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향수를 자극한다.
나는 지금 파주의 콩치노 콩크리트에서
비싼 스피커로 단조가 강렬한 피아노 음악을 듣고 있다.
참 배부른 인생이다.
20,000원이나 주고 음악을 듣고 있다니.
2025년의 나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요새 안에서 한가로이
음악을 들으며 강 너머 펼쳐진 북한을 바라본다.
합가롭고 여유가 있다.
사치 속에서 75년의 지금 바로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좌표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를 상상해본다. 그러니까 1950년이 되겠다. 전쟁이 발발하고, 이곳에선 총알이 빗발치고 포가 울리며 비명소리가 울려퍼졌을 1950년도의 지금 좌표를 떠올려본다. 아마 지금 이 좌표 반경 50m 안에는 무수한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겠지. 시뻘건 살점들이 널부러져 있고, 병사들은 패닉에 빠져 넋이 나갔을 것이다. 흙은 피를 머금고, 넋이 나간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참호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쥐어 뜯고 있다. 어린 병사는 신에게 자비를 구하며 몸을 부르르 떨며 기도를 외지만, 신은 그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곧이어 북한군의 진격소리가 울려 펴진다. 눈빛에선 증오가 느껴진다. 남쪽 군인새끼들은 악마새끼들이나 다름 없다. 죽여마땅하다. 생각해보니 얘네들 잘못은 없다. 그러나 자본가들 편에 붙어 먹은 지능을 가진 새끼들은 이기적이기 떄문에 죽어 마땅하다. 그들은 증오로 죄책감을 덮은 채, 소총에 붙인 대검으로 시체를 푹푹 찌르며 걸어간다.
아, 부디 신의 은총이 함꼐하길. 스피커에서는 베토벤의 <로망스>가 흘러나오며 다시 현재를 자각한다. 피를 머금은 흙 위로 콘크리트를 붓고 건물을 지어 올렸고, 나는 그 위에 앉아서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눈을 감고 75년 전 이땅에서 죽어나간 이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불과 75년이란 시간 안에 바뀐 세상을 떠올려본다. 그속에서 나는 이기적이지만 안도와 행복을 느낀다. 이 얼마나 운 좋은 세상에 태어났는가. 세상은 여젼히 혼돈에 빠져있고, 날마다 새로운 문제로 시끄럽지만, 그럼에도 좋은 세상이다. 75년 전에 이 땅위에서 피 흘린 김충섭씨를 떠올리며 눈을 감는다. 다시 성능 좋은 스피커에 귀를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