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브러진 방과 같은 상대방의 생각을 차근차근 바라보다.
고백할 게 있습니다. 전 정리변태에요. 정리를 샤샤샥 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죠.
그래서 애프터모멘트(제 회사예요. 이제 다들 기억해줘어어어)의 빠워는 '정리력'에 있어요. 뭔갈 챡챡 정리해서 깔끔하게 짠. 하고 보여주는 걸 좋아하죠.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는 디자인 일을 하고 있지만 크리에이티브하진 않은 것 같아요.
예전엔 저의 예민함과 풍부한 감수성을 '예술성' 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아...내가 희대의 예술가적 소울을 지니고 있나보다... 그래서 조만간 항정살에 소주라도 한 잔 걸치는 날엔 위대한 작품이 하나 나올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아요. 그건 예술성이 아니라 그냥 성격이 이상한 것 뿐이었어요. 하지만 뭔가 기발하고 창의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대신 다른 게 있단 사실을 깨달았죠. 5살때부터 30년내내 끊이지 않고 해온 게 있더라구요.
'정리'였어요.
어떤 유전자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방정리를 할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쓸데없이 고된 즐거움을 너무 어린 나이에 깨우쳐버렸달까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정리의 저주에 걸려서 보이는 방마다 다 청소를 하고 싶어지는 슬픈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어요.(물론 지전분한 방을 보면 도전정신과 자존감이 솟구쳐 올라요...)
이런 변태취향은 일할 때도 고스란히 녹아들어요. 사실 앞서 말했듯 저에겐 디자인을 하면서 필요한 크리에이티브함 조차도 사실 기발한 재치와 아이디어보단 수백개의 레퍼런스를 모아서 정리하는 습관에서 만들어진 부수적인 능력일 거예요.
이제 다들 한 번쯤은 자기방이든, 생각이든, 뱃살이든, 일이든 정리해보고 싶은 시즌이 돌아왔어요. 연말연시의 마법이죠. 이런 시점에서 얘기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생각을 정리하는 5가지 방법 말예요.
생각을 정리하기
일을 하다보면 혼돈의 사도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스스로 생각이 정리가 안되서 내적붕괴를 일으키거나 차크라를 주변에 폭발시켜 직원 또는 동료에게 광역피해를 주는 거예요.
대표님이 생각정리가 안되면
'어제 한 얘기 뒤엎기'
'한 말 또하기'
'말로 세상을 구하기'
'정리가 안된다고 짜증내기'
'회의성애자'
등등의 문제가 생겨요.
실무자가 생각정리가 안되면
'일 꼬이고 결과물 망치기'
'메일과 전화로 말실수하기'
'일속도가 -5 저하되고, 표정 어두워지기'
'자신의 적성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스트레스성 위장장애와 원형탈모'
등등의 문제가 생기구요. 혹여라도 생각정리가 안된 대표님과 실무자가 만나면 이 세상 회사가 아닌 새로운 사내문화가 탄생하기도 해요.
그래서 미팅할 때는 일단 실무자와 대표님의 말을 다 들어보려고 하는 편이예요. 둘은 바라보는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각 시점에서 정리가 되어야 해요. 대표님은 미래를 보고, 실무자는 현재를 보기 마련이거든요. 두 생각을 각각 한 문장으로 정리해요. 두 점을 만들어 선을 잇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맥락에서 제가 현장에서 '생각정리' 에 대해 느낀 몇 가지를 얘기해드릴께요.
말은 생각을 100% 담지 못해요. 흔히들 말은 '구체적이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말은 생각보다 훨씬 추상적이예요. 구체적인 단어를 써도 그 단어는 그 뜻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볼께요. 실무자와 미팅하던 도중 실무자가 갸웃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그런데 보고하려면 레퍼런스가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얼핏보면 실무자가 레퍼런스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여요. 아주 단순한 문장같죠. 하지만 중요한 건 '레퍼런스' 가 아니예요. '보고하려면' 이죠. 그래서 저 말에 대한 응답은
- 어떤 레퍼런스가 필요할까요? 가 아니라
- 결정권자 성향이 어떠세요? 가 되어야 맞아요.
레퍼러스든 계획서든 기획안이든 아니면 예제시안이든 상관없어요. 보고를 통과시키기 위한 썸띵이 필요한 것 뿐이예요. 이 실무자는 이미 컨펌자의 피곤한 성격에 많이 털려봤어요. 그러니 레퍼런스를 추가로 가져다주는 건 바보 짓이예요. 차라리 컨펌자의 성향부터 물어보는 게 원활한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어요.
생각은 태어난 곳과 자라난 곳이 달라요. 보통 태어나는 곳은 무의식과 욕망이죠. 특히 출산율 높은 곳은 '불안' 이라는 도시에요. 불안에서 태어난 생각은 이성적(인 것처럼 보이는) 논리라는 옷을 입고 그럴 싸한 생각으로 둔갑해요.
그리고 지상으로 서서히 올라오죠. 생각은 피라미드와 같아서 제일 밑바닥에 있는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면 꼭대기의 표현을 제대로 볼 수 없어요. 그래서 보통 생각정리에는 독설보다 위로가 효과적이에요. 불안을 자극하면 생각은 더더욱 논리로 무장해버려요. 위로를 받고 인정을 받았을 때 비로소 아랫층이 열리게 되죠.
그래서
'그간 많이 복잡하고 힘드셨죠?.. 이전에 일하시면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 있으셨어요?'
라는 위로와 공감을 먼저 해드려요.
보통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는 자기가 뭔 말하는 지 몰라요. 사람은 자신이 굉장히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수없이 떠오르는 생각의 일부만을 잡고 계속 연결시킬 뿐이에요. 마치 대강 '코길고 귀큰 동물! '하면 '코끼리'를 떠올리듯이 말이예요. 아주 일부의 정보들로 생각을 이어나가죠. 전체적인 면을 고려하고 내 말을 곱씹는 건 굉장히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래서 두뇌는 경제성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요.
이런 혼돈의 생각을 멈추게 해주는 건 누군가가 내 말을 다시 반복해주는 거예요.
'아 그럼, 말씀하시는 건 예술가들의 명화, 명작들을 자유분방한 거리문화의 결합을 말씀시는 거죠?'
라는 식으로 말이예요. 토론에는 사회자가 필요하죠. 그리고 사회자의 역할은 패널의 의견을 한 번 정리해서 상대패널에게 넘기는 역할을 해요. 요점과 핵심을 정확히 추리고 방향성을 잡는 거죠.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은 타고나는 거예요. 그러니 이런 역할을 잘하는 친구와 대화를 하도록 하세요.
만약 친구가 없다면.... 괜찮아요. 없을 수 있어요. 엉엉..... 없다면 녹음기를 이용해봐요. 내가 한 말을 다시 들으면 이 세상 대화가 아닌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굉장히 부끄럽고 능욕당한 느낌이겠지만 조금만 참으면 돼요.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든, 누군가의 컨설팅을 받든 제일 중요한 건 '서술어' 예요.
'아 그럼, 말씀하시는 건 예술가들의 명화, 명작들을 자유분방한 거리문화의 결합을 말씀시는 거죠?'
위에서 이런 식으로 딕테이션했다고 쳐봐요. '결합'은 서술어가 아니에요. 그냥 개념일 뿐이죠. 그러니까 결합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해요. 그래서 질문은 이렇게 들어가야 하죠.
'그럼, 명화의 레벨을 낮추는 거예요? 아니면 거리문화의 레벨을 높이는 거예요?'
맞아요. 낮추다. 높이다. 나란히 가다. 등등의 눈에 보이는 동작형 서술어를 활용해줘야 해요. 보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대화의 특징은 형용사와 명사가 겁나 많다는 거예요. 명사가 많아지면 문장엔 개념만 판치게 되요. 개념은 각각 이해하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오해와 혼란을 부추기죠. 하지만 동작은 아주 명확해요. 모두가 공통적으로 떠올릴 수 있어요.
만들다. 인쇄하다. 제작하다. 포스팅하다. 광고태우다. 채용하다. 등등....
정확한 서술어로 생각을 표현하는 게 좋아요.
자꾸 가치, 평화, 공유, 사회, 모두의 만족, 추구, 도모, 높인다.. 등등의 추상적인 말이 많아지는 이유는 3가지가 있어요.
진짜 어휘력이 없거나
양가감정 때문에 갈등하고 있거나
진짜 욕망을 숨기고 싶을 때예요.
이런 말을 쓰는 분과 얘길 하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대놓고 정곡을 찌르던가 아니면 술을 마시는 거예요. -_- (물론 위의 2번처럼 처음엔 위로와 공감을 시도해봐야겠죵)
정곡을 찌르는 건 이런거예요.
'그럼 돈은 어떻게 벌어요?' 내지는
'일은 누가...?' 또는
한 템포 쉬고 '그게....뭔 말이예요??....' 라거나.
적당히 돌직구가 가능한 사이라면 이런 식의 정곡은 꽤 좋은 효과를 낼 수도 있어요. 물론 어색한 사이끼리 이런 말을 하면 햇님달님이 되겠죠.
두번째 방식인 음주미팅은 가끔 생각보다 효율적이예요. 원래 앞에서는 서로 공적인 대화니까 좋은 말과 칭찬 일색, 두리뭉실한 예쁨으로 가득한 언어가 가득해요. 하지만 술 한잔들어가고 파란만장한 얘기를 주루룩 늘어놓다보면 진짜 욕망이 드러나기도 하거든요. 생각이 민낯을 드러낼 땐 언어가 아닌 감정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요. 생각이란 결국 언어로 포장된 욕망과 같거든요.
그래서 잘 정제된 언어로 드러내는 생각은 실상 팩트가 아닌 경우가 많죠.
SUMMARY
위에 5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이 있어요.
1. 자기 생각은 자기 스스로 정리하기 힘들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2. 생각은 왜곡과 합리화, 일반화의 함정에 빠져있을 수 있다는 것
3. 생각은 작정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욕망을 정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걸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무언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국엔 궁극적인 욕망과 욕망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야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욕망이란 종종 부끄럽거나 비도덕적인 것으로 여기기도 해요. 하지만 사실 남한테 말하고 보여주기 부끄럽고 뭐가 없어보여서 그렇지 그 자체가 나쁘진 않아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돈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냥 쟤 짜르고싶다..개스트레스받아..'
'괜히 다른 거 한다고 하면...인내심이 없어보일까..'
'이것만 하면 불안한데...다른 것도 해야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님의 뜻이니 굽힐 수 없어!!! 그냥 믿음으로 가는거야!!'
'21세기가 나를 원하고 있어. 이 미친세상에 빛이 되버리겠어!!! 고나비롸잍'
'난 권력이 좋아!!! 하앍..'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그러니 안할래.'
등등 실제의 욕망은 매우 단순하고 직관적이잖아요. 그래서 더욱 에너지가 강하고 충돌이 잦기도 해요. 그래서 우린 욕망의 소용돌이에서 도망쳐 생각의 숲으로 들어가요. 그곳은 아주 논리적이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찬 안전한 세계니까요.
생각이 복잡하고 혼란스럽다면 그 아래를 움직이는 욕망을 먼저 관찰해줘야 해요.
그리고 욕망이 분명해졌다면 아주 심플하고 단순한 문장으로 날것의 욕망을 언어화 시켜요.
'난 내년에 두배매출을 내서 통장에 1억을 만들고싶다. 왜냐면 없으면 불안하니까.'
이런 욕망이 있다고 해봐요. 이게 잘못된 건 아니예요. 뭐 사람에 따라선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죠. 실제로 1억이 있어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내 불안이 그걸 외치고 있다면 솔직하게 정리하는 게 좋아요.
'있다고 해서 안불안할까? 그건 아니겠지만, 일단 없이 불안한 것보다 있고 불안한게 더 명확하니까.'
라고 단순하게 명제화시켜요. 이건 부끄러운 게 아니예요. 남들에게 보여주기에 멋진 것을 만들려고 하면 점점 이상한 언어들로 꼬일 뿐이더라구요.
거창하고 예쁘고 멋지지 않아도 되니 깔끔하게 정리했다면... 그냥 그 방법들만 구체적으로 잘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혹시 너무 많은 생각과 언어들에 둘러싸여 있나요?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종이, 스티로폼, 뽁뽁이, 박스, 비닐, 택배상자로 겹겹히 둘러쌓인 택배박스를 보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것일 지도 몰라요. 내용물을 뜯어보도록 해요. 포장지만 잡고 달리다간, 언젠가 벗겨지기 마련이니까요. :)
끗