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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un 03. 2018

개털려봐야 비로소 깨닫는 삶.(feat. 일본북알프스)

되게 멋있어보이는 누군가의 삶에 대하여..굳이 몸으로 체험하고 생각해봤다

오늘은 그냥 시덥잖은 얘기나 좀 해보려구요. 전 여행을 짱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아는 여행, 그러니까 유명한 어딘가를 찾아가거나 호텔에서 푹 쉬거나 레져를 즐기거나 이런거 말고....


여행을 다녀오면 반드시 어딘가 몸의 일부분이 삐걱대는 그런 와일드한 대자연 탐험을 좋아하죵. 막 1년에 한두번은 꼭 몸을 혹사시키고 괴롭게 만들어야 뭔가 살아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는 변태중에 상변태입니다. 덕분에 제 몸의 지지율은 5%도 채 되지 않지요. 곧 탄핵당할 것 같습니다.


히말라야도 다녀오고, 남미 파타고니아 트래킹도 다녀오고..국내600km 도보여행도 다녀오고... 지리산종주, 설악산종주 막..이런거. 감오시죠? 네 그런 타입입니다.


올해들어 너무 몸이 편한 것 같길래 어딜가서 또 병원비를 탕진해볼까 고민하다가 일본이 꽂혔습니다. 후지산을 가려고했는데 지금가면 윈터솔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입산은 7,8월만 가능해요.) 후지산옆에 일본의 북알프스 라는 곳을 가보기로 했어요. 3,180m 고봉들이 3개정도 쭈루룩 있는데 거기 능선타고 한 바퀴 돌면서 무릎과 발목을 괴롭히는 유격훈련이죠.


아참, 오늘 이 글은 여행기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냥 사진이나 쭈루룩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북알프스에 가려면 일본의 나고야 주부공항에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1시간걸려 나고야역으로 간다음 또 2시간을 기차타고 마츠모토역으로 가서 또 30분을 전철을 타고 신시마시마역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또 간다음 걸어서 1시간반을 걸어야 숙소가 나오죠. 그래서 분명 일본이긴 한데...인천공항에서 아침8시 비행기를 탔는데 도착은 오후6시에 했다는. 10시간 걸려서 숙소에 도착했어요. 남미간줄...


멀리 보이는 저 희끄희끄한 산을 타는 겁니다. 당연히 설렜죠. 간만에 몸을 괴롭힐 생각에 오금은 벌벌 떨었겠지만 주인인 저는 그냥 설레기만 했습니다.


막 원숭이 나와버리고 그러니까 더욱 즐겁잖아요. 게다가 첫째날은 거의 평지여서 '에이 이게 뭐야~~' 스러운 정도였습니다. 숙소가는 길에 있던 일본원숭이인데 평화의 상징마냥 널브러져있더라구요. 하지만 배가 고파서 샤샥 찍고 빠른걸음으로 숙소로 갔습니다. 사실 저것도 무빙샷이예요. 배가 너무 고팠거든요.



산꼭대기에 쌓인 눈은 만년설이예요. 이 물은 만년설이 녹은 물이죠. 푸르르르르합니다. 하지만 마시면 위장을 깨끗하게 비울 수 있어요.



물론 설정샷이긴 합니다. 아침5시에 일어났어요. 아침5시인데 개밝아. 5시부터 출발해야 3시전에 다음 산장(3,000m) 에 도착할 수 있어요. 일본은 오후3시 전에 산장에 들어가야 하거든요.



거의 칠성사이다 CF를 찍어야 할 만큼 맑은 물이 철철넘칩니다. 머리를 감아봤는데 석회성분이 많아서 소혓바닥같은 모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셋팅력이 좋더라구요.


돌길이 이어집니다. 무릎과 발목을 상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죠. 고도가 높아지면서 중간중간 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 눈도 이제 녹고있는 무렵이야 질퍽질퍽한 기분나쁜 상태가 되었어요.



이제부턴 아이젠을 장착해야합니다. 스패츠도 꼈죠. 하지만 산장주인님부터 카운터누나, 같이 올라가는 외국인친구까지 모두가 말리더라구요.


'너 그 정도 장비로 올라가면 주옥된다.'

네 그렇습니다. 제 장비는 고작 뭐랄까. 겨울철 관악산 정도 올라가면 딱 좋을 수준의 장비였거든요. 쪼꼬미한 아이젠에 피켈도 없었고, 스패츠도 짧은 싸구려녀석. 하지만 체력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눈이 점점 엄청나게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저게 그냥 눈처럼 보이지만 사실 잘못디디면 푹푹 들어가는 깊이 9m짜리 눈입니다. 중간중간 크레바스도 있죠.


네 그렇습니다. 옆에 경사 보이시죠. 저 경사입니다. 저 경사를 관악산용 아이젠을 끼고 올라가는데...분명 1,2도밖에 안되는 겨울날씨인데 땀이 주룩주룩 나더라구요. 발목은 이미 파업상태였습니다. 조만간 GM처럼 제 몸을 떠날 것 같았습니다.


이제부턴 15m두께 이상의 눈밭만 계속됩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눈이 전부랄까요. 혹시나 해서 선글라스 벗었다가 느아아아아아아아사사아ㅏㅇ앗!!!!!! 안구폭발할 뻔 했습니다.


이건 내리막을 찍은거예요. 네 여기서 한번 구르면 거의 스키장용 상급자코스에서 맨몸으로 자빠지는 느낌일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여긴 익스트림 스키코스이기도 해요. 능력자분들은 스키를 짊어지고 여기까지 올라오시더라구요. 그러다가 어딘가 크레바스에 빠지면 윈터솔져가 되겠죠.


여기서 멈췄습니다.저 가운데 제일 높은 곳이 산장이 있는 오늘 목적지인데....


멈추기로 했습니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해요. 비가 오면 눈더욱 질퍽해집니다. 그리고 안개가 자욱해져서 진심 2m앞도 안보이는 상태가 되거든요. 결국 조난되는거죠. 그렇게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럿 조난당했다고 하네요. 실종자를 찾는 팻말도 간혹 보입니다.


고민을 좀 했어요. 저긴 거의 빙벽에 가까워서 피켈이 없으면 미끄러졌을 때 몸을 고정시킬 수 없거든요. 그럼 그냥 하염없이 가속도가 붙어서 미끄러지는거죠. 생에 두번 다시 없을 스릴을 느낄 수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정말 두 번이 없을 수도 있었죠. 내 장비로 내일 내려올 수 있을까...아니면 오늘 올라갈수는 있을까..


사실 한 10미터 정도 더 걸어보긴 했습니다. 그 때 느낀 감정은 공포였어요. 발목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 쥐가 날 지경이더라구요. 한발만 잘못디뎌도 난 뒤진다....라는 걸 확신하곤... 5분간 멍을 때린 후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몸을 괴롭히는 여행을 4,5년째 다니고 있지만 정상못가고 실패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결국 다녀오고 나서 골반과 발목이 시큰거림은 물론이고 어깨에 근막통을 얻어서 돌아왔습니다. 근육통은 괜찮은데 근막통은 좀 짜증나게 고통스럽네요.


이런 변태같은 여행을 통해 느낀 게 몇 있습니다.

1

멀리서 아름다워 보이는 그 어떤 것이라도... 그 자리에 서면 그건 현실일 뿐이더라구요.


2

장비빨이나 기술빨이라는게 있는데. 그런 게 허세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냥 쉬운 산을 갈때는 에바참치같지만 3,000미터 이상 고봉을 오를 땐 어설픈 체력과 어설픈 장비론 위험하더라구요. 그냥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목숨이 간당간당해집니다. 일도 그러지 않을까요.. 뭔가 일정 난이도 이상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선 철학과 집중력, 끈기 이외에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전문적인 지식, 장비를 다루는 능력, 그리고 실질적인 자금 등등이죠.


3

존나 위험하면 내려올 줄 알아야합니다. 물론 사업은 한 번 망해도 두번이 있으니 상관없지만, 삶의 여러 기로에서 본능적으로 졸라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생각을 좀 해봐야합니다.


4

단, 그 생각은 짧아야 해요. 시간이 길어진다고 고민이 신중해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해가 지기 시작하고...더 늦으면 내려올 수도 올라갈 수도 없어집니다.


5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말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누군가가 출발하기 전에 저에게 5월에 북알프스를 타려면 그 정도 장비로는 어림도 없다라고 이것저것 알려주었다면 좋았으련만..제가 봤던 블로그는 죄다 7,8월 성수기 때 사진뿐이었던지라... 사전정보가 거의 없이 갔달까요. 덕분에 아주 인생의 짜릿함을 진하게 경험할 수 있었어요.


6

무슨 생각을 비우네 정리하네 하는 이유로 산에 가지만, 실상 산에가면 아무 생각도 안듭니다. 그냥 힘들다라는 생각밖에 안들어요. 그것도 생각이라기보단 느낌에 가깝죠. 시발시발 거리면서 한발한발 가는겁니다. 아무리 산을 잘타는 사람들도...아니지. 산을 잘타는 분일수록 깝치지 않습니다. 묵묵히 그냥 아무말도 없이 걷죠. 삶도 일도 그렇습니다.


7

혼자만의 공간과 거리가 필요합니다. 산에서는 서로 이뻐 죽겠는 새내기 커플이라고 할 지라도 손잡고 걷거나 딱 붙어서 가서는 안됩니다. 한 명이 구르면 같이 부딪혀서 둘 다 스노우브라더스가 될 수 있어요. 한 명이 미끄러져도 다른 한 명이 보고 피할 수 있는 정도의 안전거리가 필요합니다. 앞사람이 돌을 잘못 굴렸더니 눈에 파묻히는 걸보고 피해갈 수도, 구해줄 수도 있는거구요. 일도 삶도 그렇더라구요. 서로의 안전거리 이내로 들어와버리면 서로 위험해집니다. 함께 감정의 나락으로 빠져버리거나 함께 난관에 봉착하죠. 그리고 같이 광광 우러버리는 겁니다.... 노답이죠.


8

체력보다 중요한 건 회복력이더라구요. 10시간넘는 산행에도 괜찮길래 아직 내가 쓸만한가보다~~하고 위로받고있는데..다음날되니 주화입마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꼼짝도 할 수 없겠더라구요. 다음 산행 시작할 때 거의 지옥을 맛봤습니다. 삶에서 중요한 건 내일 아침에도 일어나서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냐....하는 것 같아요.


9

실제로 저렇게 아름다운 곳을 걸으면 막 감탄하면서 걸을 것 같지만... 실제론 땅 끝만 보고 걸어요. 하늘은 한 3,4번 봤나? 싶네요. 삶의 위험한 순간이나 조심해야 할 순간엔 멀리보이는 꿈이나 목표를 좇는게 아니라 발끝을 봐야해요. 당장의 일들. 당장의 현명한 선택이 더 중요하죠. 현실에서 접질리면 꿈이고 나발이고...없어요.


10

졸라 멋져보이는 누군가의 삶은 사실 저렇게 예쁜 풍경을 걷고있는 사람을 약 1km 떨어져서 보는 것과 같아요. 실제로 시야를 막는 게 없어서 1km이상 떨어진 능선을 걷는 사람이 개미처럼 보이더라구요. 하지만 그 사람의 현실은 아주 지랄맞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이 걷고 있는 능선은 사실 북알프스에서 제일 위험한 능선이었거든요. 별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태양도 그렇듯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그들은 항상 이글이글 불타고 있을 뿐이예요. 우리가 보는 건 수억광년을 넘어 날아온 그 잔잔한 흔적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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