진행하시는 원데이 클래스가 있어요!'

간략한 설명과 신청 링크를 받았는데, 어? 뭐지? 나 마침 그림 그리고 싶었는데!! 라는 마음이 듦과 동시에.

근데 어떤 그림을 그리는거지? 그냥 드로잉하고 끝나는건가? 참가비는 10만원이네?

현재 전시중인지라, 자세한 걸 물어보기는 바쁘신데 실례가 될 것 같았다.

그 당시 나는 대전에 있었고. 고작 그림 하나 그리겠다고 서울까지 가는 건.. 그리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극강의 효율과 현실적인 머리를 늘 써왔던 내가. 단순히 저 이유로 간다는 건 말이 안되었는데

마음은 다르게 말했다. 


"우와. 재밌겠다. 나 하고 싶어"


나는 그 소리에 손을 들어줬다.


서울을 가는 기차에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이게 맞나? 괜히 갔다가 실망하면 어떡하지?

어쨌든, 나는 이 마음과 이성의 소리의 치열한 싸움에 대한 결과를 꼭 기록하고 나중에 비교해보겠다고

과연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내맡기고 갔는데 말이야.



15년 만에, 가장 소중한 것을 담은 그림이 나왔다.

현재 전시 중인 작가님이 진행하는 원데이 클래스는, 흔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것은 작가님에게 실례가 되는 부분이기에. 

그러나 그날은 그 신기한 클래스가 열렸었던 거고 나는 그곳에 끌려 갔던거다. 

도화지와, 캔버스, 그리고 아크릴 물감.

나는 아크릴 물감을 만져 본 적이 없는데, 내내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의 원데이 클래스는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하는 것이었다.



그림의 주제는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



그당시 공교롭게도 꽃과 함께하는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었다.

우울증과 여러 강박증, 불면증에 힘들어하는 날 보고 명상이 좋다며 추천했던 지인의 말과,

어느날 꽃 선물이 들어왔고, 그날 유튜브에 다양한 명상 가이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꽃을 보면서 시작한 명상이 꽤나 집중에 도움이 되어 그날로 매일 명상을 하게 되었던 터였다.

그를 통해 깨달은 것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걱정도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는 법'이었다.

두가지 어느것도 내가 손 댈 수 없다. 현재는 과거의 나의 결과이고, 미래는 지금 나에 따라 만들어진다.

지금의 나를 방해하는 것은 대게 과거의 어떤 나쁜 기억이거나, 미래의 불안과 걱정이기에.

이것들은 실체가 없는데 단지 내가 붙잡고 있기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것을 담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매일 명상을 할 때 함께하는 꽃병에 있는 꽃들과 함께 느낀 점들이 많다.

절화인 저 꽃은 계속 죽어가기 때문에 순간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매주 다양한 꽃을 데려오면서도 느낀다. 아 각각이 그저 아름답구나.

인간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모양새와 색이, 냄새가 그냥 아름다울 뿐이다.

그 꽃을 통해 지금 이순간을 담아 내기로했다.나는 6번 차크라를 뜻하는 색의 붓꽃을 정말 공들여 예쁘게 그렸다.

함께 클래스에 참여한 사람들과 각자의 생각과 의도를 나누며.

어떤 분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림을 그렸고, 어떤 분은 자화상을 그렸고, 

어떤 분은 그냥 지금 드는 느낌을 그렸다. 우리는 그 발화되는 말이 손 끝으로 표현되는 것을 함께 지켜보았다.


그렇게 꽃을 다 완성하자. 문제가 생겼다.

이 꽃은 죽어가는 절화여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하지?

"작가님! 어떡하죠? 얘를 죽여야 하는데, 어떻게 죽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음.... 그럼 꽃 끝을 뭉게버리면 어떨까요? 심각하게 고민 하시던 작가님의 제안.

"오! 그래볼게요!" 

하면서 실컷 예쁘게 그린 꽃의 아래부분과 끝을 검은색과 온갖 색이 섞인 죽음의 색으로 다시 물들였다.

그 과정을 지켜본 분들과 나는 탄성을 질렀다. 아, 맞네요. 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꽃이 맞네요.

아름다운 것을 죽이는 과정. 죽음 입힘으로써, 지금 이순간을 표현하는 절화가 그렇게 완성 되었다.




- 2편에서 계속 -


※이 꽃은 신사동 갤러리A의

월간 프로젝트 <Art without Border>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첫번째 전시 'MUSE' 24.6.19-24.6.26

2시-8시 운영 중이지만 25일 클로징은 늦은 밤까지 계속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거제로 이사 왔더니 TV에 나왔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