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사는 서울러
거제도 사는 자유인입니다.
수도권에서 거제에 온 지 1년이 되었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풀고 있습니다.
#탈서울 #지역매력 #기회 #다양성 #라이프스타일
이라는 키워드를 포함할 수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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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과 거제를 오가며 살고 있는 기획자다. 본가는 인천, 현재 사는 집은 거제도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서울을 가는데, 김해 공항에서 1시간이면 가는지라 총합 3시간이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차피 미팅이라던지, 친구를 만나거나 전시를 보는 등 일정을 몰아서 가서 한 번에 다 하고 오기 때문에. 오히려 수도권에서 살 때 보다 어쩐지 방문객(?)의 마음으로 변모되어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도 안녕, 전시든, 다이닝이든 놀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어느 날은 친구 결혼식이 있어 축하하러 갔다가 양재시민의 숲 근처에 있는 친구집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KBS 생생투데이 작가입니다. 공간 로케이션 대표님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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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제에 올 때만 하더라도 별 계획이 없었다. 오로지 직감 하나만 믿고 내가 반한 이 도시로 훌쩍 내려오게 되었는데 그 용기를 낸 게 지난 몇 년 간 중 최대치의 용기였을 거다. 그러다 이곳에 없는 로컬 캐릭터를 만들고, 부산에서 <거제도로 이사 간 기획자>라는 주제로 전시를 했을 때 반응이 좋았어서 막상 거제 주제의 전시를 거제에서 열려고 하니깐 시내 중심 접근성 좋은 곳은 전시장이나 전시가 가능한 대관공간이 없었다. 차를 타고 한 참을 가야 하는 곳이나, 폐교, 산속에 위치한 곳들은 도저히 뚜벅이인 나도, 대부분의 관광객이나 관람객이 갈 수가 없어서 어느 정도의 상업을 염두에 둔 형태의 전시를 진행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거제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많이 들었던 불만이 '사람들이 모일 공간'이 없다.'였다. 문화적인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부분도 너무 적다는 말도 함께.
그래서 문제 인식-해결이 기본인 기획자답게 마침 따 놓은 정부지원 사업비도 있었겠다, "그럼 내가 공간을 열어서 내 전시도 하고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게 해야지!" 하면서 호기롭게 상가들을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성수기 시즌에 짧게 단기로 빌려 전시만 해야지 했던 것이 시내 곳곳의 부동산과 상가를 보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하다 보니 온다는 사람도 많고 점점 필요한 요소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거제의 도심은 '고현동'이다. 그리고 새로 바닷가를 매운 매립지에는 <빅 아일랜드> 프로젝트로써 '고현항 항만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예전의 구도심은 '장승포'였다면, 고현항 사업이 건립이 되면 현재의 고현은 '구도심'이 될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상가들이 오래되었고 예전 조선업으로 먹고살던 거제의 명성답게 임대료도 엄청났다. 어쩌면 서울 강남보다 더한 곳들도 있었을 테다. 가격은 오르는 건 쉬워도 내리는 게 어렵기에 건물주가 내려간 시세를 반영하지 않고 그대로 둔 턱에 아직도 메인 사거리임에도 임대가 붙어있는 상가들이 종종 보인다.
내가 공간을 고를 때 명확히 세운 기준이 있었는데, 인테리어를 크게 하지 않아도 되며, 화장실이 깨끗할 것. 1층일 것. 터미널에서 가까울 것. 행사가 가능할 것 등이었다. 비용은 맨 나중이었다. 이런 기준으로 가능한 곳을 찾다가 찾다가 몇 가지가 마음에 안 들어 조금 양보한 곳과 계약을 하려 하니 싸인 전에 엎어지는 경우가 생겼다. 그러다 또 찾으러 가고 부동산에 연락하고 돌아다녀 보던 어느 날, 친구랑 망고빙수를 먹으러 집 위쪽으로 갔다가 엄청난 건물을 발견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바람이 유순하게 흘러갈 수 있는 뚫린 구조의 독특한 이 건물이 왜 거제에 있지? 싶을 정도였는데 딱 1층에 빈 공간이 있었고 '임대'가 붙어있었다. 연락을 해 보니 다소 부족한 조건임에도 흔쾌히 계약을 해주셨고 덕분에 처음 하는 인테리어 역시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한 후 공간을 오픈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양한 프로그램 오픈과 전시 오픈을 앞두고 있다.
그런 찰나에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고 '경남을 사랑하는 청년들'이라는 주제로 인터뷰와 내용 소개가 나갔으면 한다는 말이었다. 촬영은 바로 다음 주 주말. 기존에 하던 프로그램과 성수기 시즌 전시 오픈하면 진행하려 했던 라이브 공연을 시나리오로 전달했다. 감사하게도 사람들이 모여 주고 또 모아주셔서 <꽃명상 클래스>를 진행하는 부분과 저녁 타임 <작가의 라이브 공연>도 함께할 수 있었던. 원래는 외국인이 많은 거제의 특색(옥포 지역의 웨스턴 바이브)을 살려 <외국인 대화 살롱>을 하려 했는데 시간상 그건 못하고 그분들은 공연을 같이 봐주고 또 같이 노래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리고 방송이 나간 걸 보았는데 정말 너무 잘 담기고 나온 것 같다. 감독님이 신경 써서 잘 편집해 준 것에 또 감사했다. 그저 용기 내어 지역으로 이사를 와 또 다른 업을 만들어나가는 것뿐인데 방송국에서 찾아온다. 얼마 전 거제에서 [다음 소프트- 송길영]님의 강연이 있었는데 '혼밥 뉴스기사'를 예시로 들며 '불과 몇 년 전에는 혼자 밥 먹으면 뉴스에 나왔지만 지금은 그게 당연해졌다'는 게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는 지역 불균형이 너무 심한 나라다, 하지만 또 아이러니하게 1일 생활권인 작은 나라인. 얼마 전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다 강남을 가기 위해 번 돈을 이사에 투자한다는, 글쓴 본인도 해당하지만 과연 이게 맞는 걸까 의문'이라는 글을 보았다. 나도 의문이다. 왜 꼭 서울이어야 하는 걸까. 메인 스트림에 해당하는 회사들이 다 서울에 있고,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는 직장인이 90% 이상인 산업구조가 바뀐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질 거다. 예를 들어 독일은 직업 교육을 먼저 하기 때문에 오히려 반대로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스카웃으로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모든 변화는 인간에서 나온다. 재택근무, 1인창업, N잡, 워케이션이 뜨고 있는 걸 보면 나는 이 변화가 긍정적이라 본다. 특히 코로나 이전 우리나라는 관광업이 주산업이 될 거라고 볼 수 없었지만 코로나가 오면서 전국의 로컬과 골목상권이 발전하게 되었다. 어쩌면 2030 부산엑스포가 유치된다면 그때를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해외에서 각광받는 관광지로 변모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개인적인 뇌피셜로는 그렇게 될 거라 본다. 앞의 혼밥 뉴스 예시처럼 지금은 지역으로 이사 와서 새로운 무언갈 만들었다고 뉴스에 나오지만 몇 년 뒤에는 그게 당연한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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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4/4 방송분 링크입니다.
신기한 경험 공유해요 :) 경남 청년 중 마지막 3번째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